『「어둠에로조차 빛이 비칠지어다」(모이세 1권 1,3)라고 말씀하신 천주께서는 천주의 영광에 대한 인식을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빛나게 하시기 위하여 빛을 우리의 마음 속에도 빛나게 하셨도다. 그러나 우리는 이 보화를 토기 속에 두나니, 이는 너무나 큰 능력이 우리에게서 나오지 아니하고 천주께로 조차 나오는 것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함이라』(코린토 후 4,4-6)
비록 암흑과 토기(土器)란 말들의 상징이 우리의 가혹한 현실을 대신한 표현이 된다고 할지라도 우리 각자의 내면에 이미 밝혀진 그 빛(眞理)의 실존(實存)은 또한번 우리가 새해를 맞이하는데 오직 한 소망이 되고 있다.
성 바오로의 열정적인 이 말씀과 같이 『천주께로 조차 나오는 것』 그것 때문에 우리는 일상생활의 피동적이요 타성적(惰性的)이며 짜여진 궁핍 중에서도 일신(日新)해 갈 수 있고 또 모든 기갈을 면해갈 수 있다. (우리는 고해 영성체로써만 영혼을 굶주리게 만들지 않는다.)
허나 우리의 신자적 바탕이 이같이 확고하며 공고하기 때문에 혹 거기 안일한 정착(定着)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만약 그러한 일면이 습성처럼 우리 각자에게 붙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크게 경계하고 경종을 울릴만한 일이겠다. 그것은 도무지 향상을 위한 의욕이나 보다 나은 장래를 엿보게 해주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부터 생활의 피동적이요 타성적인 모든 소극적인 심성을 박차버릴 수 있어야 한다.
오늘 저명한 문명비평가들은 흔히 이렇게 반문한다. 『만일 귀하가 역사를 안다면 저 프랑스 혁명을 비롯한 그밖에 많은 혁명들이 과연 인간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수 있었느냐고』 이 말은 오늘의 우리 국민에게 솔직이 물어볼 말이 아닌가 하는 것을 통절히 느끼게 해준다. 그 뜻을 단지 정치나 사회적인 면에서 취한다기 보다는 「인간」을 두고 심각히 반성해 볼만한 일인줄 안다.
새해 벽두에 이런 말들을 꺼내야 할 이유는 너무나 많은 것이다. 지금 교회는 재신(再新) 또는 개혁이란 말을 사용하기에 조금도 인색할 수 없는 실로 중대한 시대적 기로에 서있는 것이다.
제2차 바티깐 공의회를 계기로 성좌를 위시한 교회의 중진들이 앞장서서 그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음에 있어서랴. 바오로 교황께서는 「로마」의 집권(集權)을 피하고 가능한대로 지방교구를 강화할 것을 천명하엿다. 지난 연말 수원에 착좌(着座)한 윤(尹恭熙) 주교께서는 교구를 창설하는 마당에서도 그는 먼저 본당을 강화하겠다는 소신을 피력한 바 있었다. 이렇게 「로마」보다 지방교구를 강화하고 한편 교구보다 각 본당을 강화한다는 것이 곧 교회가 세운 대방침인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각 본당이 강화될 수 있는 첩경은 아무래도 우리 신자들의 각 가정이 강화되어야 할 것은 자명한 이치이겠다. 신자들의 가정 안에 굳센 가톨릭신앙이 채워져 있고 또한 가톨릭 문화가 스며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逆 또한 眞』이라는 논리와 같은 것이다. 신앙이 없는 가정, 본당은 그것을 아무리 거대히 짓고 세운다 하더라도 고졸(古拙)한 「만모스」 취미에 불과한 것임을 지적해준 것이라고 하겠다.
우리가 새삼 다빔할 일은 『교회와 같이 교회로 더불어 생각하는 내(自我)가 되자』는 것이다. 그러한 나(我)는 교회와 같이 보다 훌륭한 생생발전(生生發展)을 멈추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은 많은 말로써 되거나 글로써 서술할 일은 못된다. 오직 각고면려 해가는 가톨릭 생활의 체험을 통해서 조금씩 앞당겨 갈 수 있을 뿐이다.
또한 새해의 결의로 생활 속에 가톨릭식 바탕을 세우기로 하자. 가령 교회 안의 모든 찬연한 가톨릭문화가 본당 또는 어느 가올릭기관에만 독점(獨占)되어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긴밀한 일상생활과는 유리(遊離)된 상태를 면치 못한다.
직접 우리 생황 안에 곧 우리 가정안에 가톨릭 문화를 받아들여 신앙뿐 아니라 문화면에 있어서도 가톨릭신자가 된 감격을 살려가도록 하자.
항상 젊어, 그 젊은의 기쁘이 신자 앞에(AD DEUM) 나가는 정성으로 새해를 맞이하여 아울러 전국 독자 앞으로는 풍성한 은혜와 및 배전의 편달을 간청하는 바이다. 우리가 할 일이 막중하고 또 어떠한 시련이나 고난의 험로가 닥쳐 올지라도 자모이신 교회와 또한 뭇 성인 · 성녀들의 높으신 덕성(德性)에만 힘입는다면 그것들이 다 가벼워질 것을 확신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