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國籍(국적) 없는 小女(소녀) (32) 주린 사랑 ⑤
발행일1964-01-05 [제405호, 4면]
『어마!』
나는 어리둘절했다.
『오호, 미스양!』
딕슨은 구김살 없는 표정으로 내앞 가까이 온다.
나는 반갑기는 하였지만, 아버지의 험악한 눈초리에 질리었다. 강숙은 어떻게 되는가 하는 걱정스런 얼굴로 바라보고 있다.
『이 양키가 너를 만나러 찾아왔다. 어떻게 된거냐?』
이렇게 아버지의 눈초리는 사납다.
『미스양, 나는 너의 아버지에게 인사드리고 싶다.』
딕슨이 말한다.
『너와 나와 교제하는 것을 나의 아버지는 좋아하지 않는다. 너는 가는 것이 좋겠다!』
나는 영어로 이렇게 말했다.
『왜, 너의 아버지는 우리가 교제하는 것을 싫어 하느냐?』
『그 이유는 지금 얘기할 수가 없다. 「뮤직홀」에서 언젠가 만나자!』
『내일 저녁에 나에게 시간이 있다. 다섯시에 가겠으니 거기서 만나자!』
『좋다…』
딕스은 아버지에게 굳바이를 하고 돌아갔다. 딕슨의 늘씬한 뒷모습이 골목밖에 사라지기가 무섭게
『이년…』
하고 아버지의 입에서는 노기에 찬 말이 티어나왔다.
『… 지금 주고 받은 말이 무엇이냐?』
『너는 왜 우리집에 찾아왔느냐 아버지는 대단히 노하고 있으니 돌아가라, 이렇게 말한거야요.』
『나중에 네가 오케이 한 건 뭐냐!』
『그건말이야요…』
변명의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그의 손은 나의 덜미를 붙들고 집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이때,
『노!』
하는 소리가 문덕에서 났다.
딕슨이 놀란 표정으로 문턱에 서 있다.
『아니, 저새끼 안가고 왜 또 왔나?』
아버지는 노려본다.
『그건 너무하오!』
하면서 내 덜미를 붙은 아버지의 손을 잡아뗀다.
『이 양키 뭐라고 하는 거냐?』
딕슨의 심각한 표정에 질리어 아버지는 얼떨떨하며 손을 놓는다.
『……』
나는 일부러 가만히 있었다.
『아버지가 자기 딸을 이렇게 학대해서는 안되오!』
딕슨은 또 이렇게 말한다.
『강숙아, 뭐라고 하는거니?』
아버지는 강숙이를 돌아보았다.
강숙은 고개를 저었다.
『몰라요』
『이년 저놈이 뭐라고 하는거냐?』
아버지는 할 수 없이 또 나에게 묻는다.
『……』
나는 또 일부러 가만히 있었다. 말뜻을 몰라 어리벙벙하는 아버지의 꼴이 나에게는 유쾌했다.
『내가 미스양을 찾아온 것은 조금도 불순한 생각은 없다. 당신은 나와 미스양의 명예를 위해서 오해하지 말아라…』
『아이돈 노!』
아버지는 자기가 아는 유일한 영어로 소리쳤다.
『당신은 정당한 사실을 알아야 한다.』
딕슨은 부드러우면서도 끈덕지게 말한다.
『아니 이 자식이 자꾸 뭐라는거냐?』
아버지는 구원을 청하듯이 사방을 돌아본다.
『이년아, 이녀석의 말이 무슨 소린지 말안할테냐?』
『내가 통역해도 아버지는 고지 안들으니 말안하는거야요』
『하여튼 말해봐라』 아버지는 몹시 답갑한 모양이었다. 그는 딕슨의 말끔한 눈초리에 약간 겁을 집어 먹은 듯도 했다.
『만약 이 소녀를 때리면 나는 그냥보고 있지 않겠다. 이렇게 말하고 있어요.』
나는 일부러 이렇게 둘러댔다.
『뭐, 이자식이 그따위소리를 해? 이건 내 딸이다. 네가 무슨 상관이냐 이렇게 말해야!』
『그 말은 어려워서, 영어로 잘못하겠어요.』
『이년이 애비를 놀릴 작정이냐? … 그럼 말이다 너는 상관없으니 가라고 그래라….』
『아버지는 너하고 오래 오래 여러가지를 얘기하고 싶다고 한다….』
나는 이렇게 영어로 옮겼다.
『오케이…』
하면서 딕슨은 말문을 열기 시작한다.
『… 그건 마침 원하던 바이다. 당신은 예의있는 교제와 진정한 사랑은 이해해야 한다. 나는 미스양을 미국에 데려가서 장차 나의 아내로 삼아 행복하게 해줄 생각이다. 「하이스쿨」을 나올동안은 깨끗한 교제를 계속할 생각인데 당신의 생각은 어떤가?』
『아니, 가라고 그랬더니, 무슨 얘기가 이렇게 기냐- 뭐래는 소리냐?』
『이 사람 말은 아버지는 비록 영어는 모르지만 교양이 있는 훌륭한 사람일거라고 해요.』
『그래서?』
아버지는 과히 나쁘지 않은 표정이다.
『…그래서…』
나는 얼핏 둘러댈 말이 생각이 안나 머뭇거렸다.
『이년아, 말을 제대로 옮겨라 꾸며대지 말구?』
『어려운 영어가 돼서 그래요…』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이 사람 말은 아머지가 무슨 사업을 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자기가 도와주겠다고 말하고 있어요.』
『……』
아버지는 꿀먹은 벙어리의 표정에 가까운 얼굴을 하고 딕슨을 바라본다. 요즘 사업이 부진상태에 있는 아버지에게는 그 말이 솔깃한 맛이 있는 듯 했다.
『텐큐!』
아버지는 비윿이 입가에 웃음을 담고 그가 할 수 있는 영어를 또하나 입에 올렸다.
『우리는 서로 이해하게 되어서 나는 퍽 기쁘다!』
하며 딕슨은 악수의 손을 내민다.
아버지는 뭣도 모르고 잡고 흔든다.
『인젠 가는 것이 좋겠다-』
나는 딕슨 보고 말했다. 더 이상 꼬리가 길다가는 발각이 날지도 몰랐다.
딕슨은 매우 만족스러운 얼굴로 아버지에게 공손이 인사를 하고, 나에게는 내일의 약속을 다짐하며 떠났다.
강숙은 자기가 딕슨을 데리고 와서 몹시 걱정이 되어있더니, 분위기가 확 달라지는 것을 보자, 얼굴을 피었다.
『한사코 너의 집을 가르쳐 달라고 하는 바람에 할 수 없이 데리고 왔어…』
『잘 데리고 왔어, 우리 아버지 한테 도움이 될 것이니까…』
나는 시침을 떼고, 아버지의 얼굴을 힐끗 보았다.
아버지는 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눈을 두어번 껌벅거린다.
『나순아!』
강숙은 갈 적에 나직히 속삭인다.
『아까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 줄만 알았다. 그 양키를 괘니 데리고 왔구나 하고, 어떻게 후회를 했는지 모른다.』
강숙이가 가고, 어비자와 단둘이 방에 앉았을 때 나는 속으로 웃읍기도 하고 앞일이 걱정도 되었다.
『아까 딕슨인가 그 양키가 나를 어떻게 도우겠다고 하더냐?』
아버지는 내 표정을 살피며 묻는다.
『자기 힘 자라는데까지 무엇이든지 도우겠대요…』
『정말이냐?』
『정말이야요』
아버지의 표정에는 어떤 기쁨까지 설레는듯 했다.
『저 방에 가서 공부나 해야지!』
일어 서려고 하니
『가만 있거라…』
아버지가 말한다.
『…딕슨이 언제 또 우리집에 온다더냐…』
『그말은 안했어요』
『그럼 밖에서 만나기로 했느냐?』
『「뮤직홀」에서 만나기로 했어요』
『언제?』
『내일 저녁 다섯시에요』
『내일 저역에 나하고 같이 가자!』
아버지는 월 생각하는지, 혼자 고개를 끄덕끄덕하고 있다.
이튿날 학교서 네시반쯤 집에 돌아오니, 집에는 웬 남자 구두가 사랑방에 있다.
『나순아, 가자…』
『누구야요 손님은?』
『통역할 사람을 하나 데리고 왔다…』
나는 가슴이 덜컥했다.
방에서, 불쏙 나오는 사람을 보니 어서 보던 얼굴이다.
『안녕하셔!』
키큰 청년은 아는 척을 한다.
잘 보니, 그는 우이동에서 만난 일이 있는 진호의 친구인 키다리 대학생이었다.
『어마, 아버지를 어떻게 아셨에요?』
『이사람 아버지와 나와는 친구이다…』
아버지가 대답을 한다.
「뮤직 홀」로 가는 동안 나는 불안하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