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平信神學(평신신학)] (45) 敎會(교회)는 하나 (3)
발행일1964-01-12 [제406호, 2면]
⑩교회의 일치에서 떠나간 다른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었는가?
이단적(異端的) 교의를 가르쳐 가톨릭으로 하여금 교회에서 떠나게 한 사람들이 역사상 많았다. 그 중에 동방이교(東邦離敎) 다음가는 최대의 교회의 분리를 가져온 것은 16세기에 말틴 루터가 교회를 배역하고 「프로테스탄」개혁의 선봉이 된 때였다.
⑪ 「프로테스탄」들이 어찌하여 교회를 떠나게 되었던가?
「프로테스탄」들이 교회에 반항하게 된 조건은 수다하며 대단히 복잡한 것이어서 이 지면에서 충분히 설명하기는 불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프로테스탄」 개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되는 몇가지 「힌트」를 적어보겠다.
(ㄱ) 16세기에 교회 내에 사실 심각한 악과 부패가 있었다. 성직자들은 그들의 허원에 충심하지 못했다. 신앙에 있어서 형식에 과도한 관심을 두었었고 내적의 종교적 정신은 소홀이 되었었다.
교회 내에 범람하던 죄악과 부패를 교정하는 참다운 개혁의 필요는 오래전부터 느껴져 왔던 것이다.
(ㄴ) 16세기는 또 국가주의 정신이 성장한 때이기도 했다. 많은 국가에서는 개개의 국가의 권력보다 더 높은 권력에 반항하려는 강력한 욕망이 있었다.
(ㄷ) 말틴 루터의 반혁은 다른 많은 반혁의 선봉이 됐고 그 결과로 새로운 다른 많은 「프로테스탄」교회들이 생겨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말틴 루터가 처음 의도한 것은 교회 자체에 대한 반역은 아니었고 오직 교회내의 부패에 대한 항거였다.
(ㄹ) 그의 시대에 현저했던 교회의 부패와 남용에 대한 루터의 반대는 그 부패와 남용을 낳게한 사물에 대해 반대하고 마침내는 가견적(可見的)으로 조직된 교회의 사상 그 자체에 대해 반대하기까지 이르렀다.
예를들면 루터는 맨첨 교회가 대사(大赦)를 판다고 공격했으나 끝에는 대사 그 자체의 효능을 부인하였고 결국은 연옥의 존재를 부인하고 말았다. 그는 처음 죽은이들을 위해 미사를 봉헌하는 것을 비난하였으나 마침내는 미사 그 자체의 무용(無用)을 주장하였다.
그는 처음 성직자들 가운데 부패한 자들이 있음을 통박하였다. 그러나 나중에는 사제와 주교와 교황의 불필요성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천주의 계시는 전체적으로 성서에 포함되어 있다고 주장하고 사제나 주교나 교회의 해석없이 누구든지 좋은 지향을 가지고 성서를 읽으면 성신의 인도를 받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ㅁ) 루터가 주장한 진실한 교회(초세기부터 11세기까지의 교회)로의 복고(復古)를 의미하는 개혁의 노력의 결과는 종도시대로부터 보존되어 오던 교회의 본질적인 요소를 상실한 즉 사제 없는 교회, 성사 없는 교회, 미사 없는 교회를 낳고 말았다.
⑫ 「프로테스탄」개혁이 교회에 어떠한 결과를 가져왔는가? 「프로테스탄」 개혁이 빚어낸 결과는 한편으로 동방이교가 그러했듯 그리스도의 몸의 일치에서 수백만의 신도들을 분리시킴으로써 「유럽」을 분할시키는 것이 되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프로테스탄」 반혁이 교회로 하여금 그 자체 내부의 개혁을 불가피하게 했다. 이 개혁운동을 위해 교회 내에서 위대한 성인들이 속출했다.
그래서 교회는 수적(數的)으로는 약화되었으나 내적으로는 사실상 강화를 가져온 결과를 나타냈다. 그리스도교신자들 가운데 분리가 있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있어서 비탄지사(悲嘆之事)가 아닐 수 없다. 가톨릭 교회 내나 「프로테스탄」교회 내나 동방이교 내의 좋은 뜻을 가진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모든 신자들의 재일치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프로테스탄」교회 내에서는 그리스도교의 일치를 위한 대운동이 전개되어있다. 가톨릭교회에서는 교회의 본질적인 것이 희생되지 않는 한 여하한 양보도 허용할 아량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다만 애덕과 상호간의 이해를 통해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이 한번 더 그리스도의 몸에 재일치 되는 날이 오기를 희망하고 기도할 수 밖에 없다.
(실천)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몸에 결합되기를 기도하자. 우리들 친척 가운데 또는 친우 가운데 한 사람을 정하고 그가 신앙의 은혜를 받게 기도하자.
「프로테스탄트」들과 종교적 의식을 같이 할 수는 없지만 공공사업(公共事業) 또는 사회사업 등을 통해 상교(相交)하여 그들과 우리들 가톨릭 가운데 개재하는 오해를 풀도록 노력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