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平信神學(평신신학)] (29) 예수 그리스도 대제관 구속주 (3)
발행일1963-08-04 [제385호, 2면]
⑤우리를 구속하기 위해서 수난하시고 죽으셔야만 했는가?
그렇지 않았다. 우리를 구속하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수난하시고 죽으셔야만 했다는 절대적 필요성은 없었다. 그리스도의 어떠한 행위도, 어떠한 기도도 몇 개의 세계를 구속하고도 남음이 있을만큼 위대한 가치를 가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천주 성부께서는 그의 아들이 수고수난과 십자가 위에서의 죽음에 의해 이 세상을 구속하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⑥천주 성부께서 성자의 죽음을 원하셨던 이유는 무엇이었던가?
천주께서 성자의 죽음을 원하신 이유는 인간이 범한 죄가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또 인간에 대한 그의 사랑이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를 우리들에게 가르쳐 주시기 위함이었다.
『누가 그 벗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라』(요왕·15.13)
(ㄱ) 그리스도의 수고수난과 죽음은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들에게 천주의 한량 없는 사랑과 자비를 가르쳐준다.
누가 만일 천주의 자비를 의심하기에 이르렀다면 십자가를 한 번만이라도 쳐다봄으로써 천주의 사랑에는 한계가 없다는 것을 다시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십자가 위에 넓게 뻗쳐져 있는 예수의 두 팔은 아무리 큰 죄인이라 할지라도 그의 사랑과 자비에서 제외되지 못할 것임을 가르쳐준다.
(ㄴ) 그리고 예수의 수고수난과 죽음은 우리들의 죄의 중함을 가르쳐준다.
그리스도를 그와 같은 고통과 고민의 구렁텅이에 밀어넣었고 그를 죽이게 한 것은 인간의 죄였었다. 죄를 경시(輕視)하거나 죄를 매력있는 것으로 하려는 세속의 모든 노력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는 수포(水泡)가 되고 만다.
(예전) -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성주간 예전에서 재생(再生)시킨다.
수난 제2주일 즉 부활 전주일에 종려가지들을 축성하여 교우들에게 노나준다.
신자들은 축성된 종려가지들을 들고 마치 그리스도께서 그의 수난기가 임박하여 성도(聖都)에 개선적인 입성을 했을 때 예루살렘의 아해들이 한 것과 같이 『다위 자손은 만세 무강하소서』라고 노래하면서 행렬을 지어 걷는다. 이 행렬에 뒤이어 올려지는 미사에서는 마태오 성사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에 관한 기록이 읽어진다.
성주간 화요일과 수요일 미사에서는 말구성사와 루가성사의 기록이 각각 낭독된다. 역시 성주간 목요일에는 저녁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체성사와 사제직의 위대한 선물을 주신데 대한 감사와 기쁨을 드러내는 미사를 올림으로써 그의 최후만찬의 기념일을 지낸다. 그리고 그날 밤은 그리스도의 수난을 기억하면서 슬퍼한다.
성 금요일의 예전은 미사가 아니다. 그날의 예전은 첫 성금요일의 피흐르는 제사에 중심을 둔다. 그날의 예전은 독서기도 요왕성사의 수난과 죽음의 기록의 창독(唱讀) 십자가의 친구(親口) 그리고 영성체로 되어있다. 예전이 끝나면 교회는 비워지고 잠잠해진다. 제대에서 모든 것이 치워진다.
망부화절(望復活節)의 예전이 시작될 때까지 그리스도의 시체가 무덤에 묻혀있은 때를 재생시키는 것이다.
(신심) - 모든 가톨릭 성당 안에는 예수의 수난과 죽음의 여러가지 장면을 그린 그림이(어떤 때는 조각이) 열 네개 걸려있다. 이 그림들은 제대편에서 시작해서 성당 후편에로 그리고 후편에서 제대에로 성당 양측벽(兩側壁)에 예수께서 비라도에게서 사형언도를 받으시는 장면으로부터 시작하여 무덤에 묻히시는 장면까지의 수난과 죽음의 장면들을 순서적으로 걸어두었다.
이 14개의 그림들을 총칭하여 14처(處) 또는 성로(聖路)라고 부른다. 신자들은 그 그림 앞에서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그 장면 장면에 따라 묵상한다.
이렇게 하는 기도를 성로신공이라고 한다. 성로신공은 신자 개인으로서는 언제든지 할 수 있다. 그러나 공식으로 행하여지는 것은 봉잿때에 들어있는 금요일(그리고 우리 한국 어떤 지방에서는 주일)이다.
성로신공은 가톨릭 교회에서 가장 많은 은사를 베푼 기도 중 하나이다. 그리고 이 신공은 우리 죄의 중함과 천주의 사랑과 자비의 무한하심을 우리에게 가장 깊게 느끼게 하는 기도이다. 성로신공을 위한 기도문과 방법은 보통의 기도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실천) - 우리는 가끔 마테오 복음 26장과 27장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에 대한 기록을 읽자. 그리고 가끔 성로신공을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