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은 사랑의 성사이다.
결혼을 하면 가정이 생긴다. 가정은 먼저 부부 그 다음에 그들의 일치에서 나는 아이들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아이들을 가지기 위해서만 결혼하는가? 많은 자녀들을 가지기 위해 결혼하는가?
①우리는 결혼하기로 결정했다. 왜?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②아이들을 가지는 것이 이 부부의 성소의 중요한 부분이나 천주께서 혼인을 제정하셨을 때 그렇게 정하셨다.
③그러나 아이를 가지고 싶으나 아이가 없는 가정도 있다. 그들의 결혼도 의의를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결혼은 아이를 가지는 것만이 유일인 목적이 아니요 낙원에서 에와를 위해 아담이 고귀한 사랑을 준 그것이 필요하다.
④아이들을 낳기만 하면 부족하다. 그들을 기르고 인간으로 만들고 신자로 만들어야 한다. 이 사랑의 업적을 실련하기 위해 부부는그들의 사랑의 모든 힘이 필요하다.
⑤부부는 다산(多産)의 의무가 없다. 아이를 낳는 것은 창조와 같이 자유로운 행동이요 사랑의 행동이다.
⑥모든 가정에 자라나는 가정의 가장 좋은 가능한 균형을 보장하기 위해 생산을 어떻게 조절할 것인지가 문제이다. 그것은 아량과 용기를 없이하지 않음이 분명하다. 되려 반대이다. 자녀를 많이 가진 가정이 그것을 증거한다.
▲어린이 없는 가정의 성소
우리의 성조 아브라함과 그의 처 사라는 아이가 없었다. 성 루가는 『둘이 다 천주대전에 의인이요 주의 모든 계명과 예의를 책망할 것 없이 준행하되 아들이 없음은 엘리사벹이 수태치 못하고 또 둘이 다 나이 많은 연고리라』 이 두 쌍 아브라함과 사라, 자카리아와 엘리사벧은 마침내 아이를 가질 것이다. 양자가 천주의 백성의 역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전자는 구약의 출발점에서 후자는 신약의 시작하는 순간. 그들의 역사는 수태치 못하는 것이 부끄러움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에게 보인다. 왜냐하면 아브라함과 사랑, 자카리아와 엘리사벧은 천주로부터 사랑을 받았고 구원의 역사에 협력하기 위해 그로부터 간택된 자들이기 때문이다.
▲不姙은 시련이다
불임은 고통스럽고 받기 어려운 시련이다.
아브라함과 사라, 자카리아와 엘리사벧이 그러하였다. 그들은 왜 그들이 아이를 못가지는지 이해못했다. 오늘 아이없는 가정이 이같은 신비에 부닥쳐 있음을 본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은 천주께서, 그들을 사랑하시고 그들은 해야할 사명이 있음을 알 수 있다.
▲不姙은 가장 나쁜 시련이 아니다
이 많은 본의아닌 독신자(獨身者)들을 어찌 생각아니할 수 있겠는가. 아이없는 부부는 적어도 결혼의 기쁨을 가지고 있다. 『나는 너를 위해 아이 열명 보다 더 좋지아니하냐?』라고 어떤 장부가 수태하지 못하는 자기 아내에게 말했다고 한다.
▲不姙은 천주의 초대
호가실히 아이없는 부부는 괴로워하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들을 위해 더 많은 시간을 가지고 있다. 천주께서 그들이 수태치 못하게 하셨다면 그것은 다른 일을 위해 그들을 쓰시려고 하신 것이 분명하다.
구라파에서는 이러한 가정이 전교 봉사를 위해 아프리카로 가는 수가 많다.
▲그들도 가정을 가질 권리가 있다
가정은 따스하게 하는 불처럼 그들이 고립된 자들에게 애정의 열을 갖다주도록 천주로부터 불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