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國籍(국적) 없는 小女(소녀) (33) 장미꽃 ①
발행일1964-01-12 [제406호, 4면]
「뮤직홀」에 들어서려고 하니 마침 딕슨이 저편에서 오고 있었다. 그는 『헬로우』 하며 뛰어왔다.
아버지는 반색하며 딕슨에게 먼저 손을 내민다. 딕슨은 아버지와 「미스터」키다리까지 함께 온 것을 보자 좀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키다리는 딕슨에게 자기 소개를 하며, 통역을 하기 위해서 왔다고 말한다.
『다방으로 가자고 하게…』
아버지가 말했다.
키다리는 그대로 옮긴다.
바로 건너편 길가 다방으로 몰려들어 가면서, 딕슨이 파랑 눈에 미소를 담고 나를 바라 보았다.
『잠간 할말이 있는데?』
나는 나직히 말했다.
이때 「미스터」키다리가 딕슨을 돌아보는 바람에 말을 못했다.
우리는 벽있는 쪽 가장자리 「복스」에 자리를 잡았다. 딕슨은 키다리가 나란히 앉고 그 앞으로 아버지와 내가 앉았다.
(아버지가 너에게 무슨 부탁을 할거다. 들어주는 척 해다오!)
이렇게 한마디 하려고 하였으나 내 입이 떨어지기 전에 아버지는 차를시키자 마자 벌써 「비지내스」를 끄집어 냈다.
『어제 당신이 내 사업을 도와주겠다고 하였으니 내가 하나 부탁이 있다고 말을 하게!』
아버지는 딕슨과 키다리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나는 송곳날로 아픈데를 찔린 것 같이 뜨끔했다. 『미스터』키다리는 비교적 유창한 영어로 그 말을 옮긴다.
『무엇이라구?』
딕슨은 어리둥절한다.
『네가 미스양의 아버지의 사업을 도우겠다고 약속안했느냐?』
키다리가 반문한다.
『그런 약속 한 일 없다!』
나는 딕슨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나 그의 파란 구슬눈은 말씀히 나르 ㄹ바라 보다가, 어깨를 으슥하며 두손을 내버리는 「제스츄어」를 한다.
『그런 약속한 일이 없다는데요?』
키다리가 우리말로 아버지에게 옮긴다.
『아니야, 어제 나를 도우겠다고 그랬어, 나순아, 그렇지?』
아버지는 나를 돌아본다.
『…저어 어려운 일은 안되지만, 쉬운 일이면 도우겠다고 말했어요.』
나는 급한김에 나오는 대로 대답을 했다.
『쉬운 일이라고 말하게!』
키다리는 그대로 옮긴다.
『무엇인지 말해 보기 바란다!』
딕슨이 약간 당혹한 표정으로 응한다.
『미군에서 빈 깡통이며 그밖에 폐물들을 버리는데 그걸 나에게 줄 수 없느냐고 물어보게!』
키다리가 말을 옮기자 딕슨은
『그런것을 담당하는 하사관이 따로 있으며 나는 상관하지 않는다.』
하고 고개를 절래 절래 흔든다.
『그 하사관한테 얘기 해볼 수는 없는가고 물어 보게!』
키다리는 아버지의 그말만 옮기지 않고 다음 말을 덤으로 부친다.
『…너의 애인의 아버지인 사람의 그만한 청도 못들어 준단 말이냐』
『나는 너의들의 말을 이해 못하겠다. 딸을 시집 보낼때는 그러한 것을 요구하는 것이 한국의 상식이냐?』
『네가 그렇게 말을 했다지 않느냐?』
『나는 그런 말 한 일 없다.』
키다리는 그대로 아버지에게 우리말로로 옮긴다. 나는 아버지의 날카로운 눈초리를 예상하고 얼굴을 가슴에 파묻었다.
(아뭏게나 되라지) 하고 속으로 체념했다.
『애, 나순아, 어떻게 된거냐?』
『……』
나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너 나한테 거짓말 했구나?』
『…내가 영어가 부족해서 아마 잘 못들었나 봐요!』
『뭐라구?』
아버지의 눈에는 사나움이 맺힌다.
『우리도 가끔 미국사람하고 얘기하다가 보면 그런 수가 있어요』
키다리의 이 한마디는 구세주 같이 나에게 고마웠다.
『그럼 이녀석하고 다방에 앉아서 얘기할 것도 없지 않아!』
아버지는 매우 실망한 얼굴이더니 그래도 미련을 가지고 출입상인이 되도록 힘써줄 수 없느냐고 청을 넣는다.
딕슨이 자기는 그런건 못한다고 간단히 대답하자 묵묵히 담배만 빨다가
『제기랄…』 하며 일어섰다. 차값을 치르고 나오면서
『이년아 너때문에 차값만 손해났다…』 하며 노려본다.
다방 문전에 나오자 아버지는 냉정한 얼굴로 말한다.
『앞으로는 우리 나순이 만날 생각 말라고 하게…』
키다리는 그대로 옮긴다.
『어제 말하고는 다르지 않느냐?』
이번에는 딕슨이 불쾌한 표정으로 반문을 한다.
『어제 내가 무슨 말을 했단 말이냐?』
아버지는 그 말을 듣자 눈이 댕그래서 소리친다.
『자주 놀러 오라고 했다는데요?』
『사업을 도우겠다고 하길래 오라구 한거지 건성 차나 사먹이고 내 딸을 노리개감으로 들고 다니라고 오라구해! 어림도 없는 수작 말라고 그러게…』
아버지는 키다리가 말을 옮기기도 전에, 내 팔을 아프게 잡아 끌며 그 앞을 떠났다.
(이년,ㅡ 집에 가서 보자!)
이때 아버지의 얼굴은 그렇게 보였다.
「빌딩」 모퉁이를 돌아 퇴계로로 나섰을 때, 키다리가 쫓아왔다. 돌아보니 「빌딩」 모퉁이까지 딕슨이 따라와서 바라보고 섰다.
아버지의 큰손은 내 조그만 손을 한층 꼭쥐며 버스 정류장 쪽으로 걸음을 재촉한다.
흔들리는 버스 속에서 한 정류장씩 다가들때 마다 나는 불안에 드싸였다.
『왜 이렇게 버스가 느리누?』
아버지는 초조한 듯이 말한다.
드디어 버스는 우리 동리에 와서 닿았다. 내려서 오는 길에 키다리가 내 옆에 와서 속삭인다.
『김진호 오새 안만나요?』
『……』
나는 대답을 할 기운조차 없었다.
『우리집에 들렸다 가세요!』
나직히 말했다.
키다리는 그럴 생각으로 따라오는걸
『자네는 그럼 가게, 수고했네!』 하고 아버지가 보낸다.
대문 앞에 이르자, 나는 일부러 문턱을 넘지 않고 서 있었다.
『안들어 올테냐?』
아버지는 그 숨겨두었던 노여움을 얼굴 전면에 나타낸다.
『또 때릴라구?』
『이년아 들어와!』 하며 목덜미를 잡아끈다….
나는 문기둥을 붙들고 버티었다.
길가던 사람이 쳐다본다.
『아니, 왜 안들어오려구 하니?』
아버지는 길가의 체면을 생각하고 이번에는 사납지 않게 말을 한다.
행인이 지나가자, 드디어 나는 돼지끌리듯이 이 집안으로 끌려 들어갔다.
『이년, 내가 영어 모른다고 어제 그놈하고 뭘 속닥거렸어?』하고 한시간 동안이나 그의 사정없는 폭력을 받았다. 한번은 빗자루를 거꾸로 쥐고 때리는걸 피했더니 아버지의 손이 기둥을 몹시 쳤다.
아버지는 자기 손이 아픈 만큼 더 나를 쳤다. 나도 조금 미안해서, 그 매는 순순히 맞았다. 이때 내몸이 농에 부딪쳐서 농위에 얹어 두었던 조화(造花)인 장미를 담은 광주리가 굴러떨어졌다. 나는 몸을 휘이다가 떨어진 장미 한송이를 밟았다.
『비켜라 이년아!』
아버지는 내 발을 밀어 제치고 일그러진 장미꽃 한송이를 주어서 핀다.
『이년, 너땜에 장미꽃 망가졌다.』
그는 나보다 그 장미를 더 소중히 여기었다. 이때 마침 대문소리가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