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地巡禮(성지순례)] (24) 예수님 성모님 가신 길 나도 지금 그 길을 가고
발행일1963-08-04 [제385호, 3면]
나는 전에 「뻐스」를 탔을 때 햇볕들어오는 편에 앉았었기 때문에 무척 고생한 일이 두어번 있었기에 이번에는 고생을 안 해야겠다는 꾀가 들어 향방(向方)과 시간을 측정해서 햇볕이 안 들어오는 쪽에 자리를 택했다. 물론 그 차에는 좋은 차일(遮日)이 마련되어 있어 능히 햇볕은 가리울 수 있었지만 그렇게만 하면 연도의 풍경을 볼 수 없다. 마음 내키면 언제나 볼 수 있는 내 고향과 달라 한 번 지나가면 다시 못 올 곳, 봐 두자는 것이다.
내 계산에 틀림이 있을리 없어 「커브」를 틀 때 외에는 언제나 내 편에 그늘이 졌다. 「예루살렘」 언덕을 꼬불꼬불 돌아내려와 또다시 꼬불꼬불 오를고해서 언덕과 골짜기를 거쳐 차는 달린다. 이같이 「예루살렘」에서 「나자렡」으로 가는 길이라면 「나자렡」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오는 길도 된다. 따라서 성모님이 성부 엘리사벹을 왕방(往放)하셨을 때 이 길로 오셨을 것이다. 그 옛날 성모님이 밟으시던 길 또 예수와 종도들이 밟으시던 길을 지금 나도 밟고 지나간다.
내가 성경을 배울 때 선생님 말씀이 『성모님이 엘리사벹을 왕방하신 것은 단순히 노경(老頃)에 초산(初産)을 앞두고 혼자 손에 어려움을 치루어야 할 엘리사벹을 돕고저하신 뜻 뿐이 아니라 이미 천신의 보(報)함으로 당신 복 중에 메시아가 잉태하셨으니 「나자렡」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면서 도중 선조들과 선지자들이 그다지도 메시아를 목말라 기다리면서 살으시던 곳도 친히 답습하시면서 묵상도 하시고 그들에게 그들의 기원이 이미 성취되고 시작했다는 것도 아룰러 고(告)해주실 뜻에서였다』고 하셨다.
『성모님이 밟으시던 길 나도 그 자욱따라 밟는구나』 생각하니 어쩐지 흐뭇해지고 이번 이런 기회를 마련해주신 주교님의 배려(配慮)하심이 새삼 고마웠다. 「예루살렘」에서 약간 서로 향해 북으로 내다르면 「단」 지방이 나온다. 그다지 넓은 평야는 아니나 유다지경보다는 펑퍼짐한 곳이다. 「삼손과 델리라」라는 영화를 보신 분은 기억이 나시겠지만 여기가 바로 장사(壯士) 삼손이 나서 「팔리스티나」들과 싸우던 곳이다. 내 보기에는 그렇게 탐스럽지도 않은 땅, 생명을 걸고 싸울 바에야 차라리 더 살기 좋은 곳을 찾아 이민을 떠났던 것이 서로 편치 않았겠나 생각된다.
그러나 「파레스티나」로 말하면 조선 전래의 땅! 이스라엘로 말하면 천주 마련해주신 복지 양편 모두 한발자욱도 양보하고 철수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것이 조국애라는 것이요 이것이 민족 의식이란 것이겠지.
이 지대는 그리 높은 산도 없고 그리 넓은 들도 아니다. 말하자면 비산비야(非山非野)의 지대이다. 차는 쉬지도 않고 곧장 달리기만 한다. 몇 「마일」의 속력으로 달리는지 알 수 없으니 몇백리나 왔는지 측량할 수가 없다. 밀감나무밭이 나오는가 하면 「바나나」밭이 나오고 「올리브」밭이 나오는가 하면 포도밭이 나온다.
「욜단」 지구에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푸른 풍경이요 구석구석이 사람의 손이 안 간 대가 없이 잘 가꾸어있다. 이만하면 「꿀과 젖이 흐르는 복지」라고 할 만하다. 농토는 아무래도 사람의 손이 닿아야 기름지고 아름다와지기 마련인 모양이다.
우리는 우리의 조국을 어서 어서 기름지게 만들자. 학자는 토질을 연구하고 농군은 부지런하고 정치가들은 싸움질 대신 옳바른 지도를 내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