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國籍(국적) 없는 小女(소녀) (34) 장미꽃 ②
발행일1964-01-19 [제407호, 4면]
『양선생 계시요?』
뚱보 사장의 목소리였다.
나는 구세주나 온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나운 얼굴을 남 앞에 보이지 않는 아버지는 이때도 아무일도 없었던 양 웃는 낯으로 손님을 마중한다.
일그러진 얼굴이 금시 비단결같이 곱게 펴진다.
『나순아 방석 내오너라!』
목소리도 방송성우같이 부르럽다.
이룹러 눈물 자죽도 씻지 않고 나는 부르퉁한 얼굴로 방석을 뚱보손님 옆에다 놓았다.
『나순이 얼굴이 왜그래?』
뚱보아저씨가 묻는다.
『뭘 사달라구 어린애 같이 졸르지 않아요!』
아버지는 내가 입을 떼기전에 가로챈다.
『뭔지 모르겠으나 사주시구래!』
『나순이 하자는 대로 다 합니다. 내가 애끼는 가죽 빽까지 주었읍니다…』
아버지는 가죽빽 얘기를 한바탕 늘어놓는다.
『그 얘기는 세번이나 들었소이다!』
『저기 무슨 장미요?』
뚱보 아저씨는 방바닥에 떨어진 장미 광주리를 턱으로 가리킨다.
『생화같지요?』
『그것이 조화인가요?』
뚱보손님은 깜짝 놀란다.
『이건 국사이 아닙니다. 아는 친구가 세계일주를 하고 돌아온 선물로 보내준겁니다.』
아버지는 이렇게 말을 했지만 나는 그 꽃의 내력을 알고 있다.
오빠가 그간 외국다니는 배의 선원이 되어 어느곳에서 시온 것인데 그는 누구한테고 세계일주한 친구의 선물이라고 꾸며대고 있었다.
『이게 어디젠가요?』
『아마 불란서제라나봅니다!』
(그저 되는대로 주어대는 군!)
나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며 듣고 있었다.
『그리고 이 광주리는 전라도 광주산인데 국전에 공예부에서 특선한 사람이 만든 것입니다!』
그것도 알고보면 특선이 아니고 그저 입선된 어느 노인의 솜씨였다.
『아하 그래요!』
뚱보아저씨는 새삼스러이 그 꽃광주리를 눈여겨 바라보았다.
『생화는 시들면 보기 싫지만 조화는 세월이 가도 시들지 않으니 조화의 생명이 길지요!』
아머지는 스스로 멋진 말을 하였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시덕거리며 침을 꿀꺽 삼킨다.
(아무리 아름답기로 조화가 생명있는 꽃에 댈라구!)
나는 혼자 입속에서 반발했다.
『저 조화를 2천원 주께 팔라는 사람이 있는걸 안팔았읍니다…』
아버지는 시침을 딱 떼고 이렇게 말한다.
며칠전에 이웃에 사는 사람이 와서 이백원에 팔란 말은 들었어도 2천원이란 말은 처음 듣는다.
『2천원?』
뚱보 손님은 조화광주리를 다시 한번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한다.
『그렇게 값나가는 물건인가요?』
『아직 우리나라의 조화 기술은 여기에 따라가려면 멀었지요!』
아머지는 먼저 있던 자리에 조화를 올려 놓고 스스로 만족하여 바라본다.
뚱보 아저씨가 볼일이 있다고 가려고 할 때 아버지보다 내가 더 붙들었다.
뚱보 아저씨의 돼지같은 코도 이날만은 곱게 보이도록 나에게는 그의 존재가 필요했다. 오랫동안 손님이 앉아있을 수록 나에게는 평화가 있는 것이다.
『그럼 바둑이나 한판 두실까?』
뚱보 사장이 말한다.
아버지가 두겠다는 대답도 하기 전에 나는 바둑판을 내다 두 사람 앞에 놨다.
바둑이란 묘한 것이었다. 말이 많든 아버지의 입도 돌같이 다물리고 두눈만 바둑판 위를 오락가락 한다. 한판 두는 시간이 사십분 가량 걸리는데, 그간 아버지의 말 소리를 안듣는 나는 유쾌했다.
두판을 두엇는데 아버지가 거푸 진 모양이다.
『수로 진 것이 아니고 속아서 졌어』
이렇게 말하며 상을 찡그린다.
『내가 요술쟁인가요 속이게 솔직히 졋다고 항복을 하시요!』
뚱보 아저씨는 매우 유쾌한 표정이다.
내기도 아닌데 한쪽은 분해하고 한쪽은 좋아하는 걸 보니 어른들도 이런 아이들과 별로 다른 것이 없다고 생각이 든다.
손님이 간뒤 아버지는 바둑에 진 찡그린 얼굴을 나에게로 돌렸다.
『딕슨인가 그 양키하고 또 만나면 이젠 큰일날줄 알아라…』
눈치가 어설피 잘못 대답했다가는 또 「빤치」가 날라올 것만 같았다.
『그 까짓 자식, 안만나요. 아버지도 도웁지 않겠다는 자식…』
이렇게 말하고 이마너머로 살며시 아버지의 표정을 살피니, 과히 나쁘지 않은 기색이다.
『만약 그자식이 아버지의 일을 돕겠다면 어떻해요?』
나는 일부러 이렇게 꼬디겨 보았다.
『그! 그자식이 그런 기색이 보이더냐?』
『전혀 희망없는 것도 아닌것 같아요』
『요댐에 한번 만나거던 물어보아라…』
아버지는 얼굴을 펴며 이렇게 말한다.
(그저 물질상의 이익! 그것이 제일이구나!)
나도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하며 딕슨을 꼬여볼 생각도 해본다.
이튿날 학교서 돌아오니 아버지는 아직 돌아오지를 않았다. 어제 얻어맞은 뒷통수의 조그만 상처가 시큰거린다. 문득 나는 농 위에 올려있는 장미 조화를 바라보았다. 농위에 있는걸 거칠게 손으로 쳐서 떨어뜨렸다. 광주리는 곤두박질을 치며 방바닥에 흩어졌다. 축구볼이나 차듯이 발로 세번이나 찼다. 그래도 신이 안풀리길래 그 장미꽃을 없애버릴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식모 몰래 꽃광주리를 보자기에 싸들고 밖으로 나왔다. 개천가에 버리기에는 앆바기에 강숙이나 줄까하고 찾아갔으나 집에 없었다.
내 발걸음은 어느듯 김진호 집이 있는 한길 모퉁이까지 왔다. 진호네 문전까지 걸아가자니 마침 대문서 나오는 그와 마주쳤다.
『어디 가요?』
진호는 반색을 한다.
『이 금방의 친구네 집에 왔다가 가는 길이야요… 이거 가지세요…』
하고 나는 보자기를 벗기고 조화의 광주리를 진호의 가슴에 안겨주었다.
『아니?…』
진호는 눈이 뗑그래진다.
나는 웃으며 그 자리를 이내 떠났다.
저만큼 가다가 돌아보니, 진호가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자기집 문전에 아직도 서 있다.
집에 돌아오니, 불안스럽기도 하고, 시원하기도 했다. 어제 얻어맞은 뒷통수의 아픔은 훨씬 덜했다.
아버지는 저녁식사때까지는 몰랐다가 밤중에야 조화광주리가 없어진 것을 발견했다.
『꽃광주리 어디다 치웠느냐?』
식모 아이를 불러 물으니 알 까닭이 없다.
다음에는 나를 불러 묻는걸
『몰라요』
천연스럽게 시침을 뗐다.
『아니 모두 모른다면 귀신이 가지고 갔단 말이냐?』
아버지는 소리치며 다른 물건이 또 없어지지 않았나 하고 방안을 두루 살피며 「캬비넷」도 열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