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角(시각)] 創価學會(창가학회)의 眞相(진상)
佛敎(불교)의 大慈大悲(대자대비)와는 正反對(정반대)
발행일1964-01-26 [제408호, 1면]
참 종교의 사명은 무엇인가?
요안 23세= 인간을 정신과 물질 지성과 의지(意志)의 결합체로 다루며 인간의 마음을 지상적 존재의 변화하는 조건으로부터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한다. …또한 인간의 일상생활의 필요에 대해서도 심려하며 그것을 다만 육체의 영양과 생명의 물질적 조건뿐 아니라 여러 형태 및 여러문화의 번영에 관계된 것까지를 포함한다.
回勅 「마뗄 엩 마지스뜨라」 序文에서
일본에 좌우 양극의 협동단체가 있다. 좌는 「정가꾸렌」(全國學生聯盟) 우는 「소오까각까이」(創價學會) 전자는 대학생들의 조직이요 후자는 일련정종의 광신도가 그 주체다. 양자가 다 일본의 민주화를 막는 걱정거리로서 국제적으로 주목을 받고있다. 좌익적인 것은 원래 직접으로 또는 간접으로 공산주의의 영향 아래서 움직이느니 만치 우리신변의 눈에 아니뜨이는 부분을 포함하여 국제적인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어느 한 국가의 극우적 국수주의가 남의나라에까지 번지기가 사실임은 2차대전중 나치스가 교전국인 미국 안에서도 움직였음이 증명한다. 그것에는 독일계 시민들의 자기조국에 대한 향수어린 충성의 발로라는 핑계를 붙임직도 하다.
그러나 이즈음 우리 동표의 입에서 놀랍게도 터져 나오는 「나무묘호렝게꾜」(南武妙法蓮華經)라는 일음(日音) 창제성(唱題聲)에는 동방요배, 본존예배에는 무슨 이유를 붙어야만 핑계라도 될 것인가.
단순히 「묘법연화경」에 「나무」(歸依)한다는 뜻이라면 우리나라의 불교에서 공인된 대승경(大乘經)이니만치 신교자유상 무슨 문제가 되리오마는 사실은 불교의 대자대비(大慈大悲)와는 전연 정반대인 내용이 중앙과 지방의 각 신문에 속속 폭로되고 있다.
그 내용에 정통한 쓰노다(角田信三郞) 신부의 비판이 「창가학회」의 발상지 일본에서 이미 작년 2월호의 「세기」(世紀)에 발표된 바 있었다.
「창가학회」의 배경이 되는 일본불교의 일파 일련종(日蓮宗)은 7백년전 당시 천대종(天台宗) 출신 일본인 중 「니찌렌」(日蓮) (1222-1283)이 시작한 종파다. 8만대장경이라고 총칭되는 호한한 불경은 「마하야나」(大乘)으로 나누어지는바 일련은 자기가 귀의한 대승경묘법연화경만을 주장하여 여타의 경전과 종파는 모조리 이단으로 배척했다. 그의 제자의 하나인 「닉꼬오」(日興)는 그 배타성이 자기 스승보다 더욱 격렬하여 본산인 「미노부」(身延)를 버리고 「후지노미야」(富士宮)의 부근에 대석사(大石寺)를 따로 세워 「내가 정통이라」는 뜻을 일련정종(正宗)이라고 자칭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그는 「석가무니」까지도 적불(적佛-부처의 발자취)에 불과하고 일련만이 본불(本佛-부처 자신)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니 전세계의 불교 총본산은 필연적으로 자기나라인 일본이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하나의 예언자로 치고 「내가 구세주라」고 자칭한 모하메트교의 태도와 비슷하다. 석가무니가 멸도(滅度) 후 2천년이 지나면 말법(末法)시대가 온다는 법화경의 해석은 말세론과도 비슷하다. 그런데 말세가 오면 석가무니가 말세를 위해 설했다는 법화경 마저 소용없고 다만 지 「다이모꾸」(題目)의 연창(蓮唱)만이 관심(觀心-覺 · 成佛)의 묘체(妙諦)라는 것이다.
동시에 본불인 일련이 이 대석사에 남긴 판자 만다라(蔓다羅-佛名이나 呪文을 적은 符籍)만을 본존(本尊-禮拜의 唯一한 對象)으로 모신다. 끝으로 계단(戒壇-戒命尊守)를 誓約하는 壇)의 건립이다. 이러한 일련 정종의 3대비법을 토대로 생명론과 가치론을 창도한 「마끼구찌」(牧口)라는 소학교 교장이 1930년(昭和5년)에 창립한 단체가 「창가학회」다.
인간의 생명은 우주 대생명의 일부분이며 우주 생명의 「리듬」과 서로 맞지 아니하는 인생은 그 벌로서 현세에서 불행에 빠지게 된다.
그러니까 그 「리듬」에 맞추기 위해서는 반드시 일련정종에 귀의해야 한다고 그는 주장했다. 바꾸어 말하면 일련정종 이외의 모든 종교는 말짱 우주의 「리듬」과 틀리기 때문에 현세의 행복을 누릴 수 없다는 절대 배타의 뜻이다.
가치란 진선미(眞善美)가 아니라 이(利)선미이니만치 이(利)만이 인생의 기초적 가치가 된다. 그러니까 이 가치의 증진을 위해서는 「다이모꾸」 창해야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교리를 광선유포(廣宣流布)하기 위해 그들은 좌담회의 방법을 사용한다. 좌담회로 끌어들이는 수단으로서는 주로 심리적 압박으로 불안감과 공포감을 일으켜 준다.
좌담회에 가면 창제(唱題)로써 무슨 병이 나았고 돈을 얼마나 벌었고 어떠한 자리에 취직했다는 체험담에 꽃이 핀다. 이러한 수단으로 「셉뿌꾸」(折伏)-꺽어눕히기) 즉 전교를 할수록 현세에서 자기의 이익이 증진된다고 믿는 그들은 목적을위해서는 수단을 가릴 필요가 없다. 불교적 범신론에 내재한 반인격(反人格)적 사상을 극도로 밀고나가면서 전생 금생 후생의 인과를 설교하는데까지는 다른 종파와 같으나 숙업(宿業-전생에 진 윤리적 부채)의 전환(轉換)을 이(利)라는 인생가치의 증진으로 실현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기의 숙업을 윤리적으로 기워야 하겠다는 양심이나 책임감을 송두리채 「다이모꾸」의 연창과 「본존」에 대한 예빼로만 해결해 버린다 과거의 죄악따위야 끊을 필요도 없다. 현세적 물질상 이해가 기본가치니만치 권력의지가 조장되어 정권을 탐하게 됨도 무리가 아니나 왕불명합(王佛冥合-政敎一致)이 그들의 마지막 이상이다.
국회의 결의로 제단을 건립하겠다는 것이다. 그리 되는 날 신앙의 자유가 일본에서 보장이 될 것인가? 그들의 광신적 예배 대상인 본존 만다라에는 「천조대신」(일본신화의 여신)과 「하찌망」(八幡-일본의 軍神)마저 첨가되어 「신불습합」(神佛習合-신도와 불교의 혼합)의 다신교로 격하된데다가 인간심리를 현대적으로 싸늘하게 계산하는 현대식 전체주의가 융합된 순 군대식으로 조직된 것이 「창가학회」의 본질이다. 저들이 일본을 지배하는 날 양복차림의 「가또오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어디로 먼저 들어닥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