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레햄=요르단 NC通信員 오네일 記】 바오로 6세의 3일간 성지순례의 끝날이 되는 공현축일(삼왕래조), 이곳 그리스도의 탄생지에서 그리스도교도의 일치와 세계평화를 호소하여 「클라이막스」를 장만했었다.
성탄의 동굴에서의 미사후(1월 6일) 교황은 강론중에서 『교회는 완숙하고 구체적인 일치중에 살아갈 역사적 순간에 섰다. 교회의 대외적 변호 및 선교활동은 이 내부적 일치에 의존한다. 그리하여 가톨릭은 이미 그리스도의 무리의 내부적 안전 위에서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와 완전한 상통이 없는 우리의 그리스도적 행제들에게 같은 초청을 하지 않고서는 완전해질 수 없다고 하겠으니 오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바는 사랑과 지혜로 모든 그리스도교도들에게 가장 높은 축복과 통합된 교회의 영예를 가져 오는 일이다.』고 했다.
교황은 또한 그의 준비된 강론 교서에서 출발에 앞선 평화호소를 했었다.
『우리가 「평화의 왕자」로 그에게 기도드리는 2천년전 이 고장에 탄생하신 그분의 이렇게 아름답고 평화스런 「베틀레햄」을 출발함에 앞서 나는 전세계의 모든 국가의 통치자들 앞에 나의 간절한 평화 호소를 새로이 할 중대한 필요를 느낀다.』
『정부(政府)들은 이 부르짖음을 들을지며, 인간이 갈망하는 평화를 확인하는데 저들의 노력을 바칠지니라』
『그들은 진리와 정의, 자유와 형제애 가운데 평화를 운영할 협동을 해갈지니라』
『이는 이 순례중 계속 천주께 기도드려마지 않는 원의이다. 모든 이를 실현하려는 충실한 기도(企圖)는 나의 지지를 발견할 것이며 진심으로 그들 앞에 축복을 보낸다』
다른 강론 부분에 들어가서 그 전날 「예루살렘」서 「콘스탄티노풀」의 「올스독스」 전체교회 아데나고라스 총대주교와 회담한데 언급했다.
『「콘스탄티노풀」의 전체교회의 총대주교와 우애에 넘치는 격식으로 자리를 같이 했었고 그 자체가 최선의 희망을 보였던 이 축복된 날들을 이곳서 보낸 일은 만족스럽다.
진심으로 천주님께 감사드리며 주께서 평화를 위해 이 선한 일을 나로 인해 시작하셨고 행복된 결과를 가져올 일치에도 나를 통해 당신이 하시는 바 선한 일이 완성될 것을 기구드린다.』
바오로 교황은 「예루살렘」을 떠나 이곳에(베틀레햄) 왔었다. 이날은 동방의 3현인(賢人)이 「베틀레햄」으로 아기 예수를 예방한 것을 기념하나는 공현축일(公現祝日=삼왕래조)이다.
그는 이곳에 온 역사상 최초의 교황이다. 바오로 교황의 승용차는 「아랍」 산(産) 백마를 탄 훗세인 왕의 근위 기병대를 15「마일」이나 동반했었다. 훗세인 왕은 「헬리콥터」로 선두에 섰었다.
교황 자동차 행렬이 「엘리아스」에 잠시 정기했을 때 시장과 관료들이 나와서 축사를 드렸다. 의장기마대는 많은 다른 언어로 환영이라고 새긴 「아취」들을 통과, 행렬을 뻗쳤다
수많은 군중은 경찰에 의해 정돈이 계속 되었으나 터져나오는 환성과 열렬한 환호가 과격해서 가는 열정적 군중을 제지할 수 없었다.
교회일치의 정신을 나타내기 위해서 희랍정교 신부들은 교황이 통과하는 동교회 정문으로 입장할 것이 허용되었다.
그러나 바오로 교황은 희랍정교회 규칙대로 이곳 성당 안에서 미사를 봉헌할 수 없었다.
교황은 동 교회의 지하로 내려가 「구유의 소성당」을 방문했다. 4「피트」 높이 밖에 안되는 동 소성당 입구를 들어가 이곳서 미사를 봉헌했다. 교황 미사는 확성기로 교회 안 및 외부로 중계되었다. 미사후 교황은 「성 가다리나의 교회」로 가서 강론하였다. 불어로
『나는 첫째 그리스도에게 둘째 교회에 셋째 세계에 세가지의 몇 말씀을 하겠다.』고 했다.
『그리스도께 나는 마치 이 장소에 동방 현자들이 드렸음과 같이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아들 말씀이 강생(降生)한 신자에게 감사의 상징적 선물을 드린다. 이는 반석(盤石) 위에 선 베드루의 교회인 「로마」의 교회의 고백이다.』
둘째는 교회에 보낸 것이다. 교황은 『주여 당신 구유 앞에 미천한 자를 목자로 간택하신 교회에 말씀드리나이다. 이는 단지 그리스도의 교회가 우리와 함께 있으며 그 이름으로 우리를 봉헌하는 가운데 우리와 함께 있음을 말해야 할 뿐이다. 이는 교황행렬이 인파에 휩쓸릴 위험조차 없지 않았다. 불가피한 조처로 성탄의 교회주변의 교황좌 부근에는 철조망을 칠 수 밖에 없었다. 교회의 효율성, 권위 및 참교회를 내세우는 조화(調和) 가운데 서 있다.
이때는 예수의 뜻을 물어 저들이 완전히 하나이 되고 당신이 보내신 바를 세계가 알게 할 시각이다.』
『또한 여기 나은 각 교회의 수뇌들에게 나의 순례에 참가 해준 데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이제 세계에 향해 말씀 드리겠다.』
『나는 그리스도교도의 종교를 대신한 자이다. 나의 오직 관심은 신앙을 선포하는데 있다. 이를 고백하는 자유와 누구도 이 종교를 자유로이 받아들이는 것 그것 이외에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바오로 교황은 이 강론을 마치고 종교 지도자들을 만난 다음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여 아테나고라스 총대주교와 두번째 회담을 가졌었다.
이 회담 후 교황은 요르단의 수도 「안만」으로 돌아와서 「로마」행 차비를 차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