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福者(복자)로 모셔야 할 26위 순교사기] (24) 도마 손자선
獄中(옥중)서 온갖 「치욕」 겪어
拷問(고문)으로 두다리 부러져
발행일1964-01-26 [제408호, 3면]
▲도마 손자선, 충청도 홍주 지방에서 나서 「거더리」 동내 「신리」에 살고 있었다.
태중 교우로서 어려서부터 열심, 수계하였고 나이가 젊은 관계로 교회의 직무를 맡아 본 일은 없었다.
병인년 3월경의 일이다. 「덕산」 관가에서 기별이 오기를 안주교를 체포할 때 압수했던 돈과 물건을 찾아가라는 것이었다.
교우중 아무도 무서워서 가려고 하지 않았으나 손 도마는 겁남을 무릅쓰고 포졸들이 뺏아간 안주교의 돈을 찾으러 「덕산」으로 갔다. 그러나 관가에서 자선이 교우인 것을 알자, 돈을 내주기는 커녕 그를 옥에 가두어 버렸다.
감옥에서 도마의 손목을 온종일 매달아둔 적도 있었다. 여러번에 걸친 문초 중에서 배교시키려고 그에게 잔인한 고문과 악독한 형벌을 가했다. 한번은 얼굴에 포졸들의 소변까지 받은 치욕을 겪었으나 도마는 『오주예수 십자가상에서 쓸개를 마셨으니 나도 이것을 감심으로 참아 받겠다』고 말할 뿐이었다.
「덕산」서 도마가 굴복하지 않는고로 「해미」로 넘겼다.
「해미」서도 도마가 배교할 때가지 악독한 고문을 하라는 원의 명령으로 마침내 도마의 두다리가 부러졌다 하지만 항복할 도마가 아니다. 그래서 이번엔 공주 감영으로 넘겼다. 배교하라고 고문으로 그를 위협하는 판관에게 도마가 『배교할 마음이 있었으면 다리가 부러지기 전에 했을 것이오. 죽어도 배교를 못하겠소』하니 관장은 『그러면 배교 안한다는 표시를 보여라. 살점을 떼 내든지 피를 보이든지 하여라』 『내 몸도 천주께서 내신 바니 어찌 내 마음대로 그것을 상해할 수 있겠소』 『좋다 비록 네가 배교를 안하지만 배교하는 표로 인정하겠다』 『그렇다면 관장의 말에 순종할 수밖에 없소』 대답하는 도마는 참으로 자기 두 손등에서 살점을 물어 뜯어 냈다. 다시 옥에 가둔 후 마침내 병인년 4월 5일 그의 목을 옭아매어 죽이니 때에 그의 나이 23세였다.
사흘이 지나서 교우들이 도마의 시체를 찾아서 「덕산」의 「개골」산 앞에다 묻었다가 「신리」로 옮겼는데 많은 시체중 도마의 것만은 도무지 썩지가 않았고 아무런 냄새도 없더라고 당시의 교우들이 전하고 있다. 무덤의 표시로 도마가 감옥에서 써보낸 기록문을 술잔에 넣어 도마의 발 옆에 놓았다고 하는데 이 기록문엔 도마가 당한 문초와 고문의 환경이 자세하게 적혀 있다고 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