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貝穀(패곡)의 密語(밀어)
발행일1963-08-11 [제386호, 4면]
『처음엔 아마 잘못 주무실께예요』하면서 여관집 여주인이 아랫층으로 내려간 후 P여사와 나는 자리에 들었다. 남쪽과 서쪽에 벽 없이 창으로만 두른 이층방에선 망망한 바다와 멀리 안면도(安眠島)가 바라보이더니 퍼붓는 빗속에 캄캄할뿐 쉴새 없는 포효(咆哮)만이 들려온다. 눈을 감았지만 도저히 잠들 수 없는 소리와 설레임이 파도, 그것처럼 가슴에 밀려온다.
『바다가 뭐라구 외치고 있어. 속삭이기도 하구…』 나는 중얼거렸다.
P여사는 곧 『그렇다니까… 그러기에 전번엔 바다가 날 부르는 것 같아서 마구 달려갔더니 곁의 친구들이 자살이나 할 것 같더라나 그런건 아니지만 난 항상 그걸 느껴. 바다가 내게 손짓하며 부르는 것 같다구』
나는 그때까지 켜놓았던 전등을 끄려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P여사는 불을 켠채 자겠다고 했지만 나는 안되겠어서 양해를 구하고 꺼버렸다.
우리는 말없이 밤이 깊도록 밀려왔다 밀려가는 바다의 울부짖음과 또는 속삭임과 흐느낌을 들었다. 그 강력한 자기 주장과 박력과 일체를 품어 한없이 크고 싱싱한 소리를 들었다.
산이나 호수나 강_에서는 느낄 수 없던 생동하는 설레임을 안겨주는- 그것은 오랫만에 실로 수십년만에 큰 바다 앞에 온 내 가슴을 젊게 힘차게 또는 비장하게 만드는 것이다. 해마다 사람들이 대천 「大川」 바다를 그리고 읊고 그리워하는 것에 무관심했던 나다.
그것은 38 이북의 아름다운 바다에 비길 것이 아니라는 나의 고집 때문이요 또한 피서라고 떠날 생활형편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엔 좋든 굳든 내려올 핑계가 있었다. C대학에서 마련한 하기대학에 한 시간의 강의 때문이었다. 그것도 해마다 대천(大川) 바다를 못 잊는 P여사의 권면에 의한 것.
얼마나 밤이 깊었을까? 창을 때리는 굵은 빗방울 소리와 함께 바루 거기 있는 바다의 숨결은 점점 높아만 간다. 내 속에서도 뭔가 몸부림 같은 것이 통곡같은 것이 생동한다. ___ 검은 연기와 _지와 소음으로 더럽혀졌던 호흡기가 이제 간배인 젖은 해풍에 말끔히 씻기고 전신엔 맑은 피가 _환하는 것이다. 바다가 나를 삼키려는 포효인가 내가 저 무한한 바다를 안으려는 벅찬 감동인가?
나는 잠들어도 바다는 자지 않았었다. 달디단 잠에서 깨었건만 비는 억수같이 내리고 바다는 더 크게 소리친다. 여러 별장에는 인적도 없고 군인막사 부엌에선 장작들이 활활 타는 것이 보인다. 비가 약간 멎은 사이에 길을 걸으면서 이곳 명물인 조갑지 얼마를 줏었다. 그리고 어둑어둑해서야 물가로 나가 거기서 조갑지에 정신이 팔렸다. 기기묘묘한 것들 까맣고 하얀 바둑돌용의 반들반들한 돌들과 구멍이 뚫린 조개껍질 크고 작고간에 줍기에 얼마나 재미나든지 이런 상태는 소꿉을 놀던 열살 이전과 아무 다를 바가 없다. 장.콕토의 『내 귀는…』을 가만히 을펴보면서…
『시간이 됐어 내일 아침에 줍기로 해』 바둑돌만을 골라 줍던 P여사는 내가 시간가는 줄도 모르고 무더기 무더기 조개껍질 더미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우산대로 옆구리를 건드렸다. 그래도 듣지 않고 눌어붙으니까 물결로 다져진 사장(砂場)에서 거기 더 많다고 소리친다. 나는 더 많다는 소리에 이끌리어 그리로 달려갔다. 발목을 적시는 바닷물의 감촉은 여기와서 처음이다. 조개껍질은 거기엔 없었다.
『그러잖음 일어서지 않는걸』 P여사는 웃었다.
참 그렇겠다. 이미 어두워서 보이지 않는데도 나는 일어설 염도 않고 자꾸 자꾸 줏었던 것이다.
(그만 들어가자. 그리고 내일 새벽에 나 혼자 나와서 마음껏 줍자. 밤새도록 바다는 더 좋은 것을 많이많이 밀어내다 줄테지…)
그러면서 길들어서 그런지 그날 밤엔 이어 잠들었다. 그렇지만 폭우는 밤새도록 퍼부어서 내가 눈을 떴을 때는 물결은 훨씬 이편까지 내닫고 있었다. 이 비가 멎으면 물가에는 얼마나 더 많은 바다의 보물들이 밀려나올까? 아쉬운대로 목거리 부로지 가락지 등 조개껍질로 만든 패물들을 사가지고 떠날 밖에….
그_도 비가 내리는데 나는 아쉽게 그리운 바닷가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가지고 온 수영복은 적셔도 못 보고 낮이면 입술을 다물고 있는 노란 월망초(月望草) 언덕길을 걸어나왔다.
위험수위에 육박한 한강물은 흙탕물로 뒤덮여 있어서 두고온 대천바다가 못내 그립다.
내년 일을 누가 알랴마는 이제 앞으론 바다와의 대화를 잊지 말아야지. 젊어진다기 보다 동심으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 뭔가 무한하고 영원한 애환(哀歡)에 젖고싶기 때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