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國籍(국적) 없는 小女(소녀) (35) 장미꽃 ③
발행일1964-01-26 [제408호, 4면]
양복장도 열어보고, 책상 설합, 벽장 속까지 일일이 열어보며 의복, 기구, 그밖의 물품이 제 자리에 있는지를 그는 살핀다.
『도둑이 글어온건 아닌데?』
아버지는 한편으로 안심하면서 한편으로는 여전히 꽃에 대한 미련이 가시지가 않는다.
『에…』하고 식모를 다시 불러 가까이 세워놓고 형사가 문초하듯이 눈을 날카롭게 뜨고 묻는다.
『정직하게 말해라. 네가 누구를 주었지?』
『정말 몰라유!』
복순은 그의 시골사투리를 들어내며 아버지 만큼이나 큰 눈을 활짝 뜨고 고개를 흔든다.
『내가 점을 쳐보면 금방 아는거니, 빠른 말 해라!』
아버지는 복순이를 의심하는 눈치이다.
『내가 그랫으면 벼락 맞아유!』
복순은 순한 여자지만, 이때만은 어굴함을 못참는듯이 넙적한 얼굴에 핏줄이 선다.
『아마 동리 아이들이 놀러왔다가 집어냈는지 몰라요!』
복순에게 누명이 씌워질가바 이렇게 나는 말했다.
『아이들이 언제 우리집에 들어왔느냐』
아버지는 시선을 나에게로 돌린다.
『낮에는 꽃 구경하느라고 동리 아이들이 가끔 들어오는데 아까도 두 아이가 와서 미술 숙제 한다고 꽃을 그리다 갔어요』
『뉘집 아이들이드냐?』
『몰라요.』
『복순이 너 왜 아이들 들어오는걸 그냥 내버려뒀냐?』
『아이들 안들어왔슈』
『나순이가 들어왔다는데?』
『복순이는 못봤어, 잠깐 들렀다가 나갔으니까…』
나는 거짓말의 꼬리가 잡힐가바 겁을 먹으며 둘러댔다.
『이제는 아이들이 절대 못들어오게 해라…』
아버지는 흥분하여 빽 소리를 지른다.
『그 장미 조화가 그렇게도 좋아요?』
나는 위로하는 척 하고 물었다.
『내 친구가 세계일주…』
이렇게 말을 하다가 아버지는 말꼬리를 고친다.
『…너의 오빠가, 외국서 사온건데 귀하지 않겠니, 대한민국 안에는 그런 꽃이 없단 말이야…』
『그 까짓거 단념하세요.』
나는 다시 아버지의 마음을 또 보기 위해서 이렇게 말했다.
『그게 2천원도 더 나가는 물건이다…』
『그게 무슨 2천원이야요. 2백원이나 될까 말까 하는 거죠』
『미친 소리 말어라!』
도대체 2천원이란 숫자는 어디서 나온건지 알 수가 없다.
『정말, 아버지 말대로 2천원이 넘을지도 몰라요, 그 조화 참 좋아!』
나는 일부러 또 이런말로 아버지의 원통한 감정을 쑤시덕거렸다.
『돈 이천원 잊어먹은 것나 같다!』
아버지는 담배를 기차 화통모양 퍽퍽 연거피 피우며 우울하게 앉아있다. 아버지가 우울한 만큼 나는 속에서 쾌재를 올리고 있었다. 어제 얻어 맞은 뒷통수가 아직도 시끈한 나는 그 아픔에 대한 복수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 이튿날까지도 아버지는 잃어버린 물건에 애착을 품고 푸념을 하더니 며칠이 지나니 잔잔해졌다. 그런데 나는 반대로 머리의 상처가 곪아서 외려 사흘전에 얻어맞던 때보다 더 아팠다.
머리카락 때문에 고약도 붙일 수가 없고 붉은 「마키롬」액만 발라 두었는데 좀처럼 맛지가 않았다.
서너평 되는 우리집 앞뜰에는 백장미와 붉은 장미가 두 주, 심궈져 있는데 붉은 장미는 며칠전에 두 송이가 한꺼번에 피었으며 백장미는 한송이가 피려고 살구알 만하게 몽오리가 져 있었다.
아버지는 아침마다 물을 주고 진디물을 잡아주며 백장미가 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일쯤이면 백장미가 피겠다!』
아버지는 학교에 가려고 자선 나를 보며 장미 봉오리를 가리킨다.
『백장이가 뭣이 좋아요?』
나는 일부러 아버지의 기분과는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이 바보야 붉은 장미는 흔하고 백장미가 고귀하고 볼상이 좋은거다!』
(꽃 귀한건 알면서, 사람 귀한건 모르시는군?)
문깐에 나서면서 나는 제법 큰소리로 혼자 중얼거렸다. 시간이 촉박하여 총총 걸음을 걷자니, 곪은 머리통이 발걸음마다 울려서 시끈거린다. 만원 「버스」를 부비고 탈 적에 먼저 탄 어떤 남자 어른의 팔꿈치가 내 머리통에 탁 부딪쳤다. 바로 상처난 곳이라.
『앗!』하고 소스라치게 고함을 쳤다. 남의 아픈 머리통을 치고도 미안하단 말 한마디 없이 부엉이 같은 눈을 뜨고 서있는 키큰 남자 어린이 미워
『어쩌면 사람 머리를 치고도 가만이 있을까?』하고 눈을 흘겨주었다.
키큰 사나이 어른은 장승 같이 표정 없이 서있을 뿐이다. 그 사람은 자기의 팔이 남의 머리에 부딪친 감각은 있었을텐데 숫제 아랑곳 없다는 얼굴이다.
야위얼굴에 오묵하게 푹 들어간 눈매가 아버지 비슷하여 백장이를 자랑하던 아버지의 얼굴이 그 사람의 반쪽 얼굴에 겹친다.
(그놈의 백장미 잘라버릴가 보다?)
나는 「버스」 속에 짐짝같이 끼어가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학교에서 둘째 시간을 마치고 변소로 가는데 변소에서 급히 나오는 춘자와 문턱에서 무딪쳤다. 울굴이 닿을번 하고 가슴이 서로 아플만큼 충돌을 했다. 나는 말없이 그를 피했는데 춘자는 같이 가던 다른 아이에게 이런 소리를 한다.
『저 계집애, 일부러 내 가슴을 받았을거야. 나순이한테서 양키 냄새 난다!』
나는 흥분하여 돌아보니 춘자는 혓바닥을 내밀고 도망을 친다. 쫓아가서 사내같이 주먹으로 볼다구니를 질러주고 싶었으나 생리작용이 급해서 그만두었다.
세시간째는 영어인데 배울 것도 없고 선생의 영어 발음도 시시한지라 손톱을 가지고 장난을 하고 있자니 춘자에 대한 감정이 다시 솟구친다.
힐긋 복판 자리에 앉은 춘자를 보니 백설같이 하얀 고 얼굴에 백장미가 연상된다. 이날 집으로 돌아오자 나느 ㄴ가위를 감춰 쥐고 꽃밭에 나왔다. 백장미는 피려고 아감을 살짝 벌리고 있었다.
그러나 좀 애처럽기도 해서 쥐츰거렸다. 춘자에 대한 미움이 또 바락 머리에 검은 그림자를 퍼뜨린다.
『요놈의 계집애…』
맘 속에서 이렇게 외치며 가위를 쥔 바른 손이 백장미에게로 갔다.
『삭둑-』
생명을 자랑하던 볼통한 백장미의 봉오리는 가지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손 아귀에 꼭 꾸겨 쥐고 뒷뜰로 가서 쓰레기통 속에 던졋다. 혹시 복순이의 눈에 뜨일가바 연탄재를 해치고 안으로 깊이 쑤셔 넣었다.
삼시십분쯤 지난뒤 건너방에서 소설책을 읽고 있을 때 아버지가 돌아오는 기척이 난다. 발각이 되면 어떡허나 하느 ㄴ불안감보다는 실망하고 기겁을 할 아버지의 얼굴이 상상만 해도 통쾌했다.
들어올 적에는 미처 못본양 아무 말이 없더니옷을 가라입고 마당에 나와 물주기로 꽃밭에 물을 주는 소리가 나더니,
『아니, 백장미 봉오리가 어디갔어?』하고 외치는 소리가 난다.
『아니 인제보니 누가 잘라 버렸구나…』
나는 닫친 문장지사이로 내다보며 입술가에 떠오는 웃음을 질끈십었다. 웃음에도 맛이 있다면 그맛은 고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