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國籍(국적) 없는 小女(소녀) (13) 환경의 돌변 ③
발행일1963-08-11 [제386호, 4면]
『진호씨네 집은 어디셔?』
나는 외로울 때 찾아가 볼 생각으로 물었다.
『저 산 밑!』
난무 한 그루 없는 서쪽의 얕은 산을 가리킨다. 위는 검으작한 바위에 덮였고 중턱까지는 새로 문화주택들이 소꼽같이 울긋불긋 지어져 있는데 그 중의 하나이려니 생각했다.
『같이 가봐요.』
개울가 다리목에서 우리 집으로 가려면 바른 쪽으로 접어들어야 하는데 진호와 함께 곧장 걸었다.
『미스양이 밥을 짓는다면서?』
『괜찮아, 우리 아버지는 여자보다 더 밥을 잘 짓는 사람이야…』
『훗훗훗…』
진호가 웃는다.
『거짓말 아냐요.』
내가 한 밥은 되기가 일쑤며, 되지 않으려고 물을 많이 부으면 질어버리고 한 번도 제대로 알맞는 밥이 된 적이 없다. 밥물을 부을 때는 아버지가 나와서 보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물간을 맞춘 날은 밥이 잘 되었다. 두부 써는 칼질도 아버지가 능숙했고 잘라논 토막이 예뻤다. 생선의 비눌을 긁어내는 것도 나는 아버지만 못한다.
『계집애가 어찌 아무 것도 못하냐?』
밥 할 때마다 잔소리를 듣는다.
(잘하시는 아버지가 지으시구려!)
이런 생각이 있어 일부러 오늘 아침은 늦장을 부릴 생각이 든 것이다.
진호네 집은 교회에서 약 십분 거리인데 생각한 문화주택은 아니고 그 새집들 틈바귀에 반쯤 일그러진 낡고 조그마한 한옥이었다. 대문을 열자 코에 부딪친듯이 마루가 있고 안방 건너방이 있을 뿐 부엌도 답답했다. 세련되어 보이는 진호와는 딴판으로 그의 양친은 신지식과는 동떨어진 구식 사람으로 보였다. 어머니는 검은 얼굴에 쪽찌고 있었고 아버지는 얼굴이 곰보인데다가 코 밑에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문턱에서 잠시 안을 들여다 보고는 들어갈 생각이 안 났다.
집에 돌아와보니 아버지가 밥을 안쳐놓고 도마에다 「다꽝」을 썰고 있었다.
『미친년, 어디 갔다 인제 오냐?』
석고상 눈이 나를 돌아본다.
『교회에 갔더랬어요!』
나는 아버지의 성난 얼굴에는 전염되지 않고, 명랑하게 대답했다.
『미친년! 너때문에 이년아 손 비었다!』
헌겁으로 동여맨 왼손 엄지손구락을 들어보인다.
『왜 그랬어요?』
『「다꽝」은 계집애가 썰거지 애비가 썰거냐?』
아버지의 흰자 위 눈에는 만성이 되어있었으므로 가렵지도 따끔도 안했다. 이년 하는 목소리도 그의 입버릇이니 한 귀로 흘려버리면 되는 것이다.
『약 바르셨에요?』
나는 얼굴은 안 된척 했으나 속으로는 동정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좋아하시다가 다친건데 뭘 그럴까? 그게 나 때문인가!)
나는 방에 들어와 이불을 개며 혼자 중얼거리고 김새는 휘파람을 불었다.
며칠이 지나니 우리 집에는 낯선 남녀들이 우우하고 몰려들었다. 하나는 날 흐린 때도 색안경을 쓰고 모자도 쓰고 지서 옆 복덕방 앞에서 입을 반쯤 벌리고 우드커니 서있기를 잘하던 꺽다리인데 늘 지나가며 볼 때마다 그의 입이 불안스럽던 사람이다. 그가 어떤 중년 부부를 데리고 와서 신체검사나 하듯이 금붕어같이 입을 버리고 우리집 안팎을 샃샃이 살핀다.
아버지는 따라다니면서 집 좋은 설명을 딥다 한다. 북향이지만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따듯하다고.
그러나 내 경험에 의하면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것이 우리집이다.
『아버지 이 집 팔아요?』
나는 걱정이 되어 물었다.
『그래.』
『팔지 마아!』
오래 살던 그 집에 정도 들었고 돌아간 어머니의 입김이 남아있는 그 집을 버리고 딴 데에 가고 싶지가 않았다. 또 하나는 동이네 집과는 떨어지기가 싫었다.
『아버지, 말 잘 들을께 이사 가지마러요!』
웬일인지 울고싶은 기분이 든다.
『빚에 쫄려 죽을 지경인데 집이라도 팔아야지 뾰죽한 수 없다. 그리고 점을 쳐보니 이사를 해야 돈이 생기겠단다!』
『아버지, 점을 믿으세요!』
『암, 점은 무시 못 한다.』
『점은 미신이야요』
『교회에 가는게 더 미신이다.』
조금 길게 말하면 아버지와 나와는 의견이 맞지 않았다. 모철머 다소곳이 의논하던 기분도 산산이 깨어지고 만다.
그리고 한달쯤 후, 찬바람 부는 동짓달에 우리는 정든 그 집을 버리고, F동으로 이사를 했는데 전의 반밖에 안 되는 조그만 한옥이었다. 여기서는 열다섯살 먹은 식모 아이를 구했기 때문에 밥 못 하는 욕을 나 대신 식모 아이가 먹기 시작했다.
처음 며칠은 서먹서먹 하였으나, 날이 지나니 새 집도 조금씩 정이 든다.
아버지는 연탄값을 애끼느라고 안방에 몰아자자고 하였으나 나는 싫다고 우겼다.
하루는 학교서 돌아와 보니, 나하고 식모아이 복순이하고 쓰는 건너방이 냉골이었다.
『복순아 연탄불 꺼졌니』
『아니, 아저씨가, 건너방엔 불 들이지 말라고 하셨어…』
나는 그날밤 혼자 냉골에서 잤다. 아버지가 안방으로 잡아 끌었으나 다시 돌아왔다.
『혼자 있어야 공부가 되니까 냉방이라도 좋아요…』
아버지에게는 이렇게 말했으나 공부보다는 아버지 옆이 싫었다.
밤새 자라같이 목이 기어들어가고 덜덜 떨리었으나 마음은 편했다.
『추우면 이 방에 기어 오겠지. 내버려 둬라!』
이튿날도 아버지는 복순이에게 이렇게 말하며 건너방에 연탄을 못 들이게 했다.
(그랬다구 내가 그 방에 갈 줄 알구…)
나는 세타를 두 개씩 끼어입고 옷이란 옷은 다 끄집어 내려서 이불 위에 덮고 잤다. 전같이 떨지는 않았다. 사흘째는 복순이가 낮에 몰래 연탄을 들였기 때문에 학교서 돌아오니 아랫목 앉일만한 자리가 제법 따듯했다. 저녁에 아버지가 알고 연탄을 빼돌린다.
『아씨가 가엾지 않아요?』
복순이가 딱한듯이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제멋대로 하겠다는 버릇을 고치라는 거다. 연탄이 아까워 그런게 아니야!』
아버지는 나 듣게끔 크게 소리를 친다.
(그랬다고 내가 굴복 할 줄 아세요?)
나는 나대로 방안에서 혼자 버티었다.
그 후 며칠은 공교롭게도 영하 17도를 오르내리는 된 추위가 왔다. 불을 집힌 방도 어깨살이 오그라드는 날씨에 냉방에 도사리고 앉았을라니 무릎이 간질병 걸린사람 모양 타그락 떨린다.
『아씨, 안방으로 가아!』
복순이가 와서 팔을 잡아끈다.
『안 가!』
나는 버티었다. 아버지가 와서
『나순아, 어서 고집 그만 세우고 안방으로 오너라!』
하고 잡아 끈다면 이번만은 못 이기는척 하고 끌려갈 생각인데 아버지는 감기가 들었는데 이따금 기침만 할 뿐 딴 말이 없다.
『좋아, 얼어죽드래도 이 방에서 버틸테야…』
나는 안방에까지 들리도록 크게 말했다.
『콜록 콜록!』
아버지의 기침소리가 또 난다.
『흥, 따듯한 방에 있으면서 감기는 왜 들려!』
나는 아버지가 점점 더 미웠다.
다음날은 집에 돌아와서 떠는 시간을 주리기 위해서 배는 고프지만 학교서 돌아오는 길에 도서관에 갔다. 과히 훈훈하지는 않았지만 견딜만큼 스팀이 통하고 있었으므로 폐간 시간까지 「죽음과 사랑」이라는 번역된 외국 소설을 읽었다.
지하실 신발 찾는데서 신발표를 내놓고 기다릴 때
『미스양!』
하는 진호의 소리가 뒤에서 난다.
『아까 학교로 찾아갔더니 강숙이가 도서관에 갔다고 일러주길래 따라왔지 무슨 책을 그렇게 열심히 읽었어?』
『소설』
같이 나오면서 한참있다가 진호가 무겁게 입을 연다.
『왜 두 번이나 편지 했는데 답은 안 해 줘….』
『…난… 못 받았는데?….』
아버지가 내 편지를 감췄거나 찢었을 일이 번개같이 머리를 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