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地巡禮(성지순례)] (25) 밀감·바나나 주렁주렁 한없이 늘어선 가로수
발행일1963-08-18 [제387호, 3면]
「단」 지경을 벗어나니 「에프라임」 지경으로 들어선다. 점입가경(漸入佳境)이라더니 이를두고 하는 말이겠다. 점입가경이라 해서 천연 풍경을 두고 말하자는 것이 아니다. 천연 풍경이야 우리 금수강산에 비할 수 있겠느냐? 하지만 그들이 가꾸어 둔 농토! 싱싱하게 푸르른 밀감_에 누런 열매가 탐스럽게 주렁주렁 달린 것은 처음보는 것이라 더욱 신기해 보였고 골을 지어 쭉쭉 늘어선 「바나나」 나무도 밉잖았다.
더우기 나로 하여금 여행이라기 보다 소풍나온 기분으로 만든 것은 한길 양가에 늘어선 가로수다. 「뽀뿌라」처럼 하늘을 찌를듯이 쭉쭉 곧게 뻗은 나무인대 잎은 버들잎처럼 길죽길죽하게 생겼다. 가도 가도 가로수는 계속된다. 이것이 어찌 자연에만 맡겨둔 풍경이랴?
욜단에서는 도저히 보지 못한 풍경이요 애석하게도 우리 나라에서도 이렇게 맵시있게 곱게 가꾸어 두지는 못했다. 이 나라 백성들의 향토애를 일찍부터 높이 평가해 온 터이지만 새삼 아니 놀랄 수 없었다. 『가로수 하나 잘 키워둔 것이 무엇이 그렇게 장한 것이냐』 할지 모르지만 그런 것이 아니다.
내가 보통학교 2학년 때다. 당시 교장 선생님이 학교를 중심으로 동서 10리 가량 도로 양편에 벚꽃나무의 묘목을 심어 학생 한 명이 나무 한 개씩을 돌봐 가꾸도록 명패까지 달아서 보살피라 한 적이 있었다. 만일 이 나무가 잘 커서 꽃이 만발할 지경이면 그야말로 장관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어떠했던가? 몇달 못 가서 한 그루도 남지 않았다. 이유는 우차(牛車) 모는 사람들이 꺾어서 소 엉덩이 때리는 매로 써버렸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애석한 일이냐?
나무는 심어서 꺾지만 않으면 제대로 크기 마련이다. 업어 달라든가 안아 달라는 말도 않는다. 대게의 경우 먹을 것을 달라든가 마실 것을 달라지도 않는다. 초봄에 잘 심어서 다치지 않으면 저절로 자라기 마련이다. 이러한 것을 한 그루도 안 남게 그것도 값진 나무를, 그것도 소 엉덩이나 때리려는 하잖은 일 때문에 죄다 꺾어 버렸으니 이 민족의 못된 손 버릇과 공공정신 결핍을 무엇이라 표현해야 옳을 것이냐? 소 엉덩이 때릴 매는 그 흔한 백양버들 한 가지만 하면 잘 간수해서 일년도 넘게 쓸 수 있지 않겠느냐? 이러메로 남의 나라의 잘 키워둔 도로수를 보고 느낌이 없을 수 있겠느냐?
나무 한 가지 꺾는다. 물론 극히 사소한 일이다. 그러나 이것이 여러 사람의 손으로 또 그것이 거듭될 때 결과는 절대로 사소한 것이 아니다.
진합태산이란 우리 나라에서도 널리 퍼져있는 말이 아니냐? 그러매도 우리는 이 사소한 것에 마음을 쓰지 않으니 웬 까닭일까?
큰 사업가나 큰 학자나 큰 발명가나 큰 전략가들이 성공한 것도 다 이 사소한 것을 경홀히 여기지 않았던 까닭이다. 사소하다 해서 소홀히 취급하고도 성공한 사람은 유사이래 하나도 없을 것이다. 아마 우리나라에 그다지 큰 인재가 많지 못한 것도 이 사소한 것을 소홀히 여기는 민족성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