悖倫的(패륜적) 産兒制限(산아제한) 敎會(교회)는 反對(반대)한다
京鄕新聞 7日字 記事를 읽고
발행일1963-08-18 [제387호, 4면]
산아제한에 대한 가톨릭교회의 입장은 일반신자나 비신자나 대략 알고 있다. 교회의 이 태도가 행여나 변하지나 않나하는 억측을 많은 이들이 가지게 하는 최근 일간 신문의 기사를 보았다. (경향신문 제5면 8월7일 지방은 8일자) 그것은 죤록크 박사를 단평(短評)한 글이었다.
먼저 록크박사를 평하면 그가 교회의 지지를 받고있는 분이 아니고 대단히 위태로운 말을 하는 사람이다.
최근까지 「보스톤」 대주교 쿳싱추기경과 산아제한 때문에 입씨름한 것을 우리는 아직 기억한다.
자기의 주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서 교회가 비난한 여러가지 자기 말은 전연 기억치 못하고 교황 성하께 충성을 다한다고 하고 자기 교구장의 문헌(文獻)을 자기설에 맞는 부분만 인용하는 사람이다.
자기 주장을 내세우기 위해서 남의 말을 일면적으로만 인용하고 그것을 마음대로 묘하게 떼어붙임으로써 저자의 말과는 전연 다른 이론을 전개시킬 수가 있다.
이것은 논문을 쓰는 학생뿐 하니라 이성원리(理性原理)를 인정하는 소위 직식인들로서는 절대로 피해야 할 점이다. 이 논평자는 산아제한(무분별한)을 선전하기 위해서 록크박사의 글을 인용하고 「타이틀」을 자기 구미에 맞게 마음대로 붙였다는 인상을 준다. 즉 그 신문에 인용된 록크박사의 말과 그것을 평해서 붙인 「타이틀」 사이에 너무 거리가 많다. 『자연거역이 인간의 의무』 운운한 것이 눈에 꽤 거슬린다. 구스타브 위걸신부님이 시인하는 자연의 이용을 이렇게 번역한 모양이다.
인간은 모든 것을 자기 목적 달성에 맞추어 이용한다. 만물이 인간을 위해서 주어진 것이다. 따라서 목적을 달성하도록 자연을 이해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무엇이 그리 자연거역인가?
호우로 물이 방축을 넘어 들어오고 집들이 침수될 때 자연적으로 산다해서 가만히 있어야 하는가? 강물을 막아야 한다. 이것이 자연거역이 아니다.
파리가 밥숟갈에 병균을 내까리는데 가만히 있어야 하는가? 쫓아야 한다. 이것이 자연거역이 아니다.
자기 목적을 알고 그 달성에 알맞게 모든 것을 조절하고 발전시키는 것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특징이다. 또 의무이다. 남녀가 결혼해서 성생활을 하면 새로운 인간생명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자연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위에 말한 예와같이 인간다운 양육을 못하거나 인구가 많아서 땅에 발둘 곳이 없고 먹을 것이 떨어져 곧 굶어가는 지경에 어린애를 자꾸만 놓아서는 안 된다. 즉 산아제한을 해야 한다. 교회가 필요에 의해서 산아제한을 반대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그러나 인간의 목적과 윤리규범 테두리 내에서 하라는 것이다.
그렇게 할 때 그것이 자연을 거역하는 것이 아니라 이용하는 것이다.
왜 구태여 「자연거역이 인간의 의무」라고 번역론평을 하였는지. 또 그것이 무슨 큰 무기인양 대서특필 했는지 이해하기 곤란하다.
산아제한을 주장하는 분들 중에는 본능적 동물적 성욕을 아무 윤리적 제재없이 따르는 것을 가장 자연적이라고 한다.
그런데 여기서는 꼭같은 주장을 하는데 자연을 거역한다고 하고 그것이 인간의 임무라고 한다.
칼은 그 기능이 사물을 절단하는 것이라 해서 사람의 목까지 무분별하게 베어서는 안 된다. 목적에 따라서 써야 한다.
다음 록크 박사 『평화를 위협하는 성의 힘』이란 어구와 그것을 평한 내용도 현실을 망각한데서 나온 것 같다. 산아제한을 하지 않아 인구과잉으로 세계평화가 위협을 받는 때가 언제 올지 모르겠지만 만일 인간이 자기 본목적에 위반되는 패륜적이고 무분별한 산아제한 방법을 쓴다면 거기서 파생(派生)되는 (벌써 오늘날 연출되기 시작) 부부간의 불목(不睦)과 이혼 사생아의 증가 고아들의 범람, 성행위의 난잡(젊은이나 기혼자들이나)으로 가정의 파괴가 초래되고 인간 개개인의 성에 대한 윤리관이 희미해지며 결국 양심의 무감각으로 로마재국과 같이 성의 윤리타락으로 종말을 맺게되는 날이 더 빨리 올 줄 믿는다.
록크뿐 아니라 무조건 산아젷나을 주장하는 자들은 결혼과 가정 생활이 성욕을 채우기 위한 하나의 놀이터로 해석하는 모양이다.
한 가톨릭 신자가 아무리 세상에 알려졌다 하더라도 만일 비틀어진 도덕율을 주장 고집한다면 교회는 이런 불순한 자녀에게 덮어놓고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교회는 비단 성문제뿐 아니라 그리스도에게서 이어받은 신앙의 유산을 거사리는 자녀들과 세기를 통해가면서 살아가야 한다.
밀밭에 가라지가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아무리 묘한 방법으로 그리스도가 가르치지 않은 것을 가르치려고 할 때 교회는 그 술책에 혼미(昏迷)되지 않는다.
오늘날 록크를 위시해서 교회 내에서 사회 지위와 권세를 미끼삼아 많은 가라지씨를 뿌리려고 하는 자녀들이 많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끝까지 자기네들의 그릇된 주장을 고집하고 무분별한 산아제한 방법을 쓴다면 가정과 사회의 핵심을 해치게되고 인류는 원자폭탄이나 인구과잉으로 망하기 전에 완전히 윤리규범에서 벗어나고, 인간이 동물이하로 타락함으로 먼저 자멸하게 될 것이다.
인간이 다른 유(有)에 부여되지 않은 이성을 가졌기 때문에 만물의 영장(靈長)이라고 하고 또 그만큼 고차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다. 만일 이 이성의 기능이 물체적 육적 쾌락향유에만 있다고 주장한다면 물론 그것은 가톨릭 사상과는 정반대되는 인간의 영신면을 송두리채 부인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인간이란 말 자체가 모순이지만 생각하고 따지고 연구할줄 아는 물체(物體)이다.
물체에게 법이니 윤리도덕이니 양심이니 하는 것은 마이동풍이고 시간 허비이다.
다만 이 신문기사를 읽고 신자들이 산아제한에 대한 교회의 입장이 바꾸어지지나 않나 하는 의혹에 빠져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