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國籍(국적) 없는 小女(소녀) (14) 아버지와의 拒離(거리) ①
발행일1963-08-18 [제387호, 4면]
『정말 편지도 못 받아 봤어?』
진호는 다져 묻는다. 도서관에서 을지로 네거리로 가는 길은 은행과 그밖에 빌딍들이 덮문을 내린 뒤라 어둑컴컴했으나 급박한 진호의 표정을 그 목소리에서 읽을 수 있었다.
(연애편지를 했나?)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였으나, 일부러 시침을 떼고,
『만났으니, 말로 하세요?』
『정말 못 받았어?』
진호는 걱정이 되어 재차 묻는다.
『배달이 잘못 됐는지도 모르죠!』
아버지의 얘기는 건드리기가 싫어서 딴전을 부렸다.
『그럴리가 없을텐데?』
『자동차가 가다가 사고를 이르키듯 편지도 사고날 적이 있지요 뭐?』
나는 일부러 가볍게 웃었다.
『…남이 보아서는 안 될 편지인데, …미스양만이 보아야 할 글인데…』
진호는 혼잣말 비슷이 중얼거린다.
『지금 단 둘이 만났으니 얘기하기 마침하지 않아요?』
『……』
진호는 잠시 말이 없이 걷고있었다.
『얘기 허세요?』
나는 진호의 입에서 나올 말을 예상하면서도 오히려 기다려졌다.
『비밀 얘기아요?』
일부러 그의 마음을 돋구기 위해서 다소곳이 물었다. 나보다 일곱살은 위인 진호를 동배나 동생쯤으로 다루듯하고 있는 내 자신이 스스로 웃읍기도 하고 유쾌하기도 하다.
『편지로 쓰신 말 입으로 못할건 없지 않아요?』
굳게 닫힌 그의 입을 바라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혹시 미스양의 아버지가 보시고 감추시지나 않았을까?』
진호는 편지의 행방이 매우 궁금한 모양이었다.
『글쎄요? 우리 아버지는 그런 분이 아닌데』
싫은 아버지지만 남 앞에서 잠시 보호해 두고 싶은 생각이 든다.
『아마 이름이 비슷한 딴 집에 배달되었을꺼야요』
『27의 15지요?』
『네!』
『번지와 이름을 정확히 썼는데 왜 딴 데에 배달이 되?』
진호는 석연치 않은 표정이다.
『아무튼 못 받았으니 나에게 얘기하세요!』
그는 한참 말없이 걷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입으로 할 말은 아니야.…』
『그럼 똑같은 내용의 편지를 다시 한 번 써서 도서관으로 가지고 나오세요. 저녁에 늘 도서관에 있을테니까』
『… 손으로 줄 그런 편지도 아니야!』
『우표를 붙여서 우체부의 손으로 배달되어야만 하나요?』
진호는 고개를 끄덕한다.
『무슨 내용이길래 우표딱지가 꼭 붙어야만 할까?』
『………』
역시 진호의 입에서는 말이 풀려지지를 않는다.
『그럼, 동이네 집으로 부쳐주세요.』하며 나는 동이네 주소를 일러주었다. 진호는 수첩을 꺼내서 적고나더니,
『… 미스양의 아버지가 가로챘지?』하고 말한다.
『…그런 일은 없을것 같은데… 가서 알아 보아야죠.』
『…미스양의 모친은 내가 「후렌드」가 되는걸 싫어 안하셨죠』
『어머니는 진호씨를 좋아하셨어요. 진실한 사람이라고 늘 칭찬하셨죠.』
『아버지는?』
『아버지는 진호씨를 몰라요?』
『내가 가서 한 번 뵈올까?』
『……』
이번에는 내가 망서리었다. 어쩐지 좋은 결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예감이 든다.
『그만두세요』
『왜?』
『우리 아버지는 요새 사람 만나기를 싫어해요.』
『몸이라도 편찮으신가?』
『아마 그런가 보아요』
이렇게 적당히 대답하고는 화제를 돌려, 도서관에서 읽은 「죽음과 사랑」이라는 소설의 줄거리를 끄집어냈다.
그 소설 주인공인 남녀는 죽을날이 얼마 남지 않은 병자들인데 서로 다가오는 죽음을 바라보며 일분 일초를 헤듯이 시간을 아끼며 안타까이 사랑하는 모습을 그린 것인데 나에게는 퍽 감명이 깊었다.
나는 독후의 감명은 늘 혼자 조용히 거니며 남한테 잘 이야기를 안 하는 편인데, 아버지의 이야기를 막기 위해서 버스로 오는 동안 장황히 얘기를 했다. 진호는 흥미 있는 표정으로 열심히 귀를 기울이는 것이었다. 내가 내릴 정거장이 다았건만 이야기도 끝나지 않았다. 진호는 댓정거장 더 가야 하는데, 일부러 내려서 우리 집 앞까지 바라다주며 얘기를 계속해서 들었다.
우리집 문 앞까지 와서도 얘기가 남아 잠시 어두컴컴한 골목에 서서 미진한 얘기를 계속했다. 날씨는 쌀쌀했으나 우리는 추운데 서서 얘기의 끝을 맺었다.
『동이네 집으로 꼭 편지하세요!』
나는 집 앞인지라 나직히 말했다.
문은 잠겨있고 한참 흔드니까 복순이가 나왔다.
『왜 빨리 안 열어줘…』
발이 시리고 추었기 때문에 불평을 말했다.
『아저씨가 문 열어주지 말라고 하셨어…』
복순이는 속삭인다.
『왜?』
일부러 안에까지 들리도록 크게 말했다.
『늦게 온다구?』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오는 길인데 뭐!』
이 목소리도 아버지 방까지 들리도록 컷다.
『복순아 나한테 편지 온 거 있었지?』
대문을 잠구는 보순이 귀에 대고 살짝 물었다.
『아저씨가 뺏으셨어. 왔단말 하지 말라고 그러셨어…』
『두통이지?』
『음』
『그 편지 었다 두시던?』
『처음 온 건 찢어서 쓰레기통에 넣어 버리셨어』
『또 한 통은?』
『그건 모르겠어.』
나는 아버지에 대한 전투 태세를 취하고 마루로 올라섯다. 안방문이 활짝 열리더니,
『나순아 이리 들어왓!』
날카로운 목소리다.
『왜 그러세요?』
일부러 태연이 반문했다.
『지금 몇신줄 아냐? 여태 학교서 공부했단 말이냐? 계집애가 어딜 다니다가 이제 오냐?』
『도서관에 갔드랬어요』
『………』
문턱에서 보니 안방은 훈기가 안윽해보였고 그 속에 들어가서 몸이라도 녹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나 나는 아버지에게 등을 보이고 성큼성큼 건느방으로 왔다. 여전히 냉골이며 바깥기온이나 다를 것이 없다. 손을 더듬어 전기불을 켜니 추은기가 좀 덜했다.
돌아보니 건너방 문턱에 아버지가 와서 어느틈에 서있다.
『바른대로 말해, 어디 갔드랬냐?』
『도서관에 갔다지 않아요!』
『정말이냐?』
『아버지같이 거짓말 안 해요.』
『내가 언제 너한테 거짓말 하더냐? 이 년이 애비한테 웃읍지도 않구나?』
『그럼 왜 나한테 온 편지를 한부러 찢어버렸세요?』
『뭐? 너의들 공부하는 학생이 그따위 연애편지 받게 됐니? 부랑자들이나 그따위 편지하는 거다!』
『왜 그 사람이 부랑자야요, 부랑자 노릇하는거 보셨에요?』
『그런 편지 보내는 놈이 별 수 있냐?』
『그 편지에 나쁜 말이 써 있었단 말이야요?』
『요년 좀 봐. 아버지한테 대드네?』
석고상 흰자위가 잠시 고정되어 노려본다. 자칫하다가는 주먹이 날라올 판이다.
『아버지 편지를 제가 찢으면 좋겠어요?』
나는 좀 부드럽게 말했다.
『아니, 이년아 부랑자가 연애하자고 보낼 편지가 그렇게도 좋으냐?』
『그 사람은 공부도 잘 하는 대학생이야요. 그리고 착실한 카톨릭 신자야요. 괘니 부랑자라고 그러지 마세요.』
『너 인제보니 그 녀석하고 만나고 왔구나. 편지온걸 아는걸 보니?』
나는 대답 대신 아버지 코 앞에서 방문을 콱 닫아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