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코바=RNS】 소련의 「이데오르기 전문가」 단체의 위원장은 전면적인 대책을 세워야 할 일은 반종교(反宗敎)에 있어서 중대한 후퇴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소련 공산당 중앙당의 한 비서인 일리체프는 『모든 공지자가 참가해야 하는 공산주의 거설의 영구적 과업보다 달리 큰 투쟁은 없다.』고 하면서 소련의 모든 신문, 특별히 월간 「과학과 종교」까지도 무신론 선전을 실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리체프의 25「페지」에 달하는 논설은 중앙당 기관지(월간) 「공산주의」에 발표되었었다. 동지는 소련정책의 토론 및 구성에 있어 가장 강력하고 영향력을 가진 기관지이다.
무신론의 교리화(敎理化)를 위한 일리체프의 논설과 연설 등을 동지가 기사화한 일은 많으나 동지에 직접 집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것은 분명히 전국의 무신론 활동의 지침을 삼자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동 논설은 전반적으로 공산주의 「이데오르기」가 종교적 신념과는 「절대적 상반(相反)된 것임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교회지도자들이 아무리 정부의 정책을 받아들이고 아무리 「평화」 구실의 그 강력한 뒷받침이 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그 사실 (그 상반성)은 진리라고 했다.
이와관련해서 일리체프는 「우쿠라이나」의 한 정교 신부의 사건을 인용했다. 그는 공산당의 모든 계획을 지키면서 『그리스도형제애의 명령과 관련시킨』 자백을 했었다고 밝혔다.
『공산주의와 종교적 견해간에 차별이 없다고 해석하려는 생각은 틀렸다』고 그는 단정했다. 『그 연고는 공산주의 생활에 대해 능동적 태도를 취하는데 대해 종교는 수동적인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는 『이 종교신봉자들의 소극성은 공산주의 건설에 있어 큰 장애가 되고 있다』고 논평했다.
일리체프는 제2차대전 후 종교의 행동화(공산주의의 능동성 같은-編註)를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중앙 러시아 보다 강력한 종교의 영향을 받고 있는 「우크라이나」 및 「발틱」공화국들이라고 했다.
그는 통계의 근거를 밝히지 않았으나 그들 가운데서 종교의 영향을 받는 것은 40-75%까지는 부녀자들이라고 지적했다. 세례를 받는 절대다수는 가난한 비기술노동에 종사하는 인민들이라고 했으나 이 또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았다.
그는 종교 신봉자를 셋으로 나누었다. 강한 종교정신으로 행동적으로 교회에 나가는 자들과 둘째 가끔 생각나는 대로 교회에 나가는 자들 및 진실히 신을 믿지 않으면서 아직도 결혼, 장례 그리고 자녀들의 세례를 받는 자들이다. 그는 이 세 집단에 대한 계획을 제안하고 있다.
일리체프의 글은 러시아 정교 기관지에도 가끔 게재되었으나 동기관지는 비배품으로 일반에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항상 이 반종교 운동의 확대와 효과를 노렸음이 분명하다.
일리체프는 인민의 어떤 층이 아직도 종교를 버리지 못하고 있는 그 구체적 이유를 분석해갔다.
종교에 관심을 새로 가지게 된 층은 관리와 공장으로부터 은퇴하여 그 감시를 벗어난 노년층인 것을 무시할 수 없다고 햇다. 「모스코바」의 한 연금 부양자는 삼년만에 옛동무를 찾고 『신을 저바릴 수 없다. 교회에 나감으로써만 고독을 면할 수 있다.』고 한 실례를 들었다.
또한 러시아 정교회의 아름다운 의식은 『아직도 매력을 주는 세례, 혼례 등을 교회에서 거행케 해주고 그것은 한평생 잊을 수 없는 기념을 장만해 주고 있다』고 인정했다. 그때문에 그 해결 방도로서는 『어떤 교회예식을 대치할 수 있는 그보다 더 화려한 민간 예식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목할 만한 대안을 설명했다.
교회에 나가는 자들이 보여주는 다른 매력은 침례교 등에서 부르는 노래에도 있다고 설명했다. 「코카사스」지방의 「키슬로보드스크」와 「파티고르스」시 등에서는 청년들이 종교극 및 음악회 등을 개최하여 특히 젊은 층을 당겼다고 지적했다.
어린이들에게 무신론을 주입시키는 활동은 특별한 주의를 환기할 것을 강조했다. 어린이들은 부모의 영향을 받는 만큼 여기 주목할 것을 역설했다.
『소련 각급학교에서의 무신론 교육의 결함은 결국 그들의 부모들의 영향을 받는 종교에로 기울어졌다.』고 경고했다.
『광대한 소련 내에는 무신론 교육계획이 전혀 서있지 않는 곳이 많다. 3천에 달하는 대치민(代置民) 지역 및 「야로슬라불」 지방은 반종교 교육을 실시하지 않는 곳으로 간주된다』고 지적했다.
이것은 교회에 나가는 자들을 탄압해서 그들을 더 키워 주는 것보다 그들에게 그것과 대치해 줄 수 있는 방도를 주는 고급 술책인 것이다. 그들로서는 진보된 견해인 것 같다.
「이데오르기」분야에 있어서는 그가 큰 지휘권을 가지고 있다. 그는 중앙 위원회 총회에 이 문제를 연설할 것이며 역시 이런 방향을 제시할 것 같다. 그는 「흐루시초프」의 평화공존정책을 지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공존이 「이데오르기」상의 공존이 아닌 것을 밝혔다. 「이데오르기」상으로는 서방 및 그 영향에 대해 휴전(休戰)이 없다고 경고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