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주 예수 그리스도 『그때에』 즉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나의 가장 기뻐하는 자라』 불리셨을 때에 「요르단」 강에서 올라와 광야에 들어가서 마귀와 1대1로 대결하시려 떠나셨읍니다. 내가 죽나 네가 죽나 하고 결단하시어 출전하는 용감하신 그리스도를 위하여 부전사(赴戰詞)가 없어서는 안되었으니, 복음사가(福音史家) 성 마테오는 소홀히 여기지 않고 짤막하나마 정중하게 4장 1절에 읊으시기를 『성신의 인도하심으로 광야에 가시어 하여금 마귀의 시험을 당하고자』 하셨다고 하였읍니다.
그 대결이 얼마나 치열하였나는 것은 맞붙기 전에 서로 상대방의 허(虛)를 엿보기 주야 40일이나 걸렸으므로 가히 짐작하겠읍니다. 원조 타락 이후 그때까지 인류에 대한 절대권력을 그리스도께 빼앗기지나 않을까 염려한 마귀는 사력(死力)을 기울려 책동하였으니 그리스도께서 「요르단」 강에서 올라오시자 말자 옆에 숨어서 떠나지 않았읍니다. 신공을 하시나, 쉬시나, 묵상하시나를 가리지 않고 온갖 행실을 살펴 주의 성품을 알고자 애를 썼읍니다. 얼굴 주름살이 하나 움직이는 것을 보고는 어떤 생각에 잠겼는가를 알고자 하였으니 주의 괴로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읍니다. 옆을 떠났나 싶었는데 더일층 맹렬히 공격해오니 『주야 40일 동안 엄재(嚴齋)하셨읍니다.』 사람의 힘에 한도가 있는지라 40일 엄재 후에 주는 굶주렸읍니다. 지쳤읍니다.
때는 왔다고 좋아하며 마귀는 설치고 덤볐읍니다. 종전(從前)의 힘을 배가하여 마구 달려들었읍니다. 완력도 삼가하지 않고 주를 끌고 지붕 꼭대기에 올라가지를 않나, 심리작용을 일으켜 산위에서 보일 턱이 없는 만국(萬國)의 영화를 보여주질 않나 심지어는 천신의 지혜까지 이용하여 성서 귀절을 끄집어 내는데 이르러서는 열린 입이 다물어 지지 않습니다 이느 마귀의 최후의 발악 같았읍니다. 그뿐이겠읍니까? 만국 영화를 보여준 다음에는 제 앞에 엎으려 절을 하라 하니 미쳤다고 보지 않을 수 없었읍니다. 이렇게 미친 듯이 최후 발악하는 마귀를 그리스도는 이겨내셨읍니다.
주는 원본죄(原本罪) 없는 사람으로서 마귀 시험을 당하실 분은 아니었는데 감히 당하신 것은 죄많은 우리를 싫어하시어 멀리 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우리 사이에 거처하시며 우리와 더불어 희비애락을 같이 하고자 하시는 사랑에 그 까닭이 있음은 두 말 할 것 없읍니다. 특히 원하시는 바는 우리들도 당신을 따라 마귀 유혹을 이겨 승리를 거두라는데 있읍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유혹과 승리란 어떤 것이겠읍니까?
성경에 의하면 그리스도에 대한 마귀의 유혹은 셋이었읍니다. 어느것에나 기회가 있고 시사(示唆)가 따르고 해결이 내립니다. 『이미 주야 40일동안 엄재하신 후에 주린』 기회를 타서 사람의 탈을 쓰고 『가까이와』 너 만일 천주의 아들이거든 이 돌을 명하여 하여금 떡이 되게 하라.」』고 시사합니다. 영적의 목적이 다른 사람의 영육간(靈肉間) 도움에 있다면 죄악성을 면치 못하니 그 유혹을 물리치면서 『사람이 음식으로만 살지 아니하고 오직 천주의 입에서 발하는 모든 말씀으로 사다』고 해결지었읍니다 가난해서 종교를 신봉 못하겠다고 경제적 이유만을 내세우거나 하도 쪼들려서 가정불화를 일으켰다는 사람들은 승리의 해결을 짓지 못한 패자입니다. 몹시 굶주리신 그리스도께 천상적 떡을 제공하엿으나 소용없었읍니다. 주는 천주의 입에서 발하는 말씀, 만물을 창조하시고 보존하시는 말씀, 인간 만사를 살펴 주시는 천주 안배에 일신을 맡김으로써 마귀 유혹에 이겼읍니다.
『이에 마귀가 예수를 끌고 성부(聖府)로 가 성전지붕에 두어』 기회를 마련하고 『너 만일 천주의 아들이거든 아래로 뛰어내려라. 대개 기록하였으되 천주 너를 위하여 그 천신들을 명하시매 천신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네 발로 하여금 돌아 다치지 아니케 하셨다니라』 시사하셨거늘 『또한 기록하였으되 주 네 천주를 시험하지 말라』고 자랑의 유혹을 물리쳤읍니다.
사람들이 많이 있는 성전 마당에 훨훨 뛰어 내리는 짓은 경솔할 뿐더러 왕이 왕이신 이를 모시는 점잖은 천신들을 제발이 다치지 않도록 하려고 동원시키는 꼴을 누가 차마 볼 수 있겠읍니까? 천주의 영광을 생각지도 않고 제 명예만 굼꾸며 깨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이 유혹의 패자입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좋은 것들 중에서 천주께로부터 받지 않은 것이 없으니 자랑보다도 감사함이 상책이라고 봅니다. 실패를 거듭한 마귀는 블쓱히야 단숨에 『예수를 끌고 매우 높은 산에 가서 세상 만국과 그 영화를 예수께 보이고 「너 만일 엎드려 내게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고 기회를 놓치지 않고 허영과 미색(迷色)의 유혹을 강행하였읍니다. 사라질 부귀영화지만 현재 찬란히 빛나는 그 앞에 황홀하여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혹시나 자기를 경배하지 않을까 희망을 걸었지만 마귀는 뜻을 이루지 못하였읍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대개 기록하였으되 주 네 천주께 경배하고 다만 저를 섬기라 하였나니라.』고 호된 책망만 들었읍니다.
사물에는 질서가 있는 법인데 이 질서를 지키지 않으면 인간 도리가 파괴됩니다. 천주께 첫째로 드릴 존경을 부귀나, 명예나, 쾌락에 돌린다면 질서를 문란시키는 바요 인간도리에 어긋나는 짓입니다. 돈벌이 하는 재미에 계명을 어기고, 주책없이 명예를 쫓아 소견을 잃고, 지나친 쾌락에 빠져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이 유혹의 패배자니, 도저히 『사탄아 물러가라』라는 개가(凱歌)를 올리지 못합니다.
그리스도는 유혹 셋을 모조리 이겨냈읍니다. 최후의 유혹을 이기시사 『사탄아 물러가라』고 호통을 쳤읍니다. 그 소리는 넓은 광야에 두루 퍼져 우리 귓전에 들려 옵니다.
이 개가는 그리스도 자신의 개가인 동시에 인류 전체의 개가이기도 합니다. 우리들은 처음으로 마귀에 대하여 개가를 올렸읍니다. 그것은 틀림이 없읍니다. 개가하여 승리를 거두며 얼마나 즐겁겠읍니까? 미약하여 유혹을 당하기 두렵기도 하지만 유혹을 당해야만 할 팔자이니 어쩔 수 없읍니다. 이왕 문라나지 못할 몸이니 용약해야 되겠읍니다. 신앙의 갑옷을 입고 전쟁터에 나섰으니 찔리기 전에 제빨리 신공(神工)과 __의 양도(兩刀)를 __유혹을 무찔러야 우리 생명을 보전합니다.
그리스도 세례를 셋 받았읍니다. 우리도 셋을 받게 마련입니다. 그리스도는 「요르단」 강에서 수세(水洗)를 받으시고, 유혹의 화세(火洗)를 받고자 광야에 들어가셨고, 고난의 혈세(血洗)를 받고자 「골고타」 산에 올라가셨읍니다. 우리는 교리를 배우고 신앙을 실천하여 수세를 예비하였읍니다. 화세도 예비해야 되니, 그 예비는 신공과 엄재밖에 없읍니다. 신공은 하늘의 도움을 내리우고, 엄재는 영혼의 육신에 대한 통솔력을 줍니다. 혈세란 주를 사랑함으로 생명을 버리는 것인즉 그 예비를 하려면 끊임없는 애덕을 닦을 수 밖에 없읍니다. 완전무결하신 그리스도게서 그 예비에 심혈을 쏟으셨다면 우리는 얼마나 노력해야 되겠읍니까? 이 노력이 부족하면 도저히 유혹을 이기지 못하겠고, 또한 모처럼 본을 보여주신 주의 승리가 허사로 돌아가지나 않을까 두렵습니다.
盧景三 神父(꼰벤뚜알 성프란치스꼬회·대구 범어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