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國籍(국적) 없는 小女(소녀) (15) 아버지와의 拒離(거리) ②
발행일1963-08-25 [제388호, 4면]
『못된년 어른 앞에서 방문을 덜컥 소리나게 닫는 버릇은 어서 배웠느냐?』
닫은 방문이 열리고 나직하지만 역정이 몹시난 음성이다.
나는 미리 예상했던 일이라 등을 보이고 서 있었다.
손이 별안간 내덜미를 붙들더니 도아앉히고 그도 바싹 내 앞에 앉는다.
아버지의 눈에는 노기의 불이 파랗게 타오른다. 나는 그의 얼굴은 보지 않고 바람벽에 시선을 던졌다.
『이년 점점 버릇이 고약해지는구나!』
한층 목소리를 죽이고 말한다.
딴 사람들은 화가 날수록 음성이 커지지만 우리 아버지는 화가 날수록 음성은 짜부라진다. 그는 이사온 동리에서도 점잔은 사람으로 통했으며 집안에서 큰소리가 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었다.
이윽고 아무 예고도 없이 그의 손이 찍개벌레모양 내 무릎살을 꼬집는다. 과히 아프지는 않았찌만
『아야!』
하고 기겁을 하며 물러났다.
『이 년이 이웃에 들리게 엇다 소리를 질르냐?』
이번에는 머리채를 움켜잡고 흔든다. 그건 바로 전에 어머니한테 하던 버릇이었다.
머리 뿌리가 지끈했으나, 그것도 견딜만한 아픔이었지만 일부러
『아야, 아야!』
연거푸 소리를 질렀다.
『이, 이년이 또 큰 소리를 내지?』
『그럼 때리지 마러요!』
『이 년이, 내가 언제 때리더냐?』
자기 변명을 이웃에 광고하겠다는 건지, 이 말은 좀 컸다.
그 말이 떨어진지 십초도 못 되어 그의 주먹이 또 들린다. 아직 주먹이 내 몸에 닫기도 전에
『아야!』
하고 소리를 질렀다. 내가 생각해도 조금 빨랐다.
『이 년이 인제보니 되게 엄살을 부리는구나!』
『…아버지의 얼굴은 보기만해도 나는 아파요!』
『뭐? 뭣이라구?…』
그는 한 삼십분간, 호흡하듯이 나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물론 이웃에 안 들리도록 자그맣게 숨을 죽인 목소리였다. 나는 첫째 배가 고파서 욕이고 말이고 귀에 들어오지가 않았다.
『작식은 부모의 말에 복종해야 하는거다 이 년!』
이렇게 그는 마지막 말을 맺었는데 내 귀에 남은 것은 이 년, 썅년, 미친년, 하던 대명사 뿐이었다. 중간에서부터 그 대명사의 수효를 헤어보았는데, 끝마디의 이 년까지, 모두 열다섯번이었다. 삼십분이, 나에게는 세시간 만치나 지루했다.
아버지가 안바응로 간 뒤, (내 생각에는 더 잔소리가 있을텐데 추워서 빨리 간 것 같았다) 복순이가 곧 밥상을 들고 들어왔다. 콩나물국이나마 따끈했다. 더운 음식이 배 안에 들어가니 떨리던 몸이 풀린다.
『아씨, 왜 아까 소리 질렀어!』
복순이가 걱정스러히 묻는다.
나는 대답 대신 눈을 찡긋하고 혀바닥을 내밀었다.
(요댐부터라도 때릴라고만 해 봐 크게 소리를 질러야지!)
나는 속으로 이런 생각을하며 아버지의 약점을 이용한 것이 유쾌했다.
숙제거리가 있어서 식사 후에 책상 앞에 앉아서 한시간쯤 글씨를 쓰자니 손이 곱아 들고 몸이 다시 떨린다.
추운기와 함께 서글픈 생각도 머리를 오락가락한다.
아버지가 야단치는 까닭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왜, 내가 썅년이고 미친년이야? 김진호라는 아는 대학생한테서 편지가 온 것이 내 탓인가? 편지 한 사람 탓이지! 내 탓이라 하더라도 그 편지 때문에 그런 욕을 먹어야 할 까닭이 뭐야? 자기는 옛날에 어머니 집에 하숙하다가 연애가 걸리어 결혼하지 않았나? 연애가 그렇게 나쁜건가? 그리고 내가 언제 진호와 연애했나? 그저 안다 뿐이지…)
나는 생각을 중지하고 포대기 한 자루를 꺼내서 어깨 위에 둘렀다.
그러나 발이 시렸다. 아직도 숙제는 못 다 했는데 할 마음이 안 나고, 정처없이 어디론지 가버릴까? 이왕이면 겨울 없는 먼 남쪽나라에 가버릴까? 엉뚱하게 이런 생각이 내 머리 속을 스친다.
『나순아…』
이 때, 안방에서 부르는 소리가 난다.
『………………』
일부러 대답을 않고 기세를 엿보았다.
『나순아…』
상당히 큰 소리가 또 났다.
목소리가 큰걸보니 화가 풀린 것도 하기에 어슬렁어슬렁 안방으로 가보았다. 복순이는 데리미질을 하고 있고, 아버지는 돋보기를 쓰고, 신문을 보고 있었다.
『쓸대없이 고집 부리지 말고 이불 가지고 와서 이 방에서 자라!』
그 말은 비교적 부드러운지라 얼었던 내 마음이 춘풍에 눈이 녹듯이 조금 풀린다.
『냉돌에서 자다가 얼어죽어도 난 모른다. 이년! 말 안 들었단 봐라, 밖에 내쫓아 버릴테다….』
이 말을 듣자, 내 마음은 백팔십도로 다시 변했다. 풀리던 눈이 영하 이십도의 추위를 만난것같이 다시 얼어붙는다.
『복순이 너 가서 이불을 일루 옮겨놔라!.』
『……………』
복순이는 일어섰으나 내 표정을 보고는 주춤한다.
『빨리!』
나직한 아버지의 음성에 놀라 복순이는 건너방에 가서 내 포대기를 들고 왔다.
『시간이 늦었으니, 여기서 자라!』
『…숙제 하던거 마져하고 올 테야요…』
나는 건너방으로 건너 왔다.
『숙제거리 가지고 와서 이 방에서 하란말이다…』
매우 위협적인 음성이 내 뒤를 쫓아온다.
나는 책상에 턱을 고이고 엉거주춤 움추리고 앉아서 생각했다. 이젠 건너방에서 잘래도 이불이 없으니 잘 수가 없다. 그렇다고 어슬렁 안방으로 가기도 싫었다.
『뭣하니 빨리 오지 않구서…』
이번에는 소리도 크거니와 화난 음성이다.
『지금 책을 정리하는거야요!』
이렇게 대답은 해놓고 나는 여전히 책상 위에 턱을 고이고 있었다.
『왜 우리 아버지는 저럴까. 딴 아버지들은 저렇지 않던데?』
나는 슬픈 생각만 들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글성거린다.
하루에 연탄 한 개쯤 그까짓것이 아깝다고 이 방에는 불을 넣어주지 않지?
이 순간 내 머리에는 동이네 집이 떠올랐다. 열한시가 넘은 밤중에 내가 갈만한 곳은 거기밖에 없었다.
살금살금 소리 안 나게 미닫이를 열고 방을 나섰다. 책가방을 들고 나올까 하다가 하루쯤 학교 안 가면 어떠냐하는 생각에 그냥 나섰다. 운동화는 신지 않고 손에 들고 고양이 모양 대문 앞까지 왔다. 잠긴 대문을 불이낳게 열고는 맨발로 뛰었다. 한 길목에 와서 신발을 신고는 빠른 걸음으로 동이네 집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뒤를 돌아보니 조용했다. 문소리를 듣고 아버지와 복순이가 뛰어 나왔을 것이 빤했다. 돌지만 일부러 옆길로 걸어갔다. 나는 구슬픈 기분과 자유로운 기분을 동시에 느꼈다. (우리 아버지가 다정한 아버지였다면 나는 아버지 옆에 있는 거을 되려 즐겨했을텐데!)
찬바람이 눈물방울을 어룰듯이 차겁게 스친다. 동이네 집에가니 잠이든양 이 삼분 소리를 지른 뒤에야 문이 열렸다.
『아니, 웬일이니?』
동이 어머니는 깜짝 놀란다.
『아주머니 나 오늘 밤만 재워주어요…』
『어떻게 된 일이니! 들어오너라!』
안방에 들어가니 동이 아버지도 막 잠을 깬양 부시시한 눈으로 바라본다. 동이는 그 옆에 평화롭게 잠이 들어 있다.
『얘기를 하렴!』
동이 어머니는 재촉을 한다.
『어디 좀 갔다오다가 시간이 늦어서 그래요!』
동이 아버지가 있기 때문에 말하기가 싫었다.
잠시 후에 동이 아버지는 다시 잠이 들고, 동이 어머니 옆에 앉아서 이야기의 머리를 풀었을 때 대문 두들기는 소리가 난다.
나는 가슴이 뜨끔했다.
『실례합니다.』
하고 문을 연거푸 두두리는 목소리가 아버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