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國籍(국적) 없는 小女(소녀) (38) 장미꽃 ⑥
발행일1964-02-16 [제411호, 4면]
『아버지 들어오셨어요?』
대문 소리에 내다보는 복순이에게 나직히 물었다.
『아니』
나는 웅크렸던 어깨를 폈다.
텅빈 안방을 들여다 보고는 토끼같이 깡충깡충 뛰며 내방으로 왔다.
『이봐, 밥은 쟁반에다 줘!』
『쟁반에?…』
복순이는 주춤하니 바라보더니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하며, 나가서 대문을 잠근다.
『밥 차리는 동안에 아버지 오실까바 대문을 잠겄우』
자기딴에는 지혜로운 생각을 가졌다는 듯이 말한다.
『빨리다오, 얼핏 먹어치우게!』
머리통을 한대 얻어 맞을 각오를 하고 돌아왔던 나는, 행복감을 느꼈다.
우거지 찌개와 김치와 김 이렇게 쟁판 위에 날려온 것을 방문 앞에서 받기가 바쁘게 문을 닫고 입에 주어 넣었다.
『아씨!』 하고 복순이가 들어선다.
『편지 왔어!』
『나에게! 어디?』
『책상 설합 속에 보아!』
설합을 열어보니 네모진 흰봉투가 눈에 뜨인다. 발신인은 김진호였다.
입에는 밥이 든채로 봉투를 뜯어보았다.
편지의 첫머리는 일전에 받은 장미꽃에 대한 인사였다.
『…그 꽃을 나는 고상 앞에 놓아 두었어요. 기구 할 때마다 나순씨의 얼굴이 장미 속에서 피어납니다. 장미는 곧 「미스」양 같은 기분이 듭니다. 편지 답을 꼭 해주세요.』
이러한 사연으로 맺어졌는데 배가 고팠으므로 무심코 읽어넘기었다. 밥주발의 밥을 반쯤 먹고나니, 마음에 여유가 생겨, 다시한번 편지를 읽어보았다. 꼭 답장을 기다린단 말에 무슨 의미가 풍겨온다.
『아씨, 어서 밥 먹어치워요!』
아직도 복순이는 문턱에 서있었다.
『어서 온 편지유?』
복순이는 빙긋이 웃으며 바라본다.
『아무것도 아니야!』
『남자한테서 온 편진가 보지우!』
이때
『문 열어라!』 하는 아버지의 소리가 난다.
기겁을 하고 쟁반을 책상 밑에 감추고 편지는 설합 속에 도로 넣었다.
『네이!』
복순이는 큰 소리로 대답은 하였으나 급히 나가지 않고 내가 환경 정리를 끝마치는 것을 보고 나갔다.
나는 책상 위에 교과서를 펴고 그 앞에 낮아서 치마폭으로 쟁판을 가리웠다.
『나순이 돌아왔니?』
들어서면서 묻는 아버지의 목소리
『네에』
『언제 들어왔니?』
『벌써 왔시유!』
복순이는 능청맞게 대답을 한다.
이때 나는 건넛방에서 내다보았다.
『아버지 오세요…』
『……』
대답도 없이 아버지는 안방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어딘지 기분이 좋지 않아 보인다.
『조심해야 겠네…』
나도 혼자 속으로 속삭였다.
밖에서 기분 나쁜 일이라도 있었을 때 아버지는 사소한 일에도 화를 잘낸다.
『너, 딕슨인가 그 양키 만났니』
얼마 후에 부르기에 안방으로 갔더니 이렇게 묻는다.
『…아니요.』
알고 묻는 눈치는 아닌 것 같았다.
『한번 만나거든 우리집에 데리고 오너라. 내일이라도.』
『깡통 땜에요…』
『널 공부시키려면 돈을 벌어야지, 그만한 것도 모르냐?』
아버지는 떽 소리를 지른다.
『그까짓 자식한테 부탁하기가 치사스러워서 그래요.』
나는 부드럽게 대답했다.
『이 세상은 돈 밖에 없다.』
그는 성난듯이 말한다.
『…원 그눔의 새끼한테 돈땜에 욕먹은 생각하면 분해 죽겠다….』
『누구말이야요.』
『……』
아버지는 입을 다물고 말을 안한다. 담배만 뻑뻑 빨더니,
『내일은 딕슨을 데리고 오너라.』
『내일 「뮤직홀」에 가보겠어요.』
이튿날, 학교서 돌아오는 길에 「뮤직홀」로 옮기는 내 발걸음은 가벼웠ㄷ.ㅏ
전에는 금지구역이던 것이 오늘은 「패스」를 가지고 떳떳이 통과하는 기분이 들었다. 한시간이나 홀 안에서 기다렸으나, 딕슨은 나타나지를 않았다. 「미스터」 키다리도 보이지가 않았다.
돌아오는 길에 문득 어제 진호한테서 받은 편지 생각이 난다.
『…꼭 답장을 해주세요.』
하던 말이 메아리 같이 귀에 울린다. 나는 진호네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진호는 공부를 하고 있었던양 테불 위에는 노트와 교과서가 펴져 있었다.
그의 편지에 쓰인대로 테불 정면 벽에 걸린 고상 앞에 못을 쳐서 꽃광주리가 매달려 있었다.
우리집의 선반 위에 있을 때보다 제자리를 얻은 것 같이 한층 아름답게 보였다.
한참 이런 얘기 저런 얘기 하던 끝에 진호가 테불 위에 시선을 떨어뜨린채 나직하나마캐 묻는듯이 입을 연다.
『미스양은 「뮤직홀」에서 만나는 사람이 있다던데?』
『누가 그래요?』
『키다리가…』
『아버지 일로 만난거야요.』
『아버지 일이라니?』
『아버지가 그사람한테 부탁할 일이 있었거든요.』
『단순히 그것 뿐인가요!』
진호는 내 눈에 시선을 똑바로 맞추고 바라본다.
『그것 뿐이지요 뭐!』
『…그럼 내가 오해를 했군, 난 편지를 부친 것을 좀 후회했어요. …그 기분 알겠죠?』
『키다리가 뭐라고 그래요!』
『딕슨이라는 양키 애하고 보통 관계가 아닌 것 같이 말하더군. 그러나 나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말했어요』
『……』
『…미스양이 나에게 이 장미꽃을 보내준 것을 생각하고 나는 그렇게 믿었어요』
『……』
버리기는 아까와서 가까운데 사는 진호에게 준 그 장미꽃이 그런 뜻으로 해석된 것이 속으로는 우습기도 하였지만 진호의 얼굴을 보니 웃을 수가 없었다. 몇살 나이도 위고 대학생인 진호가 이 순간 동생 같이 내려다 보여진다.
『이 꽃 산건가요?』
『오빠가 「마도로스」야요. 외국 어느 항구에서 사온기야요.』
『이젠 그 양키하고 만나지 마세요. 만나서 같이 다닌다는 것은 남들이 오해하기 쉬워요…』
진호는 얼굴을 붉히며 말한다. 아머지가 기다릴 생각을 하고 나는 한 삼십분쯤 있다가 진호네 집을 나섰다.
진호가 좀 건방진 것 같은 생각도 들면서 어쩐지 그의 한손이 강하게 내 마음을 잡아끄는 듯한 느낌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