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遍歷譯(편력역)] 祈禱(기도)
발행일1964-02-16 [제411호, 4면]
기도는 은밀한 의존(依存)이요 낮은 목소리의 대화다.
인간의 긴 여로(旅路), 그 어디서라도 시작할 수가 있어 또한 좋다.
때론 가만한 말소리의 속삭임이요 더러는 말을 초월하는 묵언(默言)의 교량되어 스스로 엄숙하다.
은총 있으면 달빛도 비오듯 여기 쏟아져준다.
혼자 있어도 함께 하시는 분이 있다고 믿겨질 때 이미 한 영혼에 위로와 유연이 있듯이 혼자 말해도 듣는 분이 있다고 믿는 그 믿음을 기둥(柱) 삼아 잠시 외롬을 잊어볼 수 있다.
허나 때때로는 기도드림이 덧없게 여겨지고 한없는 깊이의 허망(虛妄)이듯 싶을 때가 있다.
닫겨진 집의 차거운 외곽(外廓)을 서성이다가 얻은 것 없이 돌아오는 심정을 품어보기도 한다.
거기쯤 그런 집이 있는 줄은 알지만 좀체 들어가서 영접받지 못하는 설음인들 왜 없으리.
다만 그곳은 헛되이 돌아와도 헛되지 않게 다시 가볼 수가 있다는 것을 부단(不斷)히 누군가가 일러준다.
내게 있어선 종교란 자주 회의(懷疑)의 가시꽃(荆花)을 피워내는 것.
신(神)은 수없이 얼굴을 숨기신다고 여겨지기도 했다.
기도는 하나의 길(路)이요 빈번히 오고 갔건만 생판 길을 잃어 멍멍히 주저앉을 때가 적지 않았다.
허나 연(鳶)을 띄워 가는 실(糸)이 하늘을 기어오르게 할 줄도 알았거니 소망과 사랑을 위해 사람은 기꺼이 기다린다.
기도의 으뜸은 지선 · 완미(至善 · 完美)하신 신을 찬양함이라고 어느 신부가 말씀했다.
이는 말하는 이와 말을 듣는 사람에게 다같이 즐거움을 주었다.
기도는 귀의(歸依)어야 한다.
그 속엔 갈망과 욕구도 있되 그것마저 인간의 분리(分離)에 쓰여짐이 아니고 필경은 신에게의 회귀(回歸)와 영원한 안식을 지향하는 인간적 향방(向方)을 함께 따라가는 그것이기 마련이다.
비둘기를 기르듯 염원을 기르미 살도록 사람을 만드신분 물을 긷는 드래박처럼 우리의 기도를 거두어주신다. 함은 참으로 기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