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이 당신의 교회아에서 봉독될 때 말하시는 분이 바로 당신이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말씀안에 현존하신다』
『…교회 전례의 부흥 발전 및 적응을 성취하기 위해, 동방 및 서방 양편의 존경할 전통이 증명하는 바 성경에 대한 따뜻하고 생활한 사랑을 증진시킴이 중요하다.』
『성경의 보배는 보다 아낌없이 공개되어 버려야 천주의 말씀의 상을 받은 신자들에게 보다 풍부한 음식이 마련될 것이다.』
위의 글은 1963년 12월 4일 제2차 바티깐 공의회의 제2차 총회에서 공식으로 반포된 성전례헌장에서 인용한 것이다.
이 말들은 천주의 감도된 말씀에 대한 그 깊은 공경과 사랑을 가톨릭교회가 최근에 공식으로 증명했음을 나타내고 있다.
자기의 친구요 전교의 동반인 디모테오에게 보내는 서간에 성 바오로는 성경에 관한 가장 강력한 권고를 주었다.
『그대는 이를 누구에게 배웠는지를 알며, 또한 그대는 어려서부터 성서를 아는 연고로다. 이(성서)는 능히 그대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바 신앙으로써 그 원함을 얻도록 그대를 지혜롭게 할 수 있느니라. 천주의 감도(感導)하심으로 된 바 모든(성)서는 가르치기를 위하여서나 반박하기를 위하여서나 개과시키기를 위하여서나 정의를 가르치기를 위하여서나 유익하니라. 이는 천주의 사람으로 하여금 완전하게 되어 온갖 선업을 쌓을 힘을 구비한 자 되기를 위함이니라』(디모에도 후서 3장 15-17장)
가장 탁월한 교부들만이 종도의 사상을 반향시켰었다. 4세기 말엽에 성 알부로시오는 이렇게 촉구했다.
『당신의 말씀을 마실 때 그대의 말씀이 구약이요 그리고 당신의 말씀이 신약이다. 영원한 말씀의 풍부한 영양분이 우리 사고와 심정의 속구석으로 내려 올 때 성경은 마시우고 씹힌다.』
그후 몇해 지나자 예로니모는 그의 여전히 이목을 끄는 문투로 이렇게 썼다.
『부지런히 일겅 그대가 할 수 있는 데까지 배워라. 그대가 잠잘 때는 성경책을 쥐고 졸때는 그대의 이마가 성경책장 위에 놓이게 하라.』
『성경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니라.』 고 그 성인은 말한다.
초대 교회의 이러한 증거가 넉넉치 못하다면 현대 교종들의 성명을 깊이 생각하라.
『가톨릭 계시(啓示)의 이 대근원(大根源)이 예수 그리스도의 양떼에게 안전히 또 풍성히 접근되기 쉽게 되기를 바라도록…… 종도직의 심려(心慮)가 나를 촉구하며 강제하기까지 한다. ……』 (레오 13세)
성 비오 10세는 어떤 부분의 신자들에게 『성경을 자국어로 읽기를 교회가 반대한다거나 어떠한 방법으로 막는다는 생각이 사라지도록』 신자들 사이에 성경의 보급을 부탁했다.
『…공경하는 형제들이여, 나에게 책임이 있는 한, 성 예로니모를 우리 지도자로 하여, 날마다 4복음, 종도행전 모든 서간경을 읽어 거기서부터 자기들의 영혼의 양식을 모으라고 신자들에게 촉구하기를 나는 절대로 그만두지 아니할 것이다.』(분도 15세)
『사람들이 성경을 알고 묵상하기를 보다 부지런히 권고받는 정도대로 그들이 성경을 보다 충분히 알고 보다 열렬히 사랑하고 보다 충실히 본받기를 이 구원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가 사람들에게 원하신다…』(비오 12세)
그리고 저 인자한 요안 교황은 보태어 말했다. 『우리는 성경을 묵상하자. 그처럼 많은 인간적 말들의 혼란 가운데서 복음만이 우리 마음을 밝히고 우리 마음을 당기고 우리마음을 위로하고 갈증을 채워주는 소리다.』
위의 글은 얼마 안되는 맛보기에 불과하지마는 자기의 공식 교사들이 주는 격려를 눈앞에 두고 현대 가톨릭의 성경에 대한 태도가 어떠해야 하겠다는 것을 의심할 수 있겠는가?
성 아오스딩은 『성경은 본국에서 온 편지다.』라고 말했다. 본국에서 온 편지를 본가의 자식이 뜯어보지 않고 버려두면 수치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