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주 예수 그리스도, 「다볼」산에 올라서서 당신의 성용(聖容)을 나타내심으로 우리에게 영복의 일단(一端)을 엿보여주십니다. 산에서 내려오실 때에 『인자 죽은 자 가운데로 조차 부활하기 전은 아무에게도 본 것을 말하지 말라.』하신 말씀은 산 위에서 본 영광을 마음에 간직해 두고, 산 아래서 당할 고생을 꾹 참다가 죽은 후에 다시 차지하라고 우리에게 분부하시는 것 같읍니다.
그리스도는 종도 셋을 데리고 산으로 올라가셨읍니다. 유다 종도를 빼놓고 모두가 올라갈 자격이 있었지만 세 종도만 올라가게 되었읍니다. 6일전에 베드루는 「빌리버 세사레아」에서 『스승은 그리스도시요 생활하신 천주의 성자시니라.』고 신앙고백을 했고, 또한 장차 다른 종도들보다 주를 더 많이 사라안다고 서슴치 않고 맹세할 베드루를 첫째로 택하시고, 주를 위하여 다른 종도들을 앞서 맨 먼저 치명할 야곱을 다름에 부르시고, 마지막으로 지극히 사랑하시던 요왕을 데리고 산에 올라가셨읍니다. 그러니 주의 영광을 보려면 낮은 지상에 깔린 쾌락 속에서 찾지 말고, 높은 하늘을 사목하는 마음으로 위를 지향하는데서 찾아야 옳읍니다. 거기서 베드루는 『스승은 그리스도시요, 생활하신 천주의 성자시니라』는 6일전에 고백한 신앙의 확인을 천주 성부께로부터 직접 받았읍니다.
『혈육이 이것을 네게 가르쳐주지 아니하고 오직 하늘에 계신 내 성부 가르쳐주심이니라』고 그리스도의 하신 말씀대로 성부께서는 그 신앙을 베드루에게 주셨고, 이번에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나의 가장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 명을 들어라』고 그 신앙을 특별히 베드루에게 확인해 주십니다. 그리고 신앙때문에 위주치명(爲主致命)한 야곱이 고마워서 죽기 전에 그에게 영복을 잠깐 보여 주셨읍니다. 요왕은 그 영복을 -주의 영광을 잠깐이나마 보았기 때문에 다른 복음사가(史家)가 따르지 못할 고결(高潔)한 성경을 남겼으니, 그 첫 귀절에서 『비롯음에 말씀이 있었다.』고 하였읍니다.
『저희들 앞에서 형상을 변하시니 그 얼굴이 태양같이 빛나고 그 의복이 눈같이 희어』졌읍니다. 주의 형상이 변하되 육성(肉性)을 잃어서 변함이 아니요 오직 그 육신이 위격적(位格的)으로 천주성에 합치했을 뿐입니다. 육체가 영체(靈體)로 변함이 아니라 오로지 천주의 영광을 띠운 것입니다. 모이세가 시내산에서 얼굴이 빛나듯이 밖에서 받아들인 영광은 아니었고 안에 스스로 간직했던 영광을 나타내셨을 뿐이었읍니다. 그러므로 이는 당신 본래의 영광이며 또한 세상 만민을 심판하러 오실 때에 나타날 영광인 동시에 우리들이 장차 부활할 때에 입을 영광이며 또한 천당에서 누릴 영광이 올시다. 육신의 눈으로 볼 때는 그 얼굴이 태양같이 보여지지만 영혼의 눈으로는 천주님이 보일 것인즉 신앙을 가지고 주를 우러러 본다면 우리의 옷도 눈같이 희어지고 우리의 육신이 태양처럼 빛나지 않겠읍니까?
『문득 모이세와 엘리아가 저들중에 발현』했는데 하나는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이요 또 하나는 한번도 죽지않고 살고 있는 사람이니, 세상 마칠 때에 죽었다가 살아나는 군중과, 살아 있는 채 죽지 않고 주를 맞이하는 군중을 대표하여 나왔읍니다. 죽어 있었거나 살아 있었거나, 두 성인처럼 주를 섬기던 사람들은 주와 더불어 「다볼산」 위의 영광을 한가지로 할 뿐더러 천상의 영광을 한없이 누리게 됩니다. 주를 지성껏 섬기던 이들이 마땅히 나타나게 되어 있었지만 그 외에 다른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기 때문에 나타났읍니다.
첫째로 사람들이 인자들 혹은 엘리아, 혹은 예레미아, 혹은 선지자의 한사람으로 여기니 두 선지자를 불러내어 양쪽에 세우시고 스스로 가운데 임하셔서 선지자의 한 사람이 아닐뿐 아니라 오히려 선지자들과는 주종(主從)관계에 있음을 똑똑히 밝히고자 하신 것입니다. 둘째로 그리스도는 율법을 어기는 자요 종교를 모독하는 자요 천주의 권능 위엄을 침범하는 자라고 유데아인들이 주의 뒤를 따라다니면서 빈정대는데 대한 답변이었읍니다. 모이세는 율법을 그 백성에게 준 사람이요 엘리아는 율법을 열심히 보전한 사람이니 어이하리!
그리스도께서 만일 위법자(違法者)요 모독자(冒瀆者)이셨다면 그이들이 우러러 가운데 모시고 섬길 턱이 없읍니다. 가운데 모시고 우러러 바라보니 새 율법(복음)을 간청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셋째로 죽었던 모이세와 죽어본 적이 없는 엘리아를 양쪽에 세움으로써 죽음과 생명의 절대권을 가지신 것을 알려주십니다.
넷째로 모이세와 엘리아는 주와 함께 수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읍니다. 그들은 주를 위하여 모진 핍박을, 하나는 빠르오에게서 하나는 아갑에게서 받았읍니다. 율법에 대한 열성 때문에 둘이 다 생명을 소모했읍니다.
고로 영광중에서 주와 더불어 이야기할 자격이 있었고, 얼마 안되어 성부의 율법(성부의 의향이 율법이라고 보면)을 따라 고생하실 주를 모실 수 있었읍니다. 이 사리를 깨달은 세 종도는 가까운 장래 「예루살렘」에서 받게될 혹독한 주의 수난을 같이 겪어도 꺾이지 않을만한 힘을 얻었읍니다.
얼마나 큰 영광이 빛났던지 그 영광을 직접 누리지 못하고 옆에서 구경만 하던 베드루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주여 우리들이 여기 있기가 좋으니 만일 원하시면 여기 세 장막을 짓겠다』고 부르짖었읍니다. 그는 과연 아무것도 모르면서 말했읍니다. 천당 영광을 지상에서 계속하여 볼 수 없음을 몰랐고, 천당에는 성부께서 마련하시어 성인들이 들어갈 곳이 많은데도 자기네 손으로 만들겟다 함이 틀린 것을 몰랐고, 죽을 육체를 가지고서는 영복을 보기에는 합당치 못하다는 것을 몰랐읍니다. 그러나 용하게도 이치에 맞는 말을 했으니 영복을 누릴 때는 저보다도 남을 생각한다는 것을 깨우쳐 주게 하고 주께 하나 모이세에게 하나 엘리아에게 하나씩을 하겠다면서 복음과 율법과 예언이 서로 떨어지지 못함을 알게됩니다. 그는 그리스도 인성(人性)의 영광을 잠시 그것도 일부만 보고서 기뻐 어쩔 줄을 몰라 제 정신 없이 날뛰었는데 우리가 다행히 천당에 가서 허다한 성인과 천신들 사이에 끼여 직접 영광 전체를 보면서 주의 인성 뿐만 아니라 천주성의 영광을 잠시가 아니라 끊임없이 또바로 보게 되면 얼마나 기쁘겠읍니까?
「다볼산」 위에 집을 짓더라도 주와 모이세와 엘리아를 정성껏 안에 모시고 종도들은 들어갈 생각이 없읍니다. 집 밖에 쭈그리고 앉아서 밤을 세워가며 충실히 시종하려고 하였읍니다. 그래도 저희들은 자기도 모르게 좋았고 기뻤고 행복해서 세상 만사를 잊었읍니다. 한때나마 그 성가심을 씻었읍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를 따라 내려 와야 되었읍니다. 영광을 차지하기 전에 고생을 맛보아야 마땅하였기 때문입니다. 생명이신 주께서 죽으시러 내려오시니 죽게 마련인 종도들도 죽을때까지 고생해야만 되었읍니다. 떡이신 주께서 굶주리러 내려오시니 종도들도 세상에서 고생할 수 밖에 없었읍니다. 샘이신 주께서 목말라하시러 내려오시니 우리들도 고생하게금 생겼읍니다.
「골고타」의 수난이 없었더라면 「다볼산」의 영광도 없었을 것이니 천상 영광을 누리려면 모름지기 지상에서 수고를 해야만 할 것입니다.
盧景三 神父(꼰벤뚜알 성프란치스꼬회 · 대구시 범어동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