主敎會議(주교회의)에 期待(기대) - 當面(당면)한 「매스콤 問題(문제)」
施設(시설) · 人員(인원)의 擴充(확충)
運營(운영)을 刷新(쇄신)해 갔으면…
발행일1964-03-08 [제413호, 1면]
주교회의에 품의라기 보다 우리 한국교회 「매스콤」의 현황과 그 문제의식의 일반적인 것을 평소 느끼고 있는대로 솔직히 적어볼까 한다.
좀 강하게 말하면 우리 한국교회의 「매스콤」현상은 전 근대적이요, 황무지라 하겠고 자위(自慰)를 가지고 이야기 한다면 이제사 초창기(草創期)에 불과하다. 그러나 날로 팽창하는 교세와 사회구조의 현대화 속에서 성당참례와 교리강론 일변도(一邊倒)의 신앙생활 및 전교활동은 「매스콤」의 보족(補足)이 절실히 요청되며 이에 부응(副應)하는 시설의 확충과 운영의 재검토와 인원의 확보 등이 당면 과제가 된다.
(1)
흔히 「매스 메디아」라고 부르는 전달기관으로서 우리가 가진 것은 언론출판뿐이요, 현대 가정이나 대중에게 가장 많이 침투되고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방송, 영화, 「텔레비존」 등은 아직 생념도 못내고 있는 처지다.
언론출판부문도 여기서 쉽사리 손꼽을 수 있는 형편으로서 대구교구의 일간지 「매일신문」과 주간 「가톨릭시보」가 있고 월간으론 CCK의 「경향잡지」와 서울교구의 「가톨릭청년」 및 「가톨릭소년」 등이고 이외 「교리통신」 「현양회보」 「PAX」 등 부정기 간행물이 있으며 출판사로는 서울에 「가톨릭 출판사」 대구에 「대건출판사」 왜관에 「성분도 출판사」 성바오로 수녀원의 「대조출판사」와 「갑진문화사」 「청라출판사」 「상지문화사」 등 사설 출판사가 있다.
이중 주로 「가톨릭출판사」가 200여종의 책자를 발행하였고 기타 출판사는 합쳐서 100여종, 도합 불과 300여종의 교회서적이 출판되었으며 이것이 우리 한국교회의 전 출판업적일뿐 아니라 「매스콤」의 전부이기도 하다.
이와 대비(對比)하여 「프로테스탄」에서는 교파가 여럿이라고는 하지만 가두(街頭)에까지 살포하는 「팜프렡」은 두고라도 지난해 1년동안만도 200여종(출판협회 통계)의 서적이 출판되었으며 여기에다 각층각색의 정기간행물과 KY방송을 가지고 있고 불교에서는 「석가모니」를 비롯해 「원효대사」 「사명당」 등의 불교영화제작에 적극 협찬하여 그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편 이제까지 우리교회서 나온 출판목록을 검토하여 볼 때 성서 이외의 서적은 계획과 체계가 없이 원고가 자연수집 되는대로 그때 그때 출판을 본 것으로 지적으로 지적하면 「시리즈」 하나 없다.
이런 면에서 각 교구 출판부의 공동적인 심의 연구와 거기에 따르는 분담과 연합이 필요할 것으로 보며 더불어 판매 역시 성당 구내에서 일반시중(市中) 진출도 시도해야 할 것이다. 출판사업이 본격화 하자면 인쇄시설의 호가충이 절대 요건이나 서울은 폐쇄되고 대구는 일반 인쇄소화하고 왜관이 현대시설을 준비하고 있으나 아직도 연판지형 시설과 윤전기가 없이 수도회 저작과 인쇄물을 중심으로 작업하고 있다.
(2)
운영면에 있어서는 전반적인 재검토와 쇄신이 요청된다. 이제까지 우리 한국교회가 교육이나 자선기관 보다도 특히 이 방면에 실패와 차질을 가져왔고 그렇지 않으면 시대지(時代遲)의 고석적 경영 상태를 계속해왔다. 15년을 키워나온 「경향신문」의 매도(賣渡) 사건같은 것이 전자의 예요. 현재 발간 중인 「가톨릭청년」이나 「가톨릭소년」 이 후자의 경우다. 월간 잡지를 하자면 편집인원만 최소한 5·6명은 있어야 하는데 아무리 교회기관지라도 한사람의 편집자로서 계획 · 취재 · 원고수집 · 정리 · 조판 · 교정 ·인쇄점검까지 맡고 원고료는 시중의 반으로 저렴하며 편집비는 안주나 이러고서야 아무리 유능한 인사라도 성당 부근에 계신 신부님과 몇몇 고정기고가들의 글로서 지면을 채울뿐, 광범하고 분산되어 있는 가톨릭 지성들의 지적 협력이나 결집이나 동원은 도저히 불가능 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가톨릭적 이념의 사회현실애 대한 지침과 가톨릭적인 정서의 창조활동으로 우리의 실생활은 생기있게 북돋아주기는 커녕 강론과 교리반의 재생수록이나 교회 「카렌다」의 해설이 되며 산 지면이 아니라 무미 건조해 읽히지 않는 잡지가 된다. 한편 일간신문 같은 경우에는 이와 반대의 역현상을 보이는 수도 있다. 신문 제작이 일체 정치편중이나 상업주의에만 흘러서 반유리적이고 몰교회적이요 무신적인 지면이 방임된 에도 있다. 연전에 나는 「부인경향」에서 산아제한 찬성론의 원고청탁을 받은 일이 실제 잇었는가 하면 「매일신문」에서는 어떤 시인의 반신적단상(反神的斷想)을 연재하기도 하였고 연재소설에 있어서는 「경향신문」이 애욕소설의 효시가 되었고 그 첨단을 걸어 온 것은 천하가 다 아는 바다.
또 아무리 광고라지만 아직까지도 「매일신문」 은 사주관상(四柱觀相) 광고를 취급하여 사신(邪神) 배격의 교회적 입장은 차치하고라도 일반 일류신문도 범하지 않는 반문화적 오류를 영업이란 이름 아래 감행하고 있다. 이러고서는 주교사진이나 크게 내고 첨례행사나 신부 이동 등 교회소식을 보도하며 주교댁의 관청 심부름이나 기차표 등을 잘 사들이면 교회기관지로서 면목과 역할을 다하는 줄 안다. 이것은 교회의 운영측이 신문의 효능을 참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잘못 이용하는 사례로서 교회는 성직자를 파견하여 그 업무나 운영을 관리하기 보다도 오히려 그 편집제작면에 참획하고 지도권을 확립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기현상이나 악현상은 교회가 이제까지 이 방면에 어두웠던 것과 그 담당자 역시 문외한이었거나 이를 체득하고 전문적이 될 기회를 주지 않았던 연고로서 왜관분도수도회가 그 출판부를 창설키 위하여 책임자 이소 신부님에게 1년인가 인쇄기술을 교육받게한 실례는 방인교구의 좋은 교훈이 될 것이다. 좌우간 이제까지 교회는 「매스콤」운영에 등한시 하였고 여러가지 불합리하고 고식적인 경영으로 미봉(彌縫)하여 온 것이 사실이다. 이로 인하여 여기서 종사하다 나간 사람들 중 미신자들의 하는 말이 『천주교회안에서 일해 보면 정신적으론 크레믈린(독선적, 봉쇄적이라는 말) 같고 물질적으론 쥬(유태인처럼 인색하다는 뜻) 같고 인사문제에는 비인간적으로 무자비하다』. 물론 이 감정섞인 욕설을 액면대로 접수하자는 것이 아니라 자성(自省)의 경구(警句)로 삼고자 함이요, 한편 정치계에 투신한 장면(張勉) 선생이랑 이 좋은 표양을 드리워 많은 개종자들을 내고 있음에 비추워 「매스콤」에 종사하는 한 사람으로 이런 면 수치(羞恥)를 금할 바 없다. (제2면에 계속)
(3)
(이번호 제1면에서 계속)
인원 확보 문제에 있어서는 첫째 일반 「매스콤」에 종사하는 현역신자들의 가톨릭적 사관(思觀)의 주입이 긴요사로서 윤형중(尹亨重) 신부님의 표현을 빌리면 「붓의 영세」에 대하여 교회의 적극적이며 조직적인 배려가 촉구된다. 그런데 이 「붓의 세례」란 우리 가톨릭 신학이나 철학 · 과학서적들의 번역 출판에 의지하는 것이 첩경이니 그 역시 교회가 얼마나 출판기금을 책정하여 출판에 체계적이고 본격적 자세를 갖추느냐가 문제될 것이다. 이제와 같이 학교나 병원 세우는 10분의 1의 중요성도 인정되지 않고 출판비용은 「거져 나가는 돈」으로 인식된다면 아무리 교회 내의 출판강조주간을 설정해도, 또한 「로마」가 「매스콤」의 과제를 내려 그 덕택에 본인이 이런 자선의 뼈아픈 몰골의 글을 써본다 하여도 이는 영영 불모(不毛)의 세계가 되고 말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에서 가톨릭적 학문과 사상의 세계란 신학교에서 전수될 뿐 일반신자들은 늙어 죽을때까지 교리문답을 되풀이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이제 가톨릭 신세대들의 지성의 자연적인 욕구를 「모르는 것은 믿으라」는 말로서 채울 수는 없다. 이런 점에서 각종 연구회와 강좌, 강습회와 같은 모임이 필요하며 나아가서는 가톨릭 경영의 대학이나 대신학교에 일반교우들의 가톨릭신학, 철학연구의 문호도 차차 작만되어야 앞으로 가톨릭이 우리나라 사상계의 참된 의미에 군림을 볼 것이다. 이와 동시에 전술한 바 「매스콤」에 종사할 성직자들의 각 부문기술습득이 계획적으로 추진되어야 할 줄로 생각한다.
한국에는 가톨릭신자로서 현역문필인을 비롯한 각 부문의 「매스콤」종사자들을 나열하면 놀랄만큼 많다. 교회가 현대식 시설을 갖추고 운영의 묘만 얻는다면 단시일 내에 획기적으로 발전할 요고와 가능성을 지니고 있다.
다시 중언이 되거니와 학교장 병원장 등은 성직자나 교우를 서임하면서도 몇배 중대한 가톨릭의 이념이 좌우되거나 문제가 되는 신문사 주필이나 편집국장을 미신자로 대충하는 현상은 사람물색이 힘든 탓도 있지만 『원수보다 사랑하기 힘든 형제』라는 격언마따나 오히려 신자출신을 소홀히 알고 혹은 이를 만만치 않아 기용치 않으며 육성치 않는 연유도 있다.
또 종사자측으로 보자면 물질적 생활보장도 박하고 은혜입히듯(?) 하려니와 신분문제도 교회기관에서 정규적 시기도 없이 갱질되는 책임자의 신불신(信不信) 여하로 안정성이 없고 장기근무 후에 오는 노후(老後)문제가 우려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단 「매스콤」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며 가톨릭 학교나 자선기과 종사자들의 공동의 문제로서 주교단이 그 의제로 교회 종사자들의 연금(年金)제도나 전 교회기관이 연합한 직장보험제도(職場保險制度)의 설치 같은 것이 구상되었으면 한다. 들은 풍월이지만 일본의 주교단은 1953년에 벌써 의제로서 이 연금제도가 논의된 바 있다고 하나 그 구체적인 결정이나 시행사항은 모르며 본 논고와는 무관하기에 더 언급을 피한다.
막음으로 본문에 토로하는 나의 사견(私見)중 현상에 대한 비판은 교회는 물론 현재 운영자들이나 종사자들에게 향한 비난으로 오해 말기를 바라며 이는 오히려 교회의 핍박한 경제사정과 난처한 여건 속에서 맨주먹으로 건설해 나가고 고투하는 그들의 입장을 밝히고 주교님들께 실정을 가리지 않고 아뢰려는 것이 이 글의 의도임을 쑥스럽지만 덧붙여 둔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