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國籍(국적) 없는 小女(소녀) (40) 장미꽃 ⑧
발행일1964-03-08 [제413호, 4면]
「뮤직홀」에 가니 딕슨은 와있었다. 딕슨은 어느때 보다도 한결 반가운 얼굴로 나를 맞이 한다. (일이 잘 되었나 보다) 하는 기대를 가지고 그의 옆에 앉았다.
『나는 사흘이라는 시간이 무척 기다려졌다 어제밤은 빨리 날이 새기를 기다리며 잤더니, 밤중에 새번이나 깼다.』
『……』
『내 말의 뜻을 알겠느냐?』
잠잠한 걸 보자 딕스은 얼굴이 마주칠 만큼 가까이 나를 바라본다.
『희망을 가져도 좋겠느냐?』
웃으며 나는 물엇다.
『나는 내가 만족할만한 회답이 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아직 써잰은 만나지 못했느냐?』
『써잰? … 써잰이 아니라 나의 고향의 부모한테서 올 편지 회답을 말한거다.…』
『나는 그것보다는 써잰한테 부탁한다던 깡통 얘기가 먼저 듣고 싶다.』
딕슨은 신경질적으로 말한다.
『우선 나는 아버지를 기쁘게 해 주어야 한다.』
『너의 아버지의 일은 그 자신이 처리할 일이다. 너와 나는 우리들의 행복을 위해서 이야기 하면 된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너의 아버지 보다도 우리들의 행복에 관한 설계이다.』
『접때 너는 아버지의 청에 대해서 오늘 대답하겠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써잰한테 청을 해보았더니 「노」라고 말하더라』
『왜?』
『그는 한번 「노-」 하면 그만이다. 그것보다는 우리들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나의 아버지는 실망할 것이다.』
『그 대신 새로운 희망이 있지 않느냐?』
『다른 무슨 일이 있느냐?』
『너는 내 영어를 이해못했느냐! 여태 이야기 하지 않았느냐?』
딕슨은 이렇게 말하며 못마땅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나는 나대로 그가 못마땅했다.
『깡통에 관한 아버지의 청은 이제 전혀 희망이 없단 말이냐?』
『너는 왜 쓰레기통에나 들어갈 깡통이나 「레이숀」상자 얘기를 좋아 하느냐? 그것보다 백곱절은 아름다운 우리들의 장래 얘기를 하자!』
나도 깡통 얘기는 집어 치우기로 하고 그의 기분에 맞는 이야기에 끌려가기로 했다.
『ㄴ의 부모가 한국의 「걸」을 좋아하리라고 너는 믿느냐?』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의 부모가 너를 보았다면 좋아할 것이다.』
『뭐라고 썼느냐?』
『내가 느긴대로 썼다. 우리 고향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어려운 아름다운 소녀라고 했다. 체격도 우리나라 「걸」 같고, 영어도 능숙하다고.』
『부모한테서 언제 회답이 오셌느냐?』
『앞으로 일주일 되면 나는 회답을 받게될 것이다.』
이렇게 말 할때의 딕슨의 얼굴은 한층 나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들었다.
『나는 네가 좋다. 내 마음을 알겠느냐?』
그는 또 이렇게 말하며 뾰죽한 코를 내 얼굴 가까이 가져온다.
『시원한 바깥 공기가 이 음악당의 어두운 「홀」보다 좋지 않느냐?』
하며, 나는 일어섰다.
나란히 이층 층계를 반쯤 내려왔을 때 나의 걸음은 아래에서 올라오는 두 사람을 보고 굳어졌다. 진호가 키다리와 함께 고개를 숙인채 찬찬히 층계를 올라오는 중이었다. 이미 피할 수 없는 거리에 그들은 와있었다.
나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고 태연한 얼굴로 반갑게 진호에게 미소를 보냈다.
진호는 성난 표정으로 나와 딕슨의 얼굴을 번가라 보았다.
『아버지 일로 만난 거야요!』
나는 이렇게 말했다.
진호는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키다리는 딕슨과 아는 지라 인사를 나누었다. 진호의 얼굴을 보니 우연히 「뮤직홀」에 온 것은 아닌 것 같다.
딕슨이 재촉하는대로 그를 따라 층계를 내려갔다. 위에서 내려다 보고있을 진호의 시선을 잔등이에 느끼며….
우리는 한시간쯤 걷다가 나중에는 다방에 들어가서 또 한시간쯤 앉았다가 헤어졌다. 딕슨의 태도는 나를 자기의 틀림없는 애인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전에는 예의를 갖추고 말할 때는 일정한 거리를 두던 그가 허물없이 이런말 저런말을 하며 그 얼굴이 내 얼굴에 거리낌없이 가까이 왔다.
돌아오면서 생각을 하니 불안스러우면서도 내 갈길이 딕슨이란 사나이로 하여 정해진 듯한 안심도 든다.
『이젠 내기 뛰어갈 품안이 하나있다!』
어쩐지 마음이 든든하기도 했다.
집에 돌아오자 나는 우물쭈물 하지 않고 잘라서 보고를 했다.
『깡통은 「써재」한테 얘기를 해보았더니 「노!」라고 하더래요』
『「노」라니?』
『안된다는 거죠!』
『망할자식이구나 우리집에 데려다가 차까지 대접해 보냈더니 고작 대답이 그거야!』
『그사람 맘대로 할 수 없는 거니 그 사람 탓은 아니야요』
나는 아버지의 욕설을 들으니, 딕슨의 편을 들고 싶었다.
『이년아 「노」라면 금방 돌아올 것이지 여태 무엇하고 이제 오느냐?』
『자꾸 사정을 해보았지요. 그러느라고 늦었어요.』
『뭐래더냐 사정을 해보니까?』
『자기 맘대로 할 수 있는 일이면 해주겠는데 그렇지 않으니 헐 수 없다는 거야요』
『이년아, 그 한마디 들으려고 몇시간씩 그눔을 따라다니다 오니?』
나는 아버지의 욕설이 듣기 싫어 건나방으로 건너오고 말핬다.
『나순아!』
조금 있으니 부르길래 아방으로 갔다.
아버지의 이마에는 다만 힘줄이 곤두 서고 커다란 눈이 삼각형으로 일그러져 있다.
『그 새끼가 너를 미국에 데려가다고 어쩌고 하던데 그 소리를 또 하더냐』
『…………』
아버지의 기색이 날카로왔으므로 나는 뭐라고 대답을 할까 학 망서리었다.
『이년 또 무슨 거짓말을 꾸며댈라고 얼핏 대답을 안하니?』
『아직은 몰라요. 자기네 부모한테서 편지 회답이 와보아야죠.』
『미국 못간다. 내가 너를 대학까지 공부시킬테니 걱정마라…』
『아버지의 부담을 덜어드리니 좋지 않아요…』
『이년, 길러준 애비공은 모르고 그눔 따라가고 싶으냐?』
『날 ㅜ이해서보다 아버지를 위해서 하는 말이야요.』
『응큼한 년! 나이도 어린 것이 어느틈에 사내 냄새는 알아가지고 그따위 소리를 하느냐?』
나는 아버지의 그말이 너무도 유치하길래 방문소리를 거칠게 내고 안방은 나왔다. 내딴에도 방문소리가 큰 것 같았다.
『이년』 하고 뒤따라온 아버지의 손에 내 머리채가 잡히었다.
『이년, 애비한테 반항 할 작정이냐?』
나는 아랫입술을 질끈 깨물고 아픔을 참았다.
(이집에서 나가더라도 갈 곳은 한군데 있다…)
이 순간 딕슨의 얼굴이 내 머리 속에 꽉 차게 비쳤다.
그후, 학교서는 또 내가 양키와 같이 다닌다는 소문이 퍼지고 춘자들은 양공주라고 저희들 끼리 속삭이는 말이 내 귀에 들려왔다.
(학교를 그만 두어도 좋아!)
이제 나는 강했다.
친절할 딕슨의 마음에 내 전부를 의지하고 싶어진다.
춘자들을 피하여 혼자서 빠른 걸음으로 교문을 나와 문방구점 앞에서 지름길로 들어서려고 하니, 그 모퉁이에 김진호가 서 있었다.
『아마 웬일이세요?』
『나순이를 만나러 왔어!』
진호는 웃지도 않았다.
우리는 잠시 말없이 걸었는데 진호가 발을 멈추더니, 입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