司牧錯誤가 만든 빗나간 信仰生活觀
(承前) 주께서 똑같은 말씀을 모든 인간에게 설교하신 포시가 성서에 일일이 드러나 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거니와 성인 되기는 전문가들만을 위한 특수화된 요구라는 생각이 어찌된 일인지 가톨릭 「서클」 안에 번져나갔다.
틀림없이 평신도의 대부분이 신약성서의 「페이지」마다 성인이 되라는 요구가 자기들을 향한 것임을 진실히는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영성서적」은 수도원 안의 독자들만을 마음에 두고 저술된 것 같이 보인다. 그러한 저술은 가족의 부양, 사업의 경영, 생활비의 수입 또는 정치생활의 참여와 같은 일상생활의 관심에서 너무도 멀게 보이기 때문에 얼마나 많은 평신도들이 오래전에 영성 독서를 포기하였는가! 내가 아는 평신도 가운데서도 보다 높은 생활에 강력한 소명을 느기고 있는 친구들이 수도원 식의 공동사회로 은퇴하여 「이 세상」의 오염(汚染)에서 가능한 한 멀리 떠나야 자기생활을 할 것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 주로 수사와 수녀를 상대로 한 영성서적을 밥먹듯이 읽으면서 그네들은 이세상의 생활이란 「분심거리」라고 스스로 확신하고 있는 것이다.
「認識」 바로 잡고 있는 公議會 敎父들
만일 공의회의 현재 기풍이 지속된다면 이러한 모든 사정이 변할 것이다. 평신도의 소명과 교회 안에서 그가 맡을 임무에 대한 존중성이 교회에 관한 토론 전체의 특색이었다. 연장되는 토의 가운데 평신도(「거룩한 백성」)라는 관념은 부적당하다는 소극적 개념이 아니라 평신도는 천주의 백성을 구성하는 중요한 성분이라는 사실을 주교들은 거듭 스스로 깨우치고 있었다. 사제의 직권이 신품성사로서만 부여됨을 재확인하는 반면에 주교들은 장궤틀에 앉은 사람들에게 일종의 제2차적인 사제자격을 부여하는 성제와 견진성사를 또한 전례 없이 강조했다. 몇몇 발언인들은 그것에 보태어 「키라스마」에 관하여 절반 잊어진 가톨릭 교훈을 상기시켜 평신도가 교역자들과 똑같은 정도로 교회의 이익을 위한 모든 격외 성총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카리스마」는 모든 聖職 · 平信 위한 것
「카리스마」(소명 받은 일을 행할 수 있는 특별한 은총=註)에 관한 「정신 감정」은 언제나 주교들에게 매어 있음은 불론이나 공의회의 교부 몇 분은 다음과 같은 직서적(直線的) 영감의 결과일수도 있는 작용을 거부하거나 막지 아니할 의무를 동료 주교들에게 환기했다.
『영기=(靈氣)는 자체가 원하는 방향으로 부르니라』 지난번 공의회에 출석한 극소수의 주교들이 평신도가 창립한 수도회와 단체에 속한 사실을 보아 이점은 얼른 파악되었다.
「平信司祭職」 처음들은 敎父도
무엇 때문에 모모 주교들이 아직도 당황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사람들이 의심할 만치 평신도에 관한 이야기는 건전하게 신학적인 것이다. 이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일부 주교들은 눈에 뜨일 정도로 신경질이 되었다고 미국 주교 한분이 통신원들에게 말했다.
무엇때문에? 내가 믿건대 무엇 때문이라기보다 먼저 이 이야기는 일부의 공의회의 교부들에게는 실지로 처음 듣는 소리였다. 철저히 교회적인 환경 안에서 교육을 받은 그분들은 평신도의 신학적인 주장에 많은 생각을 둔 일이 없었다. 평신도의 신학적인 주장이 공의회 전에 교회 안에서 떠들석 했을 때 확실히 일부 인사는 그것을 반란의 단서로서 해석했던 것이다.
눈살찌프린 主敎 聖召認識한 少數
공의회가 착착 진척되자 평신도의 지위가 재평가되느라고 교회의 권위가교종과 주교드에게 매어있다는 사실에 대해 공의회가 시신을 잃은 듯이 어느 주교 한분은(누구보다도 공의회의 교부들이 더 잘 아는) 사실을 거듭 거듭 성명했다. 「평신도의 사제자격」과 같은 관념은 함부로 떠들고 다니기에는 너무도 위험하다는 걱정이 그러한 주교들 사이에 있던 것이 틀림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라이트 주교의 말을 한번 더 인용하면 평신도는 주교권에 대한 생각은 없는 것이다. 사실상 극소수의 평신도만이 교회 안에서 할 자기들의 의무에 관한 완전한 인식 또는 자기들이 바치기로 불리운 「이바지」의 읜식을 지니고 있다.
問題의 重要性 認識
그 뿐 아니라 요안 교종의 덕택으로 역종교개혁의 정실이 공의회에서 무던히 구마(驅魔)되었을 망정 소수의 주교들에게는 보편적 사제자격의 교리가 종교개혁에 의해 그릇 해석된 꼴의 기억이 아직도 눌어 붙어 있었다.
따라서 그러한 주교들은 천주의 백성을 경시하는데는 교리적 관점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다른 주교들은 평신도의 임무를 명백히 규정하는데는 -사목적 우위와 마찬가지로 - 똑같이 중요한 교리적 관점이 있음을 납득했다. 그런데 후자가 대다수였다.
公議會를 通해 배워야 할 精神
마지막으로 공의회의 교부들 가운데는 단순히 신학적인 사고 변동이 없는 이들도 있었다. 그러한 주교들의 관심은 실천적인 것을 향해 더 많이 달리고 있었다. 평신도에게 신학적 주의가 많이 주어질 때 그러한 주교들이 약간 불안감을 가지게 되었다면 그것은 그분들이 아직도 「간섭」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림자 속에 잠복하고 있음을 보기 때문이었다. 「자기의」 미사를 올리고 있을 때 그 사제에게 분심을 일으킨다는 이유로 전례를 평신도가 발성(發聲) 참여하기를 금하는 미국 주교들이 대표하는 이러한 사고방식이 공의회의 교부들의 이 주목할만한 모임에 없지 않았다. 그러나 생활한 교회의 사상에서 떨어져 나간 성직자들까지도 공의회의 과정에서 배울 수 밖에 없었다.
결국 그러한 주교들은 자기들의 주교관에서 가끔 조심스럽게 가리워지던 관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분들은 수상한 평신도나 서글픈 신학자가 아니라 자기들과 동등한 사람들에게 그러한 관념을 듣고 있었다. 그분들은 교육을 받고 있었던 것이다.
信德을 잃어?
그러면 평신도는 누가 교육할 것인가? 어느날 나는 미국인이 아닌 어느 주교 한분이 『만일 내가 고향에 돌아가면 나의 교우들에게 공의회에서 들은 일을 이야기할 것인데 교우들은 내가 신덕을 잃었다고 생각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은 일이 있다. 대부분의 미국인 주교들도 그와 같을 것이다. 왜냐하면 주교들 가운데는 아직도 늘이대는 이가 있을 것이나 머지않아 그분들이 이제 자기들의 성직자들의 선두에 서게될 것이며 평신도의 광범한 대다수는 그분들의 뒤를 멀리 멀리 따라갈 것이기 때문이다.
-끝-
죤 코글리 (「컴몬웰」誌에서 同誌編輯者 現同誌寄稿家, (在 로마))
김익진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