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聖地巡禮(성지순례)] (28) 마리아·요셉 生家(생가) 앞뒷집
발행일1963-09-08 [제390호, 3면]
「나자렡」에 이르러 우리 일행이 제일 먼저 찾은 곳이 성모님 영보하시던 곳이다. 따라서 이곳은 성모님이 아직 요셉과 혼배하시기 전에 살으시던 곳이다.
굴이 그리 넓지 않은 것으로 보아 성모님이 그다지 화려하게 살으시지 못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은 바로 이 우에 철근·「콩크리트」로 거대한 건물을 짓고 있다. 이곳에 대해서는 뒤에 또다시 말이 나오겠지만 처음 갔을 때는 그저 그러려니 하고 아무런 감흥도 없었다.
다음으로 성 요셉이 살으시던 곳으로 갔다. 지금은 한 울타리 안에 있어 네 것 내 것 따질 것도 못되나 마리아 네 집과 가히 앞집 뒷집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가까운 곳에 있었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 지하실로 내려가면 요셉이 거처하시던 곳과 일하시던 곳 즉 요사이 말로 「아뜰리에」가 있다. 이 역시 마리아의 집과 대동소이한데 좀 더 넓을 따름이다.
해거름 해서 그곳 신학교 성당에서 거행되는 대례미사에 참례했다. 동방교회 예절은 오늘 처음으로 본다. 물론 우리 미사 예절과는 판이하다. 그러나 몇 가지 느낀대로 적어보면 「기리에, 엘레이손」(천주여 우리를 긍연히 여기소서)의 대목이 여러번 여러번 자주 거듭 나와 좀 처량해 보이고 장궤 대신 몸을 굽혀 절을 함으로 좀 더 겸손해 보이고 주례자가 미사 끝날 때까지 제대를 중심으로 끝까지 서서 계셔 앉는 일이 없어(참례하는 신자들은 앉기도 하고 서기도 하지만) 백성들을 위해 참으로 봉사하고 있다는 느낌을 더하게 하고(우리 예절에는 「글로리아」 「그래도」 「알렐루야」 때는 주례자가 당신 읽을 것을 읽고 앉아계신다) 참례자들과의 응답이 잦음으로 백성들과 더욱 일치되어 있다는 감은 주나, 우리 예절처럼 장엄한 기분은 덜한다.
더우기 영성체 할 때 성체를 성혈에 적셔주는데 영성체하는 사람이 많지 않아 망정이지 우리 본당처럼 매일 수백명 큰 첨례 때면 천여 명씩이나 늘어섰다면 여간 번잡하고 시간이 걸리는 일이 아니겠다.
미사 시간은 우리보다 더 길어 좀 지루하다.
우리 예절에는 복사하는 사람들이 집전자 중심으로 움직이는데 동방 예절에는 제대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 같다. 서로 일장일단이 있어 보는 사람의 보는 눈에 따라 다르겠지만 필자는 우리 예절에 친숙해진 탓인지 우리 것이 더 간결하고 장엄하고 나은 것 같다.
저녁을 먹고 침실로 들어갔다. 아무리 아열대(亞熱帶) 지방이라지만 이미 12월 중순이 넘은만큼 담요 하나만을 덮고 자려니 좀 으시시하다. 연이나 때마침 교교창천 일륜홍(皎皎蒼天 一輪紅)이 하늘에 둥실 높이 떠 방안 가득히 월광(月光)인데 멀리 산 아래서 개 짖는 소리가 은은히 들린다. 2천년 전 마리아와 요셉이 이곳에 살으실 때도 저러한 한가로운 소리가 들렸겠지 생각하니 일어나 창을 열고 시가지를 내려 보곺았지만 보면 필연코 정기불이 휘황할테니 그리되면 내 멋대로 가상한 2천년 전의 이곳 정경이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겠기에 그대로 누워 잠들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