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本(일본)서 再考(재고)하는 産制(산제) 우리나라서 重用(중용)하다니
빈대 잡으려나 집 태울듯
民族老化(민족노화)로 줄달음
곧 닥칠 勞動力(노동력) 激減(격감)
爲政(위정) 立法者(입법자)들은 이 事實(사실) 모르고 있다
신언회(神言會) 경영 일본의 「난산」대학(南山大學) 「이노우에」 교수가 월간 「自由」에 실린 「産兒制限亡國論」을 약간 주려본 것이다. 필진도 언급했거니와 인구학자 A. 짐머만 박사(神言會 神父)는 본사에 많은 동종의 재료를 보내고 일일이 필자의 전재(轉載) 허가를 붙여 주셨다. 가톨릭 「악숀」의 지도자 및 밖으로는 위정자와 입법부(立法府)에까지 액면대로 반영되기를 바란다. - 編輯者 -
出生率이 低下되면
일본은 벌써 연소자의 격감이 국민생활에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다. 일본사정에 정통한 인구전문가 안소니 짐머만 박사(神言會 神父)는 이 사태를 가리켜 일본민족의 완만한 「하라끼리」(切腹自殺)라고 논평했다.
별항의 표가 그것을 밝혀둔다.
현 중학2년생에 비겨 중학1년생은 35만명, 국민학교 1년생은 210만명이나 적다. 작년에 출생한 아기의 총 수는 중학2년생의 59%밖에 안된다. 작년의 출생율은 16.9?%로서 재작년 보다는 0.1%쯤은 상승했으나 이것은 전전(戰前)에 출생한 젊은이들의 일종의 결혼 「붐」에서 온 것으로 출생율 저하가 멈춘 것으로 볼 수는 없다. 출생율을 결혼율과 대조해간다면 1964년부터 더욱 저하된다.
작년의 출생율 16.9%는 세계적으로도 최저 부류에 속한다.
인류의 평균출생율이 36(유엔통계)이 될 때 일본은 대국(大國)의 좌(座)에서 전락할 운명에 놓여있다.
그러면 다음 통계표에서 보는 이동의 격감이란 사실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이 우리 생활엔 어떤 영향을 주고 있는가?
젊은 노동력의 격감은 국민경제를 흩으려놓는다.
최근 중소기업(中小企業)에 있어 가장 어려운 문제는 돈(資金)이 아니라 젊은 노무자의 확보라고 한다.
이 노동부족은 중소기업에 심하며 종업원 1백명 미만의 기업 등은 그 3할 이상이 심각한 노력부족을 겪고 있다. (63년도 노동 白書 · 以下 引用은 白書로 略함). 통계표 대로 나가면 1966년 중학졸업자는 65년보다 35만명이나 줄고 그후 매년 격감을 계속해 간다. 뿐만 아니라, 한두명의 자녀를 가진 부모들은 자녀진학(進學「붐」이 일어난다)에 힘쓸 터이니 중졸로 취업할 젊은 노동력은 더욱 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무리 중소기업을 육성할 기본법이 만들어지고 자금이나 그밖에 길로 편의를 봐준댓자, 노동력 면에서 넘어질 기업이 속출할 우려가 있다.
최근 소비물가가 바싹 오른 최대의 원인은, 경제의 고도의 성장에 따르는 사람의 손부족에 있다고 한다. (經濟白書) 이 손부족은 젊은 노동력의 격감에서 온 것으로 앞으로는 더한층 심각해질 것이다.
임금의 상승, 「코스트인프레」 및 국제적 경쟁력의 저하는 아마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뉴스 위크」지(63년 5월 23일부)에 의하면 동독에서 서독으로 피난 온 노동자들은 1인 평균 1만 「달라」를 서독 경제에 이바지한 셈이며 그 총액은 「마샬」원조의 총액과 맞선다 했다.
일본은 매년 1백80만의 장래 노동인구를 임신중절(姙娠中絶)이라는 또하나의 「베르린」 장벽으로 가로막으면서 극도의 손부족에서 오는 경제쇠퇴를 자_하고 있다.
출생율이 격감되면 인구구성(人口構成)은 급속한 노화(老化)를 하게되어 불원 노인층 부양에도 경제문제가 발생한다. 노동연령층이 상대적으로 줄게되는 만큼 노인층을 위한 부담은 그만큼 노동층의 어깨를 누르게 되는 법이다. 20세에서 59세에 이르는 노동연령층을 60세 이항의 노인층에 대조해 보면 그것이 1955년에는 약 6대1이었지만 60년에는 2대1이 된다.
아기양육 부담을 피해보려고 아기 낳기를 피했다가, 그들에게 큰 부담을 시켜 주는 것이 된다. 말하자면 우리는 장래를 저당잡아 돈을 빌려다가 안락한 생활에 그것을 방비하는 꼴이다. 외딸, 외아들이 결혼한 경우, 양쪽의 부모 도합 4명을 부양해야 하고 부부가 서로 벌지 않으면 한사람이 4명의 부모와 그 위에 처자를 먹여가야 한다. 그럴수 없으니 사회보장제도를 세운다고 하지만 그것은 국가의 조직을 빌려 결국은 딴사람의 부양을 받는 메워치기 계산밖에 안된다. 국가가 부양능력이 있고 그만한 돈이 있는게 아니라 노인부양은 결국 그때 그때의 노동력이 그것을 벌어 줄 길 밖에 없다.
少年犯罪 激增
소년범죄는 최근에 와서는 14세미만에 격증을 보여준다.
(犯罪白書) 그런데 젊은층의 양적 감소(量的減少)가 어째서 도덕적 악화를 동반하는가? 어째서 「적게 낳아 잘 기르자」는 산아제한 선전딱지와는 반대 현상을 보여주는가? 그것은 한두 자녀를 기르는 가정에 보편화 된다는 것은 가정일반의 교육기능을 뚜렷이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교육학상으로 인간의 성향(性向)의 기본선(基本線)은 3세 내지 5세 경에 형성된다고 한다. 좋은 성향을 길러 줄 수 있는 자연적 환경은 자녀 4명 이상의 가정이라고도 말한다.
그런 환경의 가정서는 아이들이 서로 양보하며 생각해주고 억제심(抑制心) 희생심 그밖에 사회생활에 필요한 도덕을 몸에 익히게 된다. 이와 반대로 적은 자녀의 집안서 자란 아이들은 그런 도덕을 배울 기회가 적고 저만 생각하여 억제할 줄 모르고 제멋대로 행동하기 쉽다. 거기다가 부모의 관심이 집중된 결과 보호과잉을 초래하고 온실에서 자라는 식목의 꼴이 된다. 이렇게 저항력이 약한 아이들이 한발 사회환경의 바깥을 접촉하게 되면 반동으로 부량화될 수 있는 것이다.
그뿐 아니다. 그런 가정은 중절(中絶) 경험자로 추정되는데, 그 사상적 배경이란 인간의 생명보다 냉장고 자동차 오락 등을 존중하는 가치(價値)의 혼란을 일으킨다.
이러한 환경하에서 자라난 자녀들이 물질, 향락 정욕에 떨어질 것은 더 말할 것 없다. 소년층의 도덕적인 체질악화는 학교의 도덕교육 사회환경에도 물론 많은 원인이 있다.
그런데 그같은 나쁜 사회환경도 출생율의 저하과정과 큰 관계가 있음을 무시하지 못한다.
중절의 공인(公認) 국가가 뒷받침이 된 수태 조절의 장려는 미혼남녀에 성(性)의 문란과 소년층에 많은 충동을 준다. 성의 퇴폐는 연쇄반응적으로 그들의 도덕적 체질을 약화시켜 준다는 사실을 눈가림 할 수 있으랴. 아기는 부모의 작품(作品)이다. 소년범죄는 곧 부모들의 책임이다.
젊은層 激減은 民族을 老化시켜
현재의 출생율이 이이상 더 저하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실은 저하될 가능성이 크지만) 일본의 인구 구성은 급속히 노화한다. 1960년도의 총인구에 있어서 60세 이상의 노인이 점하는 비율은 12분지 1이었지만 60년후는 4분지1이 된다. 인구구성이 노화되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가? 개인이나 민족은 노화하게되면 자녀는 물론 물질생산의 힘도 쇠퇴 인류에 봉사할만한 「비죤」과 활력을 잃어 마침내 앞날의 희망을 버린 나머지 청소년은 향락의 길을 밟게된다. 어렵게 그 실정을 찾을 것 없이 「스웨덴」같은 예는 좋은 본보기이다.
멀리는 「그레시아」와 「로마」의 시민들이 성적 향락만을 구하다가 멸망했었다. 지금 곧 그 멸망의 원인을 걷어치우지 않는다면 바로 그 전철(前轍)을 밟고 말 것이다.
逆淘汰의 玄象 民族素質 低下
역도태(逆淘汰)란 산아제한으로 민족의 양질(良質)이 차차 줄고 거꾸로 악질(惡質)이 상대적으로 불어나서 전체적으로는 민족의 소질(素質)을 저하시킨다는 것이다. 건설성(日本)의 정부시책 주택실태조사보고 (1963년 5월)에 의하면 1세대의 평균인원은 십세가 비교적 싼 제1종 공영주택에서는 3.96인이고 공단(公團)주택은 3.4인이다.
이 인원은 부모를 비롯한 가족원이 있어 정확하지는 않지만 수입이 많은 사람들일수록 아이들이 적음을 말해준다. 고급수입의 인사들이 살고 있는 공단주택세대의 평균 인원이 3.4인이란 수에는 가령 동거 친족을 0.2인씩 계산한다면 평균 1.2명의 자녀밖에 없음을 말해준다.
인테리 부부간엔 머지않아 아이 한명꼴밖에 안될 날이 오고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중류층에서 비행소년이 속출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면 무엇이 이러한 출생수 격감을 초래했는가? 그것이 바로 산아제한 운동이요 그것을 뒷받침해준 우생보호법(優生保護法)에 의한 임신중절의 공인이었다. (以下 社說 참조)
뒤틀린 結婚觀과 家族計劃
오늘 젊은이들에게 『당신은 무엇 때문에 결혼하느냐?』고 물어본다면 『행복을 얻으려고』고 대답할 것이다. 그 행복이란 곧 「즐거운 생활」인 것이고 자녀란 부차적(副次的)인 것 즉 부모들의 즐김을 방해하지 않는 한도에서 아기를 가질 수 있다는 사고방식이다. 이런 개인주의적 결혼관에 의하면 텔레비를 사고 휴가를 즐길 수 없으면 결혼취지에 반(反)하는 줄 안다.
아기가 전연 없으면 쓸쓸하겠지 하는 정도로 아기를 생각하고 그때문에 피임을 해가다가 실패할 때는 타태해버리는 것을 자연한 순서로 여긴다. 거기다가 우생보호법이 중절행위를 공인(公認)하면서 후생성 보건소가 피임선전을 하고 있으니 이를 타(垂)서 출생수가 주는 것이 아니라 아주 격감할 것은 너무나 당연했었다.
家族計劃 現況
1951년 각의(閣議)를 거쳐서 후생성은 가족계획의 명목하에 보건소를 중심하여 수태조절 실지지도를 해나간 결과 그 보급율이 10년만에 19%에서 42%로 증가했고 그율은 대도시가 높으며(48%) 교육이 높은 자가 더 높았다. 후생성은 여전히 가족계획 추진은 여전히 가족계획 추진은 호언하고 있다. 도대체 후생성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많은 부부들이 한두자녀만 갖고 싶어 할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와같이 한편 더 많은 아기를 가지고서도 행복하다는 사실은 덮어 버린단 말인가. 국가가 이런데 간섭할 일은 못된다. 후생성은 지금와서 『아동들은 위기적 단계에 있다』(兒童白書)고 우려하고 있으니 그 중대한 책임이 누구에게 있었던가 후생성의 논리는 중절을 예방하기 위해 피임을 한다는 듯한데 쾌락만 얻고 아기의 부담은 피하자는 심산에서 약품 기구를 사용하다가 한번 기술적으로 실패했을 때 중절을 할 것은 너무나 뻔한 일이다.
피임과 경쟁하듯 중절행위가 병행해 증대되고 있으며 출생율이 격감을 초래했음이 무엇보다 그것을 잘 말해준다. 가족계획은 성도덕(性道德) 퇴폐에 박차를 가했고 그로조차 심각한 「아동의 위기」를 가져왔다. 이 나라의 장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
危機打開할 길은
위기를 타개할 길은 우선 산아제한운동을 즉각 중지시키는 동시에 관계법령 전반을 예의검토하여 개정해야 한다. 그밖에 다음같은 방도를 생각해 볼 수 있다.
眞實한 結婚觀
오늘(日本의) 개인주의적 결혼관은 당사자의 행복을 결혼의 제1목적으로 삼고있다. 자녀 생산 양육은 부차적인 것으로 여긴다. 결혼하려는 젊은이들의 심정을 캐보면 바로 즐김을 찾을 수 있는 생활을 구하고 있다. 그러나 냉철히 생각해보면 결혼당사자들의 주관(主觀)이나 심리를 떠나서 객관적 사물(事物), 자연의 질서에 본다면 자녀를 양육하는 것이 결혼의 제1의적(義的) 목적이 안될 수 없고 당사자의 행복은 오히려 부차적인 것일 수 밖에 없다. 이 순서(順序)는 식물계에는 「암수」와 「수술」이 있고 동물계에도 자웅이 있음 같이 인간에도 남녀 양성이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간단하다. 자연은 남녀의 결합으로(結婚을 통한) 자녀 생산에 참여하게 마련되었다. 결혼을 경사스럽게 축복하는 것은 그로조차 새 생명을 탄생시킬 기촛돌을 놓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자녀를 양육해감으로 부부의 인간적 향상 및 행복을 증진시켜 갈 수 있다.
과거의 인류의 생명은 결혼을 통해서 미래의 인류에로 흐른다. 이런 생명의 흐름을 인공적으로 중절(中絶이란 용케도 잘 지은 말이다.) 시킨다는 것은 자연의 생명질서를 흩어 놓는 짓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사람들의 견해와 세계관이 이렇게 갈라진 때에 혼인사상을 개혁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겠으나 건전한 결혼관을 보급해 간다는 것은 현하의 시급한 교육적 과제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구가족(舊家族) 제도를 부활시키라는 것은 아니다. 다만 거기에도 버릴 수 없는 건전한 요소가 많이 포함되었었다는 것을 부인하지 못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산아제한을 무조건 반대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반대를 위한 가족수당제, 임금체계(賃金體系) 주택대책의 확립 등 과학적이며 정책적인 제의를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지면이 여유를 가지지 못하거니와 병자에게 종합적 진단이 필요한 거와 같이 쉽게 산아제한이란 부작용이 심한 처방을 값이 싸다는 명목 때문에 서두르지 말로 국가백년대계(大計)와 민족의 장래를 종합적으로 판단할 시기에 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