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國籍(국적) 없는 小女(소녀) (41) 장미꽃 ⑨
발행일1964-03-15 [제414호, 4면]
『내가 왜 학교까지 온 줄 알아?』
진호는 성난 얼굴로 말한다.
『……』
나는 입을 다물고 진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이야.』
이번에는 진호가 입을 다물고 대답을 기다리는 테세이다.
『무슨 소문이죠?』
나는 오히려 담담한 얼굴로 물었다.
『나순이는 깡통에게 팔린다구?』
『깡통에게 팔리다니요?』
『깡통 값으로 팔린단 말이야?』
진호는 미간을 찌푸리고 분개한 표정이다.
『호호호…』
나는 웃었다.
『미스터 키다리가 그런 소리를 했나 보죠?』
『누가 그랬느냐가 문제가 아니야, 미스양의 입장을 자기가 밝혀 보란말야!』
진호는 마치 죄인을 문초하는 날카로운 시선으로 쏘아보고 있다.
『이제 깡통 얘기는 끝났어요. 쓸데 없는 걱정은 마세요.』
나는 부드럽게 대답했으나 차츰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진호 지까짓 것이 무언데, 나를 죄인과 같이 몰아치는 걸까? 내가 저하고 사랑의 약속이라도 했단 말인가?)
나는 화난 얼굴로 섰던 위치를 떠났다.
『어디 가는거야?』
따라오며 진호가 묻는다.
『집에 가는거야요』
『「뮤직홀」은 아니겠지?』
『나를 감시하러왔에요?』
나는 반발심이 생겼다.
『그래 감시 해야겠어!』
진호는 앞 입술을 질끈 깨물더니 이렇게 말한다.
진호의 얼굴에는 무언지 강한 의지가 서리어 있었다. 나는 잠잠히 걸으면서 그에게 보낸 장미꽃과 편지가 생각났다.
진호는 누구보다도 자기가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 자인하는 것 같았다.
(현재는 딕슨이 나에게 가장 가깝다!)
하는 이런 생각도 하고 있었다.
『이쪽으로 조용한데로 가지!』
진호는 번화한 한길에서 A동으로 접어드는 한적한 골목길로 들어선다. 그 방면으로 가면 길을 돌아가게 되기에 멈칫했다.
『와요!』
진호의 목소리는 명령적이었다.
나는 잠시 망서리다가 그를 따라갔다.
『다방이나 과자점에 들어가서 조용히 얘기하고 싶은데… 나는 가난하니까 돈이 없어, 그러니 걸읍시다.!』
진호는 애 얼굴을 보지않고 자조하는 듯이 이렇게 말을 한다.
『…대학까지 다니시면서 뭐가 가난해요?』
어딘지 촌티가 나고 생활 능력이 없는듯이 보이던 그의 부모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나는 말했다.
『학비는 내 스스로 벌고 있어!』
『뭘 하셔서?』
『저녁에 국민학교 아이들 과외공부를 시키고 있어!』
진호의 시선은 먼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훌륭한데!)
나는 속으로 생각하며 그의 뾰죽한 턱과 얄삭한 입술을 바라보았다. 그의 입가에는 의지적인데가 엿보였다.
진호는 한동안의 침묵을 깨뜨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여자의 생명은 순결이야요. 미스양은 그만한 것은 알꺼야. 나는 다른건 구닥달이가 싫지만 순결만은 예사 것을 존중하고 싶어! 더구나 미스양이 빈깡통이나 「레이숀」상자 때문에 순결을 내던진다면 싫어! 그런 일은 내가 그냥보고 있지 않을 테야. 미스양이 나같은 가난한 학생은 마다해도 좋아! 미스양이 나를 미워해도 좋아. 나는 미스양의 순결은 보호해 주고 싶어! 내가 감시하겠다는 뜻을 알겠죠?』
진호는 힐긋 나를 바라보았다. 그는 흥분한 기색을 얼굴에 나타내고 있었다.
『…그만한 것은 알아요!』
나는 진호에게 전에 없는 친밀감을 느끼며 대답했다. 새침하고 남의 일에는 상관하지 않는 청년인줄만 알았는데, 이 순간 나는 진호의 강한 어떤 일면을 발견한듯 했다.
진호에 대한 나의 인식은 훨씬 두터운 것으로 변했다.
『…내가 만약 천한 여자로 타락을 한다면 어떻게 하겠어요?』
나는 기회를 보아 웃으며 이렇게 물었다.
진호의 반응을 엿보고 싶은 장난과, 한편으로는 아차 그 「라인」직전까지 맘이 자포자기가 되었던 순간을 회상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위험에서 내가 보호하겠다는 거야…』
진호는 하늘을 쳐다본채 말했다.
『만약, 이미 내 몸이 못된 곳으로 굴러떨어졌다면 어떻게 해요?』
『그 구렁텅이에서 나는 끄집어 내고 말테야…』
『…정말?」』
『물론…』
진호의 대답은 단호했다.
나는 이순간 진호의 팔에 매달리고 싶은 충격을 느꼈다.
진심으로 나에게 뻗쳐진 사랑의 손길은 없었던 것이다. 눈등이 확 닳아 오르는 것을 느꼈다. 또 하나의 내가 울먹거리는 나를 바라보며 비평을 내렸다.
『너는 사랑에 배고픈 소녀이다…』
또 하나의 나는 말을 계속한다.
『아버지라는 존재는 길러준 은혜를 늘 간판으로 내거는 사람이다. 학교의 선생이란 사람들은 학교의 체면만을 생각하고 있다. 친구들이란 것들은 너를 한층 고독 속으로 몰아 넣고 험잡고 욕하기만 했다. 따듯한 애정으로 내민 손길은 김진호가 처음이 아니었던가?』
나는 이런 기분에 싸여 퍽 감상적이 되었다. 그리고 진호 옆이 흐뭇하고 따듯했다. 나는 비로소 마음의 문을 열고 나의 고독했던 실머리를 풀기도 했다.
『나에게는 그림자뿐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는 지내왔어요.』
『이제 그림자는 하나가 아니고 둘이야요!』
진호는 다정한 시선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나는 어느틈에 진호의 팔꿈치를 잡았던 모양이었다. 손에 닿는 체온에 깜짝 놀라 진호의 팔을 놓았다.
『미스양!』
『네?』
『나도 늘 고속 속에서 살고 있어.』
『친부모가 계시지 않아요?』
『두 분은 죽은 분이지만… 서로 생각하는 것이 달라. 말이 통하지 않아. 내가 가진 고민, 그것은 나 혼자 해결해야만 해. 다행히 나는 내 그림자만 보지 않고, 주님을 우러러 보지… 주님에게 괴로운 일을 하소하고 의지하고 있어요. 미스양도 주님을 찾아보세요.』
진호의 말은 잔잔한 호심(湖心)에 던져진 돌과 같이 내 마음에 떨어진다.
우리는 근 한시간이나 걸렸으나 다리 아푼줄도 몰랐고, 어느새 집 근처에 왔었다.
나는 진호의 권하는대로 교회에 자주 나가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어느때 보다도 가벼웠다. 지금 생각하면 딕슨에게서 느낀 것은 훨씬 얇은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로는 그의 고향에서 올 편지가 진호의 얼굴을 물리치고 앞서는 것도 같다. 만약 딕슨의 부모가 데리고 오라는 회답을 보냈다면 어떻게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