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교리토론을 할때나 또는 「프로테스탄」 신자들로부터 교황의 무류성(無謬性)을 둘러싸고 교황도 사람인데 어찌 잘못이 없고 그리칠 수 없겠는가 라는 질문을 받는다. 그러나 교황의 무류성은 성질이 전연 다른 얘기다. 물론 교황도 사람이니 만큼 잘못할 수도 있고 또 그르칠 수도 있음은 역사가 증명하는 바요 더우기 교황도 신부나 마찬가지로 매일아침 미사성제를 드릴때 제대 앞에 허리를 굽혀 자기의 잘못을 고하고 또한 죄의 용서를 얻기 위해서 고해성사도 본다.
그러나 교황의 무류성이란 교황 자신이 죄가 없다는 말도 아니고 교황 개인의 잘못을 보호하기 위한 수단도 아니다. 교황이 지니고 있는 무류성은 교황이 종교사정에 관해서 그릇된 판단을 내리지 않기 위하여 그의 성직(聖職)에 주어진 것이다.
판사는 국가법률에 따라 법적 권한과 권위를 받는다. 그리고 그이 사생활(私生活)에 오점(汚點)이 있었다 하더라도 이것으로 말미암아 그가 재판석에서 내린 판결이 무효로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의 권위는 그의 사생활 여하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가 맡은 직책에 주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교황의 무류성도 교황의 성직에 주어진 것이니만큼 교황의 사생활에 좌우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교황의 무류성을 논할 때, 교황의 사생활을 가지고 따질 것이 아니다.
또 알아두어야 할 것은 교황이 계시진리(啓示眞理)와는 아무 관계도 없는 예컨대 물리학, 지질학, 천문학, 의학 등의 자연과학문제를 논하거나 또는 순수한 정치적 문제를 논할 때도 그르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그리고 교황이 개인적(私的)으로 말할 때도 그르치지 않는다는 것도 물론 아니다. 사사로이 말하는 경우 신앙과 도덕에 관한 문제까지도 그르칠 수 있다.
그렇다면 대체 교황이 지니고 있는 무류성의 참 뜻은 무엇일까? 대답은 이렇다. 교황이 공식석상에서 온전한 권위로 베드루 종도의 후계자로서, 온 교회의 으뜸으로서, 그리고 온 교회에 선포할 신앙과 도덕에 관한 교리를 판단할 때 그르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여기서 주의해보아야 할 점은, 첫째 교황이 성좌(聖座)에서 말할 때 둘째, 이 결정은 온 교회(全敎會)에 관한 것일 것, 그리고 신앙과 도덕에 관한 것일 것 등 세가지 조건이다.
교황은 계시의 창작자가 아니므로 새로운 교리를 발명할 수 없고 다만 계시의 해석자, 설명자로서 모든 시대의 사람들에게 처주의 진리를 그대로 전할 뿐 신법(神法)을 파괴하거나 성경의 말씀을 한마디나 한획이라도 바꾸거나 고칠 수 없음은 우리나 다 같다.
그러면 교황의 무류성은 어디에 근거를 두고 있는가를 살펴보자.
베드루 종도가 「체사레이필립」에서 『스승은 그리스도시요 생활하신 천주의 성자 이십니다.』하고 그리스도의 천주성을 고백했을 때 그리스도께서는 『요나의 아들 시몬아, 너는 진복자로다. 대개 혈육이 이를 네게 가르쳐주지 아니하고 오직 하늘에 계신 내 성부 가르쳐주심이니라. 나 또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루라. 나 이 반석 위에 내 성교회를 세울 것이메 지옥문이 처이기지 못하리라. 나 또 네게 천국열쇠를 주리니 네가 세상에서 무엇이든지 맨 것은 하늘에서도 맬 것이요, 네가 세상에서 무엇이든지 푼 것은 하늘에서도 풀리라』
하시면서 베드루에게 종노들의 수위권(首位權)과 교회를 가르치고 다스릴 권을 주셨다.
이 말씀을 하실 때, 그리스도께서는 「게파」(KEPHA」라는 말로 「베드루」와 「바위」의 두가지를 다 표현하셨다. 그리고 「지옥문」이란 표현은 죽음 또는 죄악의 힘을 뜻하고 「열쇠를 줌」은 유태인의 비유로 권리를 줌을 뜻한다.
오늘도 열쇠는 재치권(裁治權)을 상징한다. 그래서 저명한 인사가 큰 도시를 방문했을 때 시작은 그에게 큼지막한 열쇠를 주어 그날 하루 그 도시를 다스린다는 권리를 상징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그리스도께서 베드루에게 하신 말씀의 뜻은 이렇다. 『너는 내가 교회를 세우고자 하는 튼튼한 바탕이니, 죽음도 죄악도 이를 부수지 못할 것을 보증하노라. 또 내게 교회를 다스리고 맺고 풀며, 옳고 그름을 결정할 권리를 주노니 네 재결은 천주 친히 인준하시는 바니라』
그리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베드루에게서 사랑과 충성의 맹서를 받고 『내 고양을 치라… 내 양을 치라』 하심으로 양우리 안에 있는 평신자들 뿐 아니라 무리안에 있는 장로와 제자들과 종도들까지도 다스릴 권을 주셨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으뜸종도인 베드루에게 약속하시고 이 무류성은 베드루의 후계자인 교황에게도 전해진다는 것은 논리적 귀결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베드루와 그 동반자들에게 맡기신 사명은 온 인류를 가르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사명은 마지막 한 영혼까지도 천주님의 품안에 쉴 때까지 계속되어야 한다. 그러나 베드루와 그 동반자들은 모두 죽어야 할 사람들이고 보니 자연히 이 사명은 그들의 후계자들에 의해서 계속 되어야 하고 그리스도께서 베드루에게 주신 모든 권리도 계승되어야 한다. 그런데 으뜸 종도 베드루의 직접적 후계자는 바로 교항이시다. 따라서 어제의 교황도 오늘의 교황도 긜고 세상 마칠 때까지의 앞으로의 교황도 그리스도께서 베드루에게 주신 무류성을 가지고 있다.
먹물을 끼얹은 듯 캄캄한 밤! 무서운 파도가 뒤덮는 바다에서 뱃사공의 길잡이가 되어주는 나침판과 같이 오류의 짙은 안개가 둘러싸인 속에서 종교의 진리를 찾는 나그네에게 길잡이가 되기 위해서 무류성이 있다. 만일 교황의 무류성이 없다면 어떻게 우리는 안심하고 진리의 항구로 갈 수 있겠는가? 교황의 무류성은 결코 우리의 지성을 구속하거나 지성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무류성은 우리에게 진리를 밝혀주고 지성을 지닌 모든 이는 이 진리를 믿어야 하기 때문이다. 진리를 믿는다는 것은 지성의 자유를 구속하는 섯이 아니라 오히려 지성의 영역(領域)을 넓혀 크게하는 것이다. 인자하신 천주께서는 자손만대에 이르기까지 모든 인류가 계시진리(啓示眞理)를 믿고 또한 그리침이 없이 인유레게 전해주기 위해서 이 무류성을 마련하였다. 실로 교황의 무류성은 오류에 대한 방패요 우리의 길잡이라 아니할 수 없다.
金 다미안 神父(신학박사, 수원교구 장호원본당 주임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