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國籍(국적) 없는 小女(소녀) (17) 우정 ②
발행일1963-09-08 [제390호, 4면]
극장이 필하고 나오는데 우리 뒤에는 춘자들의 일행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들은 나와는 관계 없는 영화 본 감상을 얘기하고 있었으나 내 신경은 자연히 뒤로 쏠린다.
한 길을 건널 때 뒤를 돌아보니 춘자들이 안 보인다.
강숙이는 빵이나 먹자고 하면서 과자점으로 잡아 끈다.
배가 고팠으므로 빵 맛은 나의 괴로운 마음을 위로해 주는 듯 했다. 세 개를 먹고 나니 무겁던 머리도 가벼워진 듯 하다.
『더 먹자!』
하면서 강숙은 빵 두 개를 또 시킨다. 그는 안 먹고, 나 혼자 두 개를 다 먹었다.
『더 먹을 테니?』
강숙이가 묻는다.
나는 배 안이 두득했으므로 고개를 저었다. 뱃속이 만족하고 보니 근심과 고민이 슬그머니 자취를 감춘다. 구름낀 나의 표정은 내가 느낄만큼 명랑한 곳으로 전환이 되었다. 나는 영화의 감상을 지꺼리었다.
강숙이는 고개만 끄덕끄덕하고 내말을 듣고 있다. 나는 말이 적은 강숙이가 좋았다.
이 때, 왁자하고 들어오는 여학생 한 패가 있었다. 춘자들이었다. 좌석은 거의 다 차고, 우리 옆의 탁자가 비었을 뿐이다. 그들은 그 쪽으로 몰려들었다. 보기 싫어도 마주보게 되었다.
「기분 나쁜 말이라도 해 보아라!」
나는 마음 속에 전투 준비를 갖추고 그들의 재잘대는 소리에 신경을 돋구었다. 어쩐지 춘자는 나에 대해서는 말이 없었다.
나는 별로 마시고 싶지도 않은 물을 마시고는 강숙이를 보고 가자고 했다.
내가 앞서고 강숙이가 뒤에 나오는데 춘자가 강숙이를 붙들고 뭐라고 한다.
『넌 왜 퇴기하고 같이 다니니?』
내가 출입 「또어」 앞에 오자 이런 말이 귀에 들린다.
발걸음은 자동적으로 밖으로 나왔으나 뛰어 들어가서 한바탕 싸우고 싶은 생각이 든다. (조눔의 기지배를…)
나는 유리창 너머로 춘자를 노려보고 있을 때.
『그까짓거 상대하지 말어!』하고 강숙이가 잡아 끈다.
『강숙아 너도 내일부터는 나하고 같이 다니지 말아!』
묵묵히 가다가 나는 입을 열었다.
『왜?』
『나는 퇴기니깐 말야!』
『벌소리 다하는 구나!』
강숙은 의레 나무라듯이 말한다.
『…내가 만약 퇴기라면 강숙이 너도 나를 괄시하겠지?』
『그런거 난 문제시 안 해!』
『난 친구라곤 너 하나 뿐이야!』
『난 네가 좋아!』
『나는 빵 한 번도 못 사 줬는데?』
『빵은 언제든지 내가 살께 걱정 말어!』
『우리 아버지는 굉장히 구두쇠다!』
『용돈 필요하면 나한테 말해. 내가 주께!』
『너의 아버지는 용돈을 충분히 주시니?』
『……………』
강숙이는 대답 대신 미묘한 웃음을 입가에 담았을 뿐이었다.
이튿날 네시간째, 체육시간에 흑백으로 편이 갈리어 「텃치볼」이 있었는데 나는 강숙과 편이고 춘자는 저쪽 편이었다.
강숙은 춘자의 머리통을 되게 갈겨주라고 하면서 볼만 잡으면 자기는 안 던지고 나에게 「패스」를 한다.
서너번 춘자를 목표로 던졌는데 첫 번은 너무 세서 헛나가고 두 번째는 춘자가 받고 세 번째는 발 밑에 땅볼로 떨어졌다. 춘자가 마침내 앞으로 공을 피해오던 찰나 강숙이가 「패스」받은 볼을 나에게로 급히 「패스」를 했다.
『요년!』
하고, 나는 보을 받자 번개같이 춘자의 머리통을 향하여 갈겼다. 거리가 가깝고, 볼이 셋으므로 약빠른 춘자도 피할 사이가 없었다. 받을라고 두 손을 들었으나, 그 때는 이미 볼이 그의 장구 앞머리를 탕하고 때린 뒤였었다.
『앗핫핫…』
웃으며 손벽을 치고 있다. 춘자는 눈을 다친양 잠시 눈을 어루만지고 있더니 이윽고 웅크리고 앉는다.
그 바람에 경기는 잠시 중단이 되었다.
『많이 다쳤나?』
선생이 앞으로 가서 춘자의 눈을 드려다 본다.
『고의로 나를 때린 거야요!』
춘자는 성한 한쪽 눈으로 나를 노려보며 선생에게 고해 바치고 있다.
『경기하다 그런건데 고의가 어디 있어?』
선생은 문제시 안 한다.
『앙심 먹고 때린 거야요!』
춘자와 친한 고양이같은 눈을 한 연숙이가 옆에서 편을 든다.
그 바람에 선생은 나를 힐긋 돌아본다.
『경기에 맞은 사람이 잘못이지 사정보고 때렸다간 우리가 지게요』
내가 이렇게 말하자 강숙이가 나섰다.
『경기하다가 저런 소리 하는건 비겁해!』
춘자는 연숙이의 부축을 받고 의무실로 가고 경기는 다시 시작되었는데 이젠 나에게는 흥미가 없었다.
의무실에서 돌아온 춘자는 다친 눈에 안대를 감고 있었다.
좀 미안한 생각이 든다.
『어떻게 하필 눈이 맞았니? 미안하다!』
나는 약간 사과조로 말했다.
『일부러 눈을 친거지?』
춘자의 외짝 눈에는 _한이 가득 차 있다.
『아니야!』
사실 나는 그의 머리통이나 한 번 때리고 싶었지 눈을 상하게 할 생각은 없었다.
『종자가 못 되서 그래!』
춘자는 돌아서면서 이렇게 뱉어던진다.
그러나 나는 참았다. 이튿날 학교에서 춘자들은 한층 나를 빼돌리며 눈들을 흘겼다. 유일한 나의 「오아시스」인 강숙이는 그날 결석을 하고 안 보인다.
그 다음 날도 강숙이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
방과 후 외롭게 혼자 교문을 나서자니, 안대는 풀었으나 눈등이 아직도 시퍼러둥한 춘자가 오륙명 저희 「크럽」끼리 콧장단 노래를 부르며 왁작하고 내 뒤에 따라온다. 나는 그들을 피하기 위해서 일부러 골목으로 들어섰다. 그들은 또 골목으로 따라왔다.
『양부인의 종잘꺼야!』
누구의 목소린지 모르나 이런 말이 들리길래 획 돌아서서 노려보았다.
『지금 뭐랬냐? 어떤 년의 입주둥이냐?』
일행은 멈칫하더니 다시 콧노래 장단을 치며 내 옆을 지나간다.
나는 그들이 사라진 뒤 천천히 골목을 빠져 한 길로 나왔다. 모퉁이 「케잌」점 앞을 지나니 유리창 너머로 그이 왁자하고 앉아서 지나가는 나를 보고 손짓 혓바닥질들을 한다.
그 길로 나는 강숙이네 집을 찾아갔더니, 시골에 계신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부모 따라 초상에 갔다고 식모가 말한다. 이날 내 손에 든 책가방은 유난히 무거웠다. 그만큼 내 팔에는 힘이 없었다. 어스름해진 황혼의 하늘에 교회의 종소리가 들려온다. 오늘은 무슨 날이라 저녁미사가 있는가 싶어 진호라도 만날 생각으로 교회로 발을 옮겼다.
아닌게 아니라 미사가 있었는데 진호의 뒷모습이 남자석의 그가 늘 앉는 자리에 보인다.
미사가 끝나자 밖에서 기다리고 있자니 한참 후에야 진호는 나왔다.
『미사 참례 했어요?』
『네에!』
『잘 왔어』
진호는 반가워한다.
이윽고 하방단의 「멤버」인듯한 성가악보를 든 여대생이 하나 오더니 어딘지 진호를 빨리 가자고 재촉한다. 진호는 회가 있다면서 그 여대생과 함께 뒤에 있는 부속건물로 사라져버렸다.
나는 웃으며 진호에게 작별의 인사를 하였으나 안 온 것만 못한 쓸쓸함이 미어든다.
(양부인의 종자?)
나는 교회를 나서면서 춘자들의 말을 입속에서 되씹었다.
(우리 어머니가 그럴 사람은 아닌데?)
나는 어머니의 명예만이라도 보호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 발걸음은 우리 집과는 반대 방향인 동이네 집으로 가고 있었다.
나는 그 집 대문 앞에서 되돌아 설까 했다. 어쩐지 사실을 알기가 두려웠다. 그러나 다음 순간 나는 그 집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동이 엄마는 전과 다름 없이 반갑게 나를 맞이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