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角(시각)] 社會參與(사회참여)의 態勢(태세)
社會問題 硏究機構 두고 平信徒 指導層 養成해야
발행일1963-09-15 [제391호, 1면]
교회의 사회참여와 침투에는 예를들면 병원 학교 등의 경영은 평신도가 성직자보다 제일의적(第一義的)으로 적임자이며 이 신적사명(神的使命)에 승품(昇品) 받았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바로 사제(司祭)는 세사적(世事的)(LETEMPOREL)인 것 보다는 영적(靈的)인 것(LE SPRITUEL)을 위해서 사제품에 책립되었다는 것은 현대 교황들이 누차 강조한 바이다.
선진국에서는 성직 계급이 이러한 세사직 분야에 직접 간여(干與)할 필요가 없도록 교회는 영적 이외의 사업의 운영에 대한 훈련을 학생·학사운동을 통해서 청소년들에게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사회·정치문제 연구소 등 연구기관을 경영하는 것이 시대의 절실한 요청이다. 교회의 사회참여와 현존을 위해서 「마스·메디아」의 육성과 운영, 해외유학의 교회관계, 장학회를 이런 관심으로써 조종했어야 할 것이었다.
독일 「노이·도이췰란트」(N·D) 청소년 운동은 장년회(壯年會)에 가서는 묵상회 외에 정치적 문제에 관한 회합을 자주 갖고 있으며 현대 유럽의 지도적 철학자인 로마노.과르디니의 지도하에 있는 「퀵크보른」 운동도 여기에 중요한 공헌을 하고 있다. 현주(駐) 「바티깐」 서독대사관 참사관인 주교 희퍼박사는 10여 년 전 필자에게 서독 가톨릭 정치가의 부족과 그 양성과 훈련이 중앙당(ZENTEUM PARTEI) 해산 이래 중단되었다는 것을 한탄하며 이에 대한 현재의 노력이 불충분하다는 것을 통탄했을 때 나는 기이한 감을 금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 당시 의기충천하는 기민당(基民黨)의 역력한 「멤버」와 그들의 정치이념 및 「이데올로기」를 상기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너무나 이외의 한탄이 아닐 수 없었으니까 말이다.
한국에도 가톨릭 정치인들 혹은 가톨릭 신자들의 정외적 활동의 행동화가 있음직 한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영세를 받고 미사에 참예하는 가톨릭 신자가 정치를 한다고 그리스도교적 정치인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되자면 적어도 확고한 신앙 뿐만 아니라 가톨릭의 사회관과 정치관, 한 마디로 말해서 철학을 가져야 하며 갖도록 연구해야 한다. 또 그렇다고 정교일치(政敎一致)의 착각에 사로잡힌 근시적 불관용(不寬容)과 광신적(狂信的) 성급한 정책은 백해무익한 것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 같다.
평신도들의 정치적 의식의 각성과 정치의 참여 및 그리스도교적 정치가의 양성을 위해서 교회는 노력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이것은 교회나 성직자가 정치에 나서라는 말은 아니다. 물론 그럴 때가 있다. 그것은 국가나 정부가 부정과 폭정으로써 자연법(自然法)과 인권(人權)을 침범할 경우 교회는 박해를 각오하고 민중을 대표해서 신법(神法)과 자연법의 옹호자로서 이에 반거(反拒)해서 일어서야 한다.
우리는 독일서 「나치즘」에 충분히 반항하지 않았거나 저항이 미온적이었다는 비난이 2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 독일언론계에서 시비가 벌어졌던 것을 기억하면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우리들의 비겁함을 심판하지나 않을가 극히 두려워 하고 있다.
오늘날의 독일가톨릭의 영광의 여명은 『뮌스터의 사자』라는 별명을 가졌던 폰.갈랜 추기경이나 많은 성직자가 「나치즘」에의 항전으로 인해서 연금되었거나 집단 수용소에서 갖은 고난과 죽음을 겪은 어두운 수난기인 것이다.
오랫동안 동경 성심여자학원(聖心女子學園) 원장으로 지냈던 「마이어」 수녀의 오빠인 루베르트.마이어 신부는 제1차 대전 종군 때 다리를 하나 잃은 철십자 제1급 훈장 수대자이며 그 용감한 공훈은 문호(文豪) 한스.가롯싸의 『루마니아 일기』에 언급되어 불멸화 되었지만 이 예수회 신부는 히틀러와 「나치즘」의 야만성을 자기가 시작한 「뮨헨」역 여행자 성당에서 공격한 이유로 사형감이 되었었다.
그러나 그의 공훈과 사회적 물의를 참작하고 꺼려한 나머지 「나치즘」은 그를 「엣탈」수도원에 연금하였다.
드디어 히틀러의 항복으로 자유의 몸이 된 채 어떤날 미사거행 중 모든 교우들의 주시하에서 제대에 섰던 채 대왕생(大往生)을 하였는데 이 분의 유해가 안치된 「뮨헨」 시민관 지하성당에는 열복(列福) 조사가 시작된 10여 년 전이나 지금도 역시 한결같이 만명 이상의 기구하는 사람들이 매일 출입하고 있는 것은 독일가톨릭교회의 성성(聖性)을 말해주는 것이리라.
마지막 말로 다시 우리는 루트.샤우만의 시의 마지막 귀절을 상기하고 싶다. 『주여. 기쁨마다 나에게 하나의 고난을, 저녁마다 나에게 하나의 죽음을 주소서. 내가 무뚝뚝하게 당신에게 고집을 피울 때면 당신 스스로 나의 깊이의 추(錘)가 되어주소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