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주 예수 그리스도 적어도 한번은 메시아로서 세상에 알려지시게 되어 있었읍니다. 그 날을 죽기전 5일로 택하셨읍니다. 「빠스카」첨례가 가까워지면 유데아인들은 의례히 제물로 바칠 양이나 염소를 마련했읍니다. 정확히 말하면 제물을 춘분 지나서 음력 10일에 마련해서 14일까지 집에 가두어 놓았다가 저녁에 잡아서 「빠스카」를 지냈읍니다. 진정한 양(羊)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참된 빠스카 제물이 되시고자 「예루살렘」에 올라오셨읍니다. 「예루살렘」 드나드시기 여러차례였지만 오늘이 그 마지막이 됩니다. 여태껏 진리를 가르치시고 영적을 행하시어 빛나는 업적을 남기셨지만 한번도 오늘처럼 메시아의 영광을 과시하신 적이 없읍니다.
유데아인들은 메시아라면 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오는줄 알고 있었지만 그리스도께서는 나귀를 타고 오셨읍니다. 부자가 타기 좋아하는 말이 없어서 나귀를 택한 것이 아이며 권능이 모자라 황금마차를 타지 않으시고 나귀를 모신 것이 아닙니다. 「예리코」에서 「예루살렘」에 이르는 험한 길을 먼지를 덮어쓰며 하루종일 걸으시다가 「베파제」에 다다랐을 때 비로소 안장 대신에 소박한 종도들의 낡은 곳을 깔고 나귀를 타신 것은 주께서 인자하셨기 때문입니다. 메시아의 영광을 온세상에 과시하시되 오만한 태도란 조금도 없었으니 『시온 여자에게 이르되 보라. 인자하신 네 왕이 오신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읍니다. 그야말로 평화의 임금으로 오십니다. 스스로 낮추셨기 때문에 높이 올림을 받으셨으니 앞서 가고 뒤에 가는 백성들이 『다위 자손은 만세 무강하소서. 주의 이름을 의지하여 오신 자 복될찌어다. 지극히 높은 데에서 만세 무강하소서.』라는 칭송을 했읍니다.
백성들이 그를 찬양함에 있어서 다위 자손이란 말로 메시아임을 인정했고, 주의 이름을 의지하여 오신 자란 말로 임금임을 인정했고, 지극히 높은 데에서란 말로 천주이을 인정했으니 이보다도 더 훌륭한 찬사가 없었읍니다. 온 도성이 소동하여 이르되 『이누냐?』하며 놀랄 정도였읍니다. 하기야 그리스도께서는 천상천하의 전권을 가지고 계시니 그래야 마땅하지 않겠읍니까? 떡 영적을 행하셨을 때, 임금으로 모시려고 백성들이 달려들 때에는 피하셨지만 이번에는 도리어 몸을 나타내시어 칭송을 받고자 하십니다.
영적을 통하여 호화롭게 지상의 임금이 되시려고는 안하셨지만 죽음과 수난을 통하여 천상의 임금이 되시려고 하셨으니까 우리의 마땅한 칭송을 원하신 것입니다. 구차스러운 우리의 칭송을 받아보셔도 무슨 영광이 되는 것이 아닌데도… 우리가 그이에게 칭송을 바침이 우리에게 이익이 있을망정 그이에게는 조금도 보탬이 없고 안바친다고 해서 그이에게 답답한 일도 없읍니다. 착한 임금으로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까닭에 우리에게 와 주시니 우리는 시온 여자와 더불어 기뻐하며 마중나와서 백성들과 함께 「호산나」를 부르고 「알렐루야」 노래해야 되겠읍니다. 우리가 그렇게 한다면 그리스도께서도 얼마나 기뻐하시겠읍니까? 슬프게도 우리중의 많은 이가 주께서 원하시는 대로 주를 찬송하고 있지 않습니다.
지금 주께서는 「예루살렘」이 아니라 우리 마음에 들어오시니 우리는 잘 영접해야 되겠읍니다.
우리 마음에 들어오시되 나귀를 타고 들어 오시지 않으시고 떡과 술의 형상을 하시고 오십니다. 주를 영접하는데 착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악한 사람도 있읍니다.
「올리와」산 근처에 자리잡은 「메파제」에 이르러서 주는 종도를 보내어 앞 마들에 있는 나귀를 들어오게 하시면서 『누 만일 무슨 말을 하기는 이르되 주 쓰실 데가 있다 하면 되느니라』고 분부하셨읍니다.
종도들이 나귀를 풀어 끌고 가려고 할 때 주인이 나와서 『왜 남의 말을 끌고 가느냐?』고 묻기에 그리스도께서 분부하신대로 『주께서 쓰실 데가 있다』하니 아무 말 없이 승락했읍니다. 기다리라거나, 싫다든가 못주겠다고 하지 않았읍니다. 주께서 원하시니 그만이었읍니다.
이 사람만 혼자만이 주를 이렇게도 극히 사랑하지는 않았읍니다. 며칠 안되어 종도 베드루와 요왕은 또 한 사람을 찾을 수 있었읍니다. 이번에도 『너희가 읍내에 들어가매 물병 지고 가는 사람 하나를 만나리니 저를 따라가 그 사람이 어디로 들어가든지 따라가서 그 집 주인에게 이르되 스승이 말씀하시기를, 내 제자들과 한가지로 「빠스카」를 먹을 식빵이 어디있나뇨, 하더이다 하라.』는 그리스도의 분부를 받아서 착한 사람을 만난 것입니다. 그 사람은 곧 크고 높은 식방 하나 꾸민 것을 종도들에게 가리켜 주었읍니다.
그는 지체없이 기꺼이 주의 부탁에 응하였읍니다. 둘은 다 종도들이 모르고 세상에 알려지지도 못한 사람이었읍니다. 숨어서 그리스도를 정성껏 섬기던 사람이었읍니다. 오늘도 종도 성 베드루와 요왕의 후계자인 사제들이 이렇게 아름다운 영혼을 찾아 볼 수 있으니 그들은 부활판공을 지키며, 전신을 주께 바치고 애정을 드리고 있읍니다. 희생을 문제 삼지 않으니, 시간이니 돈이니 건강이니 할 것 없이 주 요구하시는 대로 아끼지 않고 있읍니다.
이에 반하여 아름답지 못한 영혼도 있읍니다.
환성을 울리는 백성들을 까맣게 두신채 「올리와」산 위에 다다르시어 도성을 내려다 보시고 주는 우셨읍니다. 『슬프다. 네게 평화함을 주시는 사정을 너 과연 오늘이라도 깨달으면 다행하련마는 지금 다 네 눈 앞에 가리웠도다. 대저 때가 장차 네게 이르매 네 원수들이 너를 에워 진을치고 가두며 사방으로 너를 핍박하며 너와 및 네게 있는 자녀들을 땅에 거꾸러치며 돌 하나이라도 돌 위에 남겨두지 아니하리라.』고 한탄하셨읍니다. 온 백성이 크게 환영하고 있을 때에 주는 슬퍼하셨읍니다.
외모(外貌)에 속지 않으시고 속심(內心)을 아신 까닭입니다. 도성처럼 멸망할 영혼을 그 백성 중에서 찾아 보셨읍니다. 그들이 멸망한 것은 그들이 나빴기 때문입니다.
열중한 백성 가운데 끼어 같이 좋아하는 척하며 환영을 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속심을 달리하고 떠들고 있었으므로 주는 우셨읍니다. 나무가지를 손에 들고 즐거워 어쩔줄 모르는듯 하였지만 실은 좋은 구경이나 보게되었다는 마음뿐이지 사랑도 신앙도 아니보여 주므로 우셨읍니다. 「호산나」를 부르며 찬송하던 같은 입에서 며칠 안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라는 말과 십자가에 매달려 계실 때에 그 아래에 서서 조롱하는 모욕이 나올줄 아셨으므로 우셨읍니다.
화려하게 주를 환영하던 「예루살렘」이 얼마 안되어 로마군에게 짓밟혀 멸망할 것을 아시며 같은 민족이 비참하게 불타 죽고 칼 · 창에 찔리어 죽을 것을 보시고 우셨읍니다. 불타 죽으면서 또 사후(死後)의 영원한 불을 면치 못할 줄을 밝히 알고 게셨으므로 매우 슬퍼하셨읍니다. 부활을 맞이하여 성체의 주를 환영함에 있어 우리 잘못으로 주를 우시게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모름지기 예비할 바를 잘 예비하여 주를 기쁘게 해드립시다. 주는 공손하신 태도로 우리에게 평화를 갖다주러 오시니 예비가 잘 안되면 그 평가 변하여 앙화로 돌아갈 우려가 있읍니다.
盧景三 神父(꼰벤뚜알 성프란치스꼬회, 대구 범어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