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정동 소재 성공회 「앙그리칸」 주동으로 교회일치 행사를 수차에 걸쳐 지낸바 있다. (旣報) 여기 가톨릭 측의 다두 김(金昌錫=서울대교구 상서국장) 신부와 서강대학의 교수이며 예수회원인 킬로렌 신부, 켈리 신부 세 분이 연설을 했다. 국내에서의 중요한 재일치에의 가톨릭측 발언으로 주목하면서 전반을 충실히 전달하지 못한다. 한편 천주의 프레데릭 유신부(메리놀회원)는 당지에서 「프로테스탄」 교역자들을 상대로 그들의 의의 주요연설을 했었다. 유신부의 연설은 그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編輯者 註)
■ 켈리 神父
제2차 바티깐 公議會와 재일치 · 사목 · 행정의 改革
(要旨) 방금 딴 분의 연설 중 제2차 바티깐 공의회는 재일치만이 주요과업이 아니라고 지적했다. 과연 여기 드러난 주의를 보내지 않았으나 결국 그 성과를 가져올 것이며 금년 가을에는 공개될 줄 안다. 요안 교황께서 처음 공의회 계획을 발표했을 때 개혁과 「아죠르나멘또」(오늘에의 適應)에 적극 활동과 재일치에 방해되는 불필요한 것 등을 피하면서 재일치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 등은 교회일치의 요구에 주목케 하는 바있다.
공의회가 바로 재일치 과업을 완성할 것으로 기대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공의회가 인준한 몇가지 일들이 있다. 공의회와 교회당국은 교회재일치에의 열망을 표시해 왔었다.
그것은 교회분열을 영속화하는 교리에의 오해에 있어서 교리적 표준을 선도(先導)할 수 있었다. 그것은 또한 교회생활 및 구조를 검토하는 일련된 선도(先導)할 수 있었다. 나는 그런 탐구를 『선도했다』고 말하는 바이다. 왜냐하면 이런 종류의 개혁은 단시일의 과업이 아닌 때문이다. 교회는 일종의 인간사회이요 다른 인간사회들을 통치하는 많은 법(法)을 따라야 한다. 공의회 및 동 위원회 등이 활동한 사목 및 행정상의 개혁에 언급해 보겠다. (大略)
제2차 바티깐 공의회가 모든 그리스도교도를 진정한 그리스도의 교회로 성명한 로마 가톨릭교회 안에서만 결정한다고 본다는 것은 잘못일 것이다. 또한 공의회가 교회를 다른 그리스도교도들의 기대에 맞게 오류의 타협없이 성취하리란 기대를 거는 것도 잘못일 것이다. 그러한 활동은 그리스도교도들과의 오랜 대화 및 가톨릭 당국과 평신도에 관해서 보다 오랜 검토과정의 과실로 거둘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공의회는 대진전을 했다. 공의회를 통해 우리 자신과 새 사목 및 행정형식 등 낡은 진리를 개 길에서 보는 교회의 적용능력을 실험하고 있다. 이 진행을 예견할 수는 없다. 하지만 교회가 가톨릭이기에 어느 인간방도의 행동과 사상을 단지 남의 것이기 때문에 배척하지 않을 줄 안다. 우리는 이 「아죠르나멘또」운동을 통해 가톨릭 신앙의 본질인 예수의 정신을 추궁하고 있다. (필자=예수회원)
■ 키로렌 神父
바티깐 公議會와 그리스도敎 統合
오늘 저녁 나의 분야는 그리스도교 재일치의 교리문제, 바티깐 공의회의 방면 및 그 활동에 언급하게 되어있다. 제2차 바티깐 공의회라고 한 것은 적어도 제1차 바티깐 공의회와 관련성이 있다. 제1차의 그것은 1869년에 소집되었었고 그 주요 결과는 교황의 권위와 무류성(無謬性)을 강력히 정의한 것이었다. 여러분은 제1차 바티깐 공의회는 교황의 수위권(首位權) 때문에 모든 그리스도교들의 일치에 반(反)했었고 모든 그 분열은 로마 · 가톨릭과 희랍정교 성공회 루터교 혹은 「프로테스탄」 「그룹」 간의 가장 큰 불화점이라 할 것이다. 이태리 국내의 전란으로 이 공의회는 폐회를 보지 못했엇다. 1961년 요안 교황에 의해 소집된 제2차 공의회는 제1차의 그것을 종결하는 동시에 그 자체의 새 목적을 더하는 데 있다. 제1차 바티깐 공의회의 목적을 다음 4개로 열거할 수 있다.
1 교회의 밀접한 성질(性質)의 검토
2 교회의 개혁과 재신(再新)
3 모든 그리스도교도들의 일치를 가져 오는 일
4 현대 비(非) 그리스도교도와의 대화(對話)
다만 셋째가 그리스도교도의 일치를 직접 취급했다고 일치와 관련되었다. 그러면 극히 간략하게 하나만 간추려 보겠다.
1, 제1차 바티깐 공의회는 교황의 권한과 지위를 과도히 예민하게 정의(定義)하여 교황이 교회인 것처럼 보였었다. 이 과장된 강조의 반동으로 제2차 바티깐 공의회는 주교단의 지위를 크게 보완(補完)하고있다. 이들 종도들의 후계자들은 교황의 한 보좌들만이 아니다. 마치 베드루가 종도단의 일원인 것처럼 교황은 주교단의 일원이요 그 으뜸인 것이다. 종도단을 계승한 주교들은 교황과 더불어 교회를 통치하는데 참여한다. 이 교회의 밀접한 성질의 검토는 교회안에서의 교황에 관한 참 한계 및 또한 주교들의 참 권한을 더욱 명백히 보여줄 것이다. 이 비짐중(非集中) 및 주교단의 광범위한 국제화 실현 등은 교회에 새 영토(領土)를 주고 많은 「올스독스」와 그리스찬 교회들의 비위에 거슬린 인상을 불식한다.
2, 교회의 개혁과 재신은 주로 전례(典禮)에 있는데 공의회의 의도(意圖)는 예배가 민중의 행동이며 사제가 그들 앞에 구셩을 보여주는 그것만이 아닌 것을 확인하자는 것이다.
자국어 사용, 기도 인도에서의 평신도의 행동적 참여 예식음악 · 예술에 있어서의 민족문화의 장려 등은 이 문제에서 소원했던 넓은 각계각층에 크게 「아필」 할 줄 안다.
3, 셋째는 직넙 오늘 주제에의 문제이겠으나 그 충분한 배경 없이 잘 이해할 수 없겠다. 모든 그리스도교도들의 일치를 가져오는 일은 어떤 설명 또는 법률로 천명한 바는 없었지만 이것은 공의회가 일치를 주친하려는 공기이며 일반적 분위기인 것이다. 제1차 바티깐 공의회는 그리스도교도의 일치를 그렇게 취급하고 있으니 나는 여기서 공의회 토론 및 개인저서에서 보는 7개의 교회일치에의 방도를 들어 보겠다.
①그리스도교도간의 분열은 추문밖에 아니며 이 추문을 없애는 노력을 계속해가야 한다. 그리스도교도간의 우의와 협동의 증좌를 보여야 한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다. 일치는 형제애, 그리스도교적 가치관(價値觀) 방호의 공동노력 자선활동을 통해 시작할 수 있고 그렇게 일해 왔었다.
②그리스도교도는 분열보다 일치를 지향하는데 일정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 신학적 차이에 과도한 집착 없이 가령 세계교회회의(wcc)와 분열을 수습하는 각종 제의들에서 보는 바 일치를 환영하는 온갖 노력이 선행(先行)해야 한다.
③과거의 논쟁들에 대한 정직하고 학자적인 검토와 이단 또는 분리의 회유가 아니라 과거 가톨릭의 실패 또는 잘못을 신인하는 태도가 있어야 한다.
④비(非)가톨릭 그리스도교도와의 대화(對話)에 들어가야 하는데, 대화란 자발적이고 열망까지도 있어야 하며 한편의 안팎을 찬양하고 그것을 가톨릭의 안팎에 안정(安定)시켜 가는 길을 발견하려고 해야한다.
⑤종래 주로 「올스독」와 「앙그리칸」과의 재일치에만 집중하던 것을 지양하고 모든 그리스도교도들을 포함하는 「교회일치달성」에로 나가야 한다. 「올스독스」 측과는 교리상의 합의가 보다 큰 것은 사실이겟지만 교회 일치 관계에 있어서 어느 그리스도교 단체도 제외되어서는 안된다.
⑥「교회일치달성」에 있어서 특정 문제를 든다는것은 시기상조이다. 가톨릭측은 누구나 전적으로 가톨릭교리 특히 교회와 교황직, 미사와 성체 그리고 성모께 관한 교리를 견지(堅持)하고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뿐 아니라 이들 교리에 대한 비가톨릭의 정신은 우리가 바라는 대로가 아니다. 교회일치의 임무의 일부는 이런 태도를 바꾸고 회의, 혐오 및 저항보다 자연스런 그리스도교도의 사랑을 가져오는 일이다. 가톨릭 측이 첫째로 할 일은 다른 측의 의견과 감정에 성실과 존경으로 접근하고 모든 그리스도교도의 심중에 천주성신이 하시는 작용을 엮어가는 일이다.
⑦끝으로 제1차 바티깐 공의회의 그리스도교도 일치의 목적 아래 우리의 갈려진 형제들을 개인으로 만이 아니라 교회들이 연합한 한 공동체로서 포용해가야 한다. 이는 진정한 그리스도교적 가치(價値)와 이 연합체 혹은 교회들 안에 세워진 그리스도교적 덕성(德性)을 계상(計上)한 것이다. 이는 그들의 주교좌들, 교회들, 신학교, 학교, 수도원, 수도회, 피정의집, 혹은 선교회들 및 자선단체들도 거기 포함된다. 분산된 교회드의 세계는 단지 개인집단에 불과하다. 세게는 복잡하면서 긴밀한 단합과 교육계획 병원 고아원 구라사업 맹아 및 그러한 다양다색의 사업을 지원하기에 조직된 일을 해가고 있다. 또한 성서 번역을 위시한 진정한 그리스도교 교육을 해가는 세계이다. 「교회일치의 달성」은 이런 현실적인 일을 하려고 해야한다.
⑧공의회는 그리스도교도의 일치를 직접 취급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모르고 또 알려고도 하지 않는 현대인의 광막한 바다에 그리스도교의 전진할 거점을 바라본 것이다. 공의회는 인간의 세계 가족에 관련된 세계문제 전반에 관한 대화를 바라고 있다. 정치, 인종, 지성, 사회, 도덕, 과학, 종교 및 자유, 권리, 책임 등의 각 분야의 문화문제를 들추어갈 것이다. 이 현대 비그리스도교도와의 대화는 그리스도교도 자신들의 일치를 도울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교도들은 한 목자 그리스도의 한 무리가 되어 있지 않으면서 이렇게 비(非)그리스도교도들에게 들어오라고 하겠는가? (예수회원 前 西江大學長)
■ 유 프레데릭 神父
相互 理解 協力으로 主의 뜻을 이룩해야
고 요안 23세는 공의회 소집 이유중 하나로 『창문을 열기 위함』이라고 설명했읍니다. 교회일치에 대한 운동은 (천주교회에서) 40년이나 50년전부터 활발해졌으며 현재는 과거보다 더 열심히 노력하고 있읍니다.
요안 교황의 공의회를 통한 일치운동은 여러교파의 지도자들을 「로마」로 방문하는 기회를 만들었읍니다. 1960년 6월 4일에 교황께서는 베아 추기경을 수석으로 그리스찬 일치를 위한 위원회를 조직케 하였읍니다. 이 위원회의 목적은 다른 그리스찬들과의 의견교환을 위한 것입니다.
천주교회는 (한편) 「뉴데리」 (등서) 세계기독교연합총회에 「옵서버」를 파견하기로 했읍니다.
전기한 공의회에는 우리나라 주교님도 참석했읍니다.
두 교황님의 초청을 받은 여러 형제 「옵서버」들은 가장 비밀을 요하는 토의까지 참석할 수 있게 해서 (모든 문제를 서로) 의논할 수 있는 길을 열었읍니다.
요안 23세는 첫 회기 개회연설서 『나와 여러분의 협력자들도 다 느끼는 바가 있으시니 만찬회에서 예수님의 기도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성취할 시간이 더 가까이 되도록 나의 마음은 일하고 참기를 간절히 고려하는 것을 여러분에게 알리기를 원한다.』고 했읍니다.
요왕복음 17장 20절과 에페소서 4장 3절의 「통일성」인 그리스도께서 가르친 것을 이행함이 교회의 의무이며 책임으로 알고 있읍니다.
일치를 이해하는 뜻은 각기 다를 수가 있읍니다. 우리 교회는 『신덕의 통일과 의덕의 통일과 경배의 통일과 권리의 통일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치가 쉽게 성립될 수 없음은 굳어진 나누어지는 이유가 오래동안 여러가지 그르침과 오해로 인하여 자라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할 일은 현재의 위치를 반성하며 성신의 인도를 주의깊게 잘 받으면서 권위있는 분들의 지도를 받고 따라가야 하겠읍니다. (청주 서운동주임, 메리놀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