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는 예수께서 「나임」 읍내에 사는 한 과부의 외아들을 기적으로 살리신 사적이 기록되어 있읍니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오고 또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왔으니 모든 이가 범죄한 고로 만민 우에 죽음이 미쳤도다』(로마 5.12)라고 성 바오로 종도께서 말씀하셨읍니다.
우리는 누구나 한 번은 죽습니다. 이 현세에 생을 타고난 인간으로서 이 죽음을 당하지 않을 자는 한 사람도 없읍니다. 남녀노소 부귀빈천의 구별 없이 죽음 앞에는 평등합니다. 영웅호걸도 백만장자나 절세미인도 죽음 앞에는 굴복하고 맙니다.
죽음은 우리에게서 모든 것을 앗아갑니다. 높은 지위와 명성 재물과 사랑 부모형제 친척 친우들 우리의 육체마저 고스란히 남겨놓고 그야말로 공수래 공수거 즉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이 세상을 하직해야 합니다.
또한 이렇게 무섭고 불행한 죽음의 검은 그림자가 언제 우리를 엄습할런지 전연 알지 못하고 추측조차 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매일 보고듣는 바와 같이 죽음은 인생의 황혼을 맞이한 노인에게만 오는 것이 아니라 갓난아기도 혈기왕성한 청춘남녀에게도 사정 없이 닥쳐오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 나타난 「나임」의 과부 외아들도 20세 미만의 소년이었읍니다. 예수께서도 『죽음은 마치 도적같이 찾아온다.』(누가 11.39)고 하셨읍니다. 과연 이 무서운 죽음은 도적과 같이 우리에게 닥쳐옵니다. 다시 말하면 갑자기 우리가 생각지도 않는 사이에 도적이 드는 것과 같이 그러나 늘 도적 맞을까 경계는 하고 있으면서 정말 도적이 들어올 때는 조금도 알지 못하는 것과 같이 우리도 반드시 한 번은 죽으리라는 사실은 의심치 않지만 언제 죽음이 닥쳐올지 모르므로 언제나 거룩하게 살도록 노력함으로써 불행한 죽음. 준비 없는 영원한 여행을 떠나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는 것입니다.
이제 인간은 죽음으로써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일까요? 죽은 후에 저 세상이라는 것이 과연 존재하는 것이까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막연하게나마 내세(來世)의 존재를 인정해 왔읍니다. 육체는 비록 땅속에 묻혀 썩어가지만 인간의 영혼은 내세에서 새로운 생명을 계속한다고 믿어왔읍니다. 그래서 위령제(慰靈祭)니 진혼제(鎭魂祭)를 거행해서 죽은 이들의 혼령을 위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관습은 내세나 인간 영혼의 생명에 대한 어떤 확고부동한 신앙에서 오는 것이 아니고 다만 일종의 막연한 전통과 희망의 소산이라고 볼 수밖에 없읍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신앙진리를 알고 있읍니다. 즉 죽음은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는 문이 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부활이요 또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었을지라도 살아날 것이요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이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요왕 11.23-26)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읍니다.
예수께서는 이 말씀을 증명해주시기 위해 죽었던 자를 부활시키셨고 자신도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가 삼일만에 부활하신 것입니다.
바오로 종도는 「코린토」 전서 15장에서 그리스도의 부활과 우리의 장래 부활을 힘있게 강조하고 있읍니다. 『그리스도 죽은 자들의 첫 열매로 죽은 자 가운데로조차 부활하셨나니 대저 죽음은 사람으로 말미암아 왔은즉 죽은 자의 부활도 또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왔나니라. 대저 모든 사람이 「아담」 안에 죽는 것과 같이 모든 사람이 또한 그리스도 안에 살리라』(코린토 전서 15.20-23)고 하셨읍니다.
영생과 부활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신앙은 우리에게 끝없는 희망과 위로를 주고 착한 죽음을 준비시켜 줍니다.
이와 반대로 부활과 내세의 생명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 죽음이란 끝없는 공포와 절망의 대상이 아닐 수 없읍니다. 죽음은 확실히 인간에게 있어 가장 큰 불행이요, 비극임에는 틀림 없읍니다.
그러나 죽음이 영생으로 통하는 길이요 영원한 부활의 전주곡이라고 한다면 전화위복(轉禍爲福)이 되는 것입니다. 이 진리야말로 인생에게 참된 삶의 가치와, 의의(意義)를 명시해주고 인간의 최후 목표를 가르쳐주어 이것을 얻기 위해 전력을 기울이게 해줄 것입니다.
친애하는 신자 여러분! 무엇보다도 착한 죽음을 맞이하고 죽을 때 혹독한 가책과 절망, 공포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항상 죽음을 예비하고 부지런히 선행을 쌓도록 노력합시다. 선행만이 우리에게 끝없는 위로와 기쁨과 천국의 복락을 얻게해 줄 것입니다. 『육신이 다시 삶을 믿으며 영원히 삶을 믿나이다.』 아멘.
尹炳熙 神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