平信徒(평신도) 눈에 비친 美國(미국) 겉 핥기錄(록) - 美國(미국) 가톨릭 안팎 (6) 고독을 이기는 무기 ①
동행 떨어진 객창의 향수
빨래줄 너머 가족 생각이
이국땅서도 본 김대건 신부
행복한 미국인 우울하기도
뉴욕거리에도 감상이
발행일1964-03-22 [제415호, 3면]
아침부터 비가 주룩주룩 나린다. 여창(旅窓)에 부딛치는 빗방울의 번지는 무늬를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본다.
동행도 떨어져 나가고 이제부터 고독한 「뉴욕」생활이 시작된다.
갑자기 주위가 호정하고 슬쓸하다. 하루에 8「달라」씩 치르면서 며칠 묵었던 「파리 호텔」의 사치를 버리고 「아파트」생활로 옮긴 것이다.
이제는 식당에서 비싼 식사를 하고 「테이불」 위에 「팊」을 턱턱 내노아야만 했던 관광객 기분의 생활도 정리한 셈이다.
가난한 여행자에겐 「택시」운전수나 식당의 「웨이트레스」에게 하루동안에 지불되는 「팊」도 고통에 가까울 정도로 많게만 여겨졌던 것이다.
나는 한동안을 얼빠진 사람 모양으로 「뉴욕」의 가을비를 12층의 고층 「아파트」에서 감상(感傷)해보고 있었다.
갑자기 여행중에 밀린 발래감이 눈에 띈다. 가족들의 얼굴이 유리창 빗방울 속에 어른거린다.
나는 가만히 고독을 씹으면서도 낯선 이국땅에서 어떻게 자활해 나갈가의 「프로그람」을 그려봤다.
「유엔 총회」에 나가 얼떨떨한 취재를 하고나서 한국에 전보까지 치고 나니 피곤이 온몸에 휘감긴다.
「보스톤」에서 「하바드」대학에 교환교수로 와 계시던 이숭녕(李崇寧) 박사를 만나 봤을 때의 인상이 생각난다.
『아이고 이게 웬일요? 언제 왔소 정말 고적햇었는데 「커피」나 들면서 고국 얘기라도 합시다』
이박사는 무척 반가와했다. 이렇게도 외곱게 지내시는 이박사였지만 책상머리에는 갓을 쓴 김대건 신부의 상본을 모셔두고 있었다.
고독할때는 의지할 대상이 필요하다.
「커피」를 손수 끓여야만 했던 환경 속에서도 이박사는 「김대건 신부」의 영광된 자랑을 되새기면서 의지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새로 이사해온 내 옆방에도 오병문씨(全南大學 교수)라는 교우가 살고 있었다. 책상 머리맡에는 목각의 십자가를 모셔놓고 「루르드의 성모」란 택을 꽂아놓고 있었다. 여창에 기대어 나는 차츰 잡상에 말려들어갔다.
미국은 「쟈즈」가 있고 기계문명의 「소음」이 있고 「고층건물」이 있고 「백인의 우월감」이 있고 화려한 「생활전선」이 형성되어 있는 곳으로만 생각되기 쉽다.
그러나 그렇게도 변화무쌍한 문명의 자랑을 지닌 미국시민들이 한결같이 유쾌하지 못하기커녕 물질문명이 수레바퀴 밑에 끼어 신음하는 표정도 많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