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나 끼리끼리 모여 祖國(조국) 찾는 僑胞(교포)들
現地報告 韓國人 指導神父 熱願하고
발행일1963-09-15 [제391호, 3면]
가톨릭시보 청주교구 주재기자 차(車成萬) 기자는 일본의 성 원선시오·아·바오로회를 시찰하러 일본을 여행 중이다. 지난 8월22일 일본 「도오교」에 도착하여 즉시 전기회를 시찰하는 한편 일본에 살고 있는 우리 교포들 중 특히 신자들의 활동과 생활을 취재하던 중 다음의 제1신을 보내왔다. (편집자 주)
【일본 東京서 車成萬 기자 발】 일본 사람이 되었고 일본 말을 하고 일본 음식을 먹고 살기는 하지만 한국인의 피를 타고 난 한국인은 「한국」이란 두 글자만 들으면 혈액순환이 빨라진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생활 전체가 일본인화(化)한 이곳 교포들은 우선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서 한국인 신부의 지도를 받으며 영신생활을 하기를 소원하기도 한다.
이곳 「요고하마」의 히노(日野) 신부의 이야기로 「도오쿄」(東京) 「세기구지」(_口) 본당에 한국인 1백30명 신자를 찾았다.
가네모도(金本)라는 교포와의 전화에서 9월5일 저녁 7시30분 레지오 회합이 있음을 알았다.
한국인들만으로 조직된 이 레지오는 남녀혼합 「쁘레시디움」으로 매주 목요일에 회합을 갖는다.
조아나다시오씨의 집에서 개최된 이 레지오는 1958년 5월11일 한국인 바오로.석(石鍾寬) 신부에 의해 조직되어 오늘까지 본당일과 병자와 신자가정을 방문하여 이국에서 서로 위로와 격려로써 신앙생활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단장은 말파.박말년씨 서기 겸 회계는 아나다시오.조(趙又仙)씨가 맡고있는데 활동단원 13명에 보조단원은 11명이다.
회의는 개회경으로 시작, 한국어 경문을 또박또박 잘 염경했으나 활동보고에 들어가서는 일본말로 대화하는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유창한 일본말을 쓴다.
『한국 사람들끼리는 한국인 신자의 소재를 아니 연락이 되어 한달에 한 두번 회합을 갖고 한국인 지도신부의 영신지도를 가지면 정말 효과가 있을 것이다』고 히노신부가 본기자에게 들려주었다.
히노신부는 한편 한국정부에 납포되는 일인어부 중 대부분이 「나가사기」(長기) 출신의 신자들이니 부산의 최주교님이 부산수용소의 일본인을 위해 미사를 지내주고 고해성사도 주도록 조치하시면 좋겠다는 여론을 전해주었다. 「도오교」 대교구 주교좌에서는 30년 전 대구교구 출신 고 요셉.김(金成俊)씨가 조직한 한국인 신자 신우가 지금도 활발히 움직여 교리연구와 자녀 종교교육을 하고 있다. 현 처장인 바오로.한경만씨가 주도하여 한국인 아동들을 위한 「아동관」(兒童館)을 신설할 계획을 세웠으나 지금 형편으론 교포힘에는 너무나 벅찬 것이다.
130명 교포신자 중 청소년은 거의 냉담상태에 있던 것을 60년 8월에 서품된 와다나배(渡_) 신부가 많이 애를 써서 이젠 거의 성당엘 나온다 한다. 그런데 와다나배 신부는 금년 여름 한국인 아동들을 위안하려 해수욕을 갔다가 교포아동이 물에 빠진 것을 구출하고 자기는 익사하고 말았다.
한국인 신부를 모시기를 소원하는 제일교포들은 네 명의 신학생(베두루 鄭永吉, 바드리시오 崔榮吉, 金基浩, 李永俊)을 양성하면서 어떻게든지 본국 교회와 친밀한 관계를 갖도록 희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