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國籍(국적) 없는 小女(소녀) (42) 장미꽃 ⑩
발행일1964-03-22 [제415호, 4면]
봄은 하루 아침에 오는 것 같다. 다름 일요일 아침 한가한 마음으로 마당에 나와보니 햇빛이 갑자기 금빛에 가득차 있었다. 하늘의 푸름도 포근하고 맑았다.
그럴 것이 학기말 시험도 끝나고 이제는 삼학년에 진급할 날도 그리 멀지 않았다. 사흘만 지나면 휴가로 들어선다. 나는 가슴을 버티고 두 팔을 뻗어 봄볕을 안은 시늉을 했다.
『그게 무슨 꼴이냐?』
아버지가 마당을 쓸다가 소리친다.
『봄을 안아 보는거야요?』
『미친년!』
그 욕설에 기를 폈던 내 마음이 자라목 같이 쑥 들어가고 말았다.
『(괘니, 솔직히 말했다!)』
이렇게 후회하면서, 아버지와 나 사이에는 점점 두터운 장벽이 가로 막고, 가리는 것을 깨달았다.
『어디 가니?』
묵묵히 아버지와 겸상으로 조반을 먹고 집을 나설 때, 뒤에서 잡아 끌듯이 말한다.
『「뮤직홀」에 가지마라 이년아!』
아버지는 문턱에 까지 쫓아나오며 소리친다.
『안가요.』
더이상 문답하기가 싫어서 내빼듯이 뒷길로 향했다. 교회로 가려면 한길로 나서는 것이 아까운데 아버지의 눈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고갯길을 올라서 다시 큰길로 내려 서면서 나는 문듯 내 자신의 성장을 몸 전체에서 느꼈다.
몇개월 전만 하더라도 아버지의 말이 덜미를 잡아 쥐는 큰 갈퀴와 같았는데 지금은 내 몸을 잡기에는 너무도 얄삭한 갈퀴로 보였다.
나는 활달한 기분으로 교회로 걸었다. 한동안 안간 사이에, 신자들이 늘었는지 교회 안은 전보다 더 복잡했다. 풋내기 신자에게 시선이 쏠릴가바 걱정이 되었는데 모두 미사 제단을 향하여 앉았을 뿐 한눈을 파는 사람은 없었다. 가만히 보니 두루 두루 한눈질을 하고 있는건 나뿐이었다.
진호는 그의 지정석이나 된듯이 늘 앉던 그자리에 앉아있었다.
종소리가 나고, 모든 사람들이 무릎을 꿇고 고개를 깊이 숙이며 기구하는 장면이 왔을때 나도 무엇인가 기구를 해야만 했다.
(딕슨의 어머니가 내 사진을 보고 좋다는 인상을 갖도록 해주세요…)
나도 모르게 이런 기구가 튀어나왔다. 진호에게 미안한 샘각이 든다. 교회에 나온 것도 김진호의 말을 따른 것이며 그에 대한 감정이 흐뭇해 있었는데, 막상 기구할 때는 딕슨이 내 머리를 차지했다.
(김진호씨는 오빠와 같은 사람이야!)
나는 그의 위치를 이렇게 정했다.
진호를 교회 마당에서 만났을 때,
『아버지가 못가게 안하셔?』
하고 그가 묻는다.
『거짓말 하고 나왔어요.』
『앞으로는 빠지지 말 것』
『아버지한테 거짓말 하는거 주님이 뭐라고 하실까?』
나는 웃으며 물었다.
거짓말이란 담벽락이 가로놓인 아버지와 나 사이를 생각하면서….
『선을 위한 것은 거짓말이 아니지요. 오히려 적극적인 선(善)이지요』
『……』
함께 교회를 나서면서 나는 한참 진호의 말을 생각했다. 지금까지 무수히 거짓말을 하였던 나는 어떤 위안을 얻었다. 내가 한 거짓말들은 나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엿으니 선(善)이 아닐까? 어딘지 꺼림칙하였으나 그렇게 해석하고 싶었다.
『…나는…』
진호는 그의 버릇인 시선을 땅에 주고 차분히 입을 열었다.
『…주님께 미스양을 지켜 달라고 기구했어. 딕슨이란 사람에게 희롱당하는 일이 없기를 빌었어』
나는 기분이 이상했다.
『…주님은 골치가 아프시겠어?』
나는 혼자말 비슷이 말했다.
『그게 무슨 뜻이지?』
『한가지 일에 대해서 이 사람은 서쪽으로 가게 해달라고 빌고 저 사람은 동쪽으로 가게 해 달라고 비니 말이야요! 주님은 누구의 청을 들어주실까?』
『그건 간단해, 주님은 늘 옳은 방향을 들어 주시지』
『김진호씨는 자기의 기구가 옳다고 생각하세요?』
『물론, 주님은 들어 주실거야. 나는 진심껏 기구햇으니, 이미 미스양은 주님의 품에 보호를 받고 있는거야…』
『주님이 그러겠다고 승락하셨어요?』
나는 웃으며 물었다.
『암!』
진호는 웃지 않고 오히려 엄숙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한다.
『주님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암!』
진호는 정색하며 대답한다.
『목소리가 굵어요? 가늘어요?』
나는 빈정거리며 물었다.
『조용한 음성이었어요!』
『주님이 눈에 보여요?』
『몰론…』
지호는 조금도 망서리지를 않았다.
『나는 풋내기 신자기 때문에 주님의 해답이 안들리나 보죠?』
『주님은 차별을 안하셔, 누구든지, 진실한 청은 다 들어주세요.』
『그럼 왜 진호씨는 부자가 되어 달라고 빌지 않아요?』
『…그것도 빈 일이 있었지.』
진호는 한참 후에 입을 열었다.
『근데 왜 부자가 못되었어요?』
『그건 진실치 못한 청이였으니까』
『주님은 사람들이 부자로 사는건 원하지 않나요?』
『너희들 광속에 재물을 쌓지말라고 하였거든!』
『주님은 인색하군요?』
『재물은 오히려 사람을 나쁜 곳으로 타락시키기 쉬운거니깐!』
『굶는 사람을 행복하다고 할 수 있어요?』
『거지도 하루 세끼는 먹고 있잖아!』
『하루 세끼 못먹는 사람도 있거든요?』
진호는 가만히 있었다.
『진호씨도 꼬박 꼬박 먹고 싶은걸 먹고 지내세요…』
『…………』
진호는 땅에 내려다 보며 생가는 얼굴이었다.
『…나는 점심을 안먹는 날이 많아!』
진호는 자기 스스로에게 이르듯이 입속에서 대답했다.
『주님이 전지 전능하시다면 왜 인심좋게 돈과 행복을 뿌리시지 않을까?』
나는 이렇게 말하며 진호의 답을 기다렷다.
『…만약 세상 사람의 청을 다 들어 준다면 임금님 투성이고 대통령 투성이가 될게 아니겠어…』
진호는 약간 입가에 웃음을 담고 말했다.
『주님께서 확실히 들어 주시는 것은 한가지 있어요. 내 자신을 위하지 않고 남을 위해서 기구한 것…』
나는 진호의 그말이 고맙기도 하였다.
그러나 나는 지금 누구를 위해서 기구할 수가 없었다. 다만 나를 위해서, …내가 가야할 길을 찾기에 바쁘다나 혼자는 어찌할 힘이 없다. 진호를 따르자니, 그 자신이 세끼를 채우지 못하는 궁한 몸인데, 어찌 힘이 되엤는가? 딕슨? 그는 분명히 내 갈길을 표시해 주는 힘이 있었다.
그날밤 식구들이 잠든 틈에 나는 딕슨에게 며칠후에 「뮤직홀」에서 만나자는 편지를 썻다. 나는 그의 고향에서 올 편지가 나에게 행복한 것이기를 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