主敎會議(주교회의)에 期待(기대) - 典禮(전례)의 敎育(교육)문제
敎會曆(교회력)에 對(대)한 認識(인식)
발행일1964-04-05 [제417호, 1면]
(承前) 신자 전체가 의식적으로 또한 능동적으로 교회의 전례에 참여해야 된다는 제2차 바티깐 공의회의 요구를 실천하려면 무엇보다도 신자들의 교회주년에 대한 인식을 강화하며 심각화 하여 모든 이로 하여금 교회 주년의 과정과 이 과정의 의미와 내용을 알고 내적으로 체험케 하여야 할 것입니다.
교회주년은 사회주년(年度)처럼 365일을 무의미하게 차례차례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오직 교회주년의 과정을 통하여 해마다 그리스도의 구속사업이 기념되고 갱신됨으로써 그리스도의 신비체의 지체들인 우리들의 완덕과 성화는 성취되는 것입니다. 이는 나무가 해마다 새로운 연륜을 만들면서 자라남 같이 성세성사로써 그리스도의 신비체의 지체가 된 우리는 교회주년 과정의 신비들을 해마다 새로이 의식적으로 또는 능동적으로 체험함으로써 더욱더욱 그리스도의 완덕과 성화가 우리 안에서 형성되도록 힘써야 됩니다. 그리스도의 완덕과 성화가 우리 안에서 형성됨은 물론 제일 첫째로 상존성총과 조력성총에 의지하여야 되겠지만 그외에 주로 우리 협력에 달린 것입니다.
더 자세히 말한다면 개인적 신심이 두말할 것 없이 필요하되 우리가 교회주년의 과정과 의미를 인식하고 이 과정과 의미를 따라 우리 신심생활을 전례적으로 정돈할 수록 그 열매를 더욱 의심없이 얻을 수 있읍니다.
위에서 이미 말씀드린 바와 같이 교회주년의 구성은 주 그리스도의 지상 생활의 구속신비로써 규정되어 있읍니다. 즉 교회주년 과정에 있어서 구제주의 탄생과 지상생활은 그 역사적 순서를 다라 한가지 영화필름 처럼 우리 신목 앞에 경과되나 이 역사적 사실들은 주년 전례를 의지하여 우리에게 현실화 되어 우리가 주년에 여러 시기와 첨례를 따라 그 고유한 구속 은혜를 받아 입게됩니다.
다시 말하자면 과거에 인성을 취하여 탄생하신 이 그리스도 성부의 뜻을 우리들에게 가리켜 수난을 받고 십자가상에서 우리를 위하여 생명을 바치신 이 그리스도 부활, 승천하시며 성부의 뜻을 우리들에게 가리켜 수난을 받고 십자가상에서 우리를 위하여 생명을 바치신 이 그리스도 부활, 승천하시며 성부의 영광으로 들어가신, 이 그리스도께서 주년의 전례와 특히 성체를 이루는 미사로서 그의 천주성과 인성을 합하여 위격적(位格的)과 본질적으로 우리 사이에 현실화되고 또한 교회 신비체의 머리로써 모든 지체들에게 끊임없는 작용을 끼치며 포도나무로써 그 가지들에게 끊임이 없는 효능을 주시는 동시에 그 생활한 결합을 의지하여 자신의 생명을 그들에게 분배하십니다.
즉 자신의 지상생활에 모든 행위로 교회를 위하여 얻어두신 구속 은혜를 그 지체들 안에서 효능을 낳게 하십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지체인 우리는 교회 주년의 정신과 의미를 따라 살수록 우리 머리시고 중계자이신 그리스도와 더욱 더욱 친밀한 결합과 생활한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고, 천주의 영광을 더욱 나타내며 또한 신적이고 초자연적 성총이 더욱 우리 위에 흘러내리게 합니다.
교회주년이 이처럼 그리스도의 구속사업을 기념하며 현실화하는 만큼 사회주년과 달리 양력 1월 1일로 시작되지 않고 성탄시기와 부활시기로 나누어 있고 성탄 첨례를 준비시키는 장림때로 시작됩니다.
장림때란 4주간은 옛날 이스라엘 민족이 구세주를 기다리던 것처럼 우리가 교회의 전례를 따라 구세주의 탄생을 기대하고 있는 때입니다. 즉 성탄시기의 정점인 성탄 첨례날은 다만 역사적 구세주께서 「베트레햄」에서 탄생하신 기념날일 뿐만 아니라 안젤로 시레시오란 신비가는… 『그리스도께서 천만번 「베드레햄」에서 나셨을지라도 네 마음에 나지 않으면 너는 영원히 버림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고 말씀한 바와 같이 성탄날에 구새주가 우리 마음에서 탄생하시고, 성탄 첨례 후 시기를 통하여 우리 마음에서 자라나고 우리 안에서 형상을 취하셔야만 우리가 이 성탄시기를 교회주년의 정신을 따라 지낸다고 할 수 있읍니다.
성탄시기는 칠순주일 전날로 끝나고 칠순주일부터 부활시기가 시작됩니다. 성탄 첨례전 4주간의 장림 때로서 구세주 우리마음에서 탄생하심을 준비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칠순과 특히 사순기한으로(봉재때) 그리스도의 수난이 우리 수난이 되어야 할 것이며 성바오로의 말씀과 같이 그리스도의 수난하심의 결합된 바를 저의 몸이 선교회를 위하여 우리 몸으로써 보충(골로래서 9,24)하여야만 우리가 부활날에 그리스도와 함께 또한 그리스도 안에 죄의 죽음에서 일어나 새 생명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사순절이 전례적 미사본문(초입경 · 축문 · 서간경 · 복음 등등)과 성주간의 가장 깊은 감상을 줄만한 전례의 의미는 바로 거기에 있읍니다.
부활날에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죄의 죽으에서 일어나야만 부활첨례와 부활 후 시기에 모든 미사중에서 울리는 전례쩍 환호를 이해할 수 있고 마음으로 동감할 수 있읍니다. 부활날에 그리스도와 함께 죄의 죽음에서 일어난 후에라야 성신께서 강림하신 날에 우리에게도 종도들에게 처럼 그리스도를 모범하는 생활을 위한 은혜를 충만히 내려줄 수 있으며 또한 성신의 은혜를 받은 우리가 성신강림후 시기의 전례를 통하여 「천국의 자라남」을 우리 안에서 체험하는 동시에 이 은혜를 의지하여 우리주위 안에서도 그리스도의 나라를 건설할 힘이 생깁니다.
왜냐하면 특히 성신강림후 전례로 그리스도의 천국의 확장과 번영이 강조되는 까닭입니다. 이 확장과 번영을 우리가 해마다 교회주년 말엽에 맞이하게 되는 저 성첨례 날에 우리 신목으로 보게됩니다.
대저 우리보다 앞서 교회주년의 전례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따라-가면서 사후 목표에 달하신 그 무수한 성인 성녀들은 그리스도의 구속사업의 고귀한 열매이며 그리스도의 나라의 정화입니다. 그리고 주년의 마지막 주일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구름을 타고 위대한 권능과 영광으로 재림하시겠다는 미사복음의 말씀을 들을 때에는 세상 마칠 때에 비로소 그리스도께서 그 구속사업으로 건설하신 나라가 완성되고 우리의 구원도 최후 완성에 도달하게 된다는 확신을 해마다 새로이 전례를 통하여 얻게됩니다.
모든 신자들이 우선 교회주년의 정신을 깊이 인식하고 신심생활을 이 정신을 따라 정돈하여야만 신자 전체가 의식적으로 또한 능동적으로 전례에 참례하라는 제2차 바티깐 공의회 교부들의 요구는 한국에서도 성취될 수 있을 줄을 믿으며 또한 이 정신대로 살라야만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모든 지체들의 공동감(共同感)이 강화될 뿐 아니라 각자의 구령문제에 있어서도 이 전례적 정신이 제일 안전한 길과 방법임을 나는 확신하는 바입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