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매주일 이 자리에서 여러분들 앞에서 설 때에 가끔 생각하게 되는 한가지 의문이 있읍니다.
『이 사람들이 오늘 이 자리에 와 있는 이유는 무엇이냐?』하는 것입니다.
물론 맨 먼저 생각나는 대답이란 것은 여러분은 미사에 참레하기 위해서 이 자리에 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은 마음을 가다듬고 우리가 매주일 이와 같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되는 참된 이유, 즉 진정한 동기는 과연 무엇인지를 좀 더 심각하게 생각해 보기로 합시다.
『만일 주일날 미사참례를 안하는 것은 대죄가 된다는 조건하에 나에게 본분이 없었다면, 내가 오늘 이 곳에 와서 미사에 참례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 중에는 추운 겨울 어느 주일날 아침에 미사 참례를 궐해도 죄가 안되기를 바라는 사람이 많지 않읍니까? 그리고 오늘 이 자리에도 미사가 어서 끝나서 성당을 떠나게 되기를 초초하게 기다리는 사람은 없읍니까? 아마도 사제가 제대를 떠나 나갈 때까지나 혹은 미사 후송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지도 않고 가버리고자 하는 사람은 많지 않읍니까?
그렇듯 많은 그리스도 신자들이 이런 태도를 가지게 되는 이유는 무엇이겠읍니까? 그 이유는 그들이 스스로 원해서 미사참례를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또 자기들이 미사 중에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불행히도 신자들 중에는 미사동안에 싫증을 내고 있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들은 마치 마을가는 어머니를 따라가 있는 어린 아이들과 같다고 하겠읍니다. 그들은 마치 어머니가 친구하고 얘기하는 동안 조용하라고 하면 그 아이들이 취하는 태도와도 같이 하고 있읍니다.
우리는 각자가 솔직히 알할 수 있읍니까? 우리는 때때로 정말 그렇게 느낀다고 좀 실증을 내고 알아듣지도 못하나고 말입니다 좀 안타까와 하며 어서 미사가 끝나서 밖에 나가 재미나는 것을 하고 싶어한다고 말입니다.
여러분들은 모두 초기의 그리스도교 신자들에 대한 감격적인 얘기들을 들은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로마」의 군인들에게 잡힐까봐 부서워서 날이 밝기 전 이른 아침에 미사에 참례하기 위해 몰래 지하무덤 속 은밀한 곳에 모이곤 했읍니다.
그런 곳에서 그들은 붙잡혀 참혹한 형벌을 당할 위험이 큼에도 불구하고 사제의 손에서 영성체를 했던 것입니다.
이 사람들이 그와 같이 한데 모이곤 했던 이유는 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가 아니었읍니다. 그러면 그들이 모인 이유는 무엇이었겠읍니까? 오늘날에도 우리가 미사참례할 때 우리의 태도가 어떠해야 할 것인지를 그들에게서 배울 수는 없을까요? 그리고 또 우리가 그러한 태도를 지닐 수 있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는지를 그들에게서 배울 수는 없을까요?
우리가 미사에 참례하는 이유는 반드시 우리 각자가 몸소 느끼고 진심으로부터 믿는 어떤 것에 있어야 합니다. 초기의 그리스도 신자들을 이끌어 주던 이유는 무엇이었겠읍니까? 또 오늘날에도 미사에 참례하라고 법률로 명한 주일과 파공첨례날 뿐만 아니라, 생활 형편이 허락할 때에는 언제나 큰 희생을 해가며 미사에 참례하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 신자들을 움직여 주는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이겠읍니까? 이런 이유는 내가 여러분들에게 말로써 단순히 일러줄 것이 못됩니다.
우리가 이런 사람들의 표양을 본받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 각자가 미사의 가치와 필요성에 대해 절실히 느끼는 것이 필요합니다. 미사를 통하여 얻어지는 은혜가 우리에게 얼마나 필요한가를 절실히 느끼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우선, 이런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미사란 것이 그저 하나의 평범한 행동이 아니고, 또 하루나 또는 한주일동안 살고 남은 여지로서 그들의 생활과는 전연 관계가 없는 행동이 아니란 것부터 말해둡시다.
미사란 것은 제대에 있는 신부의 행동이나 자기네들이 하는 기도에 다소나마 주의를 집중하고 보내어진 한시간이나 혹은 반시간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이 인식하고 있는 미사는 온 성교회와 성교회의 모든 지체들의 이름으로 그 제사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정신과 마음이 일합하여 그리스도의 사제를 통해 그리스도에 의해서 천주께 바쳐지는 찬미의 행위로서 모든 흠숭 행위의 중심이 되는 행위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진리가 지니고 있는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미사에 대한 이러한 개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다른 여러가지 진리들에 대해서 견고한 기반을 천천히 만들어 나아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영세하기 전에 요리 문답을 배울 때라든지 혹은 그후에 아무 때든지 우리의 신앙에 대해 생각할 때 우리가 믿는 모든 진리와 우리가 지키고자 하는 모든 계명이 대개가 마치 나와는 관계가 없는 것처럼 여기는 때가 너무 많습니다. 마치 신문에서 기사들을 읽고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생각하고 나 자신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는 것처럼 지나쳐 버리는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잘못된 생각은 있을 수 없읍니다. 우리 교회의 진리를 따로 떨어져 있는 조그마한 많은 보석같은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그 진리들은 「요리문답」이라고 하는 주머니에 모아서 담아 두고, 어떤 것은 지금 꺼내서 보면서 감탄하고 또 어떤 것은 다른 때에 꺼내서 보며 감탄할 것이 아닙니다. 좀 자세히 말하자면 우리의 신앙이란 것은 완전하고 값을 따질 수 없는 한 덩어리의 보석같은 것으로서 무수히 많은 국면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 해도 괜찮을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이 국면들을 하나씩 별도로 보지만, 그러나 그 하나하나가 그 보석 전체의 황활한 아름다움의 미소한 부분적 반영에 불과하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지녀야 할 기초적 태도로서, 우리가 천주께 대한 우리의 관계와 그 속에서 미사가 하는 역할의 전면도를 더욱 가까이 가서 보게될 때에 여러분이 애써 지니도록 여러분에게 부탁 드리고 싶은 태도입니다.
그러나 천주님의 은혜로써 생기는 결실은 미사의 무한한 가치에 대한 인식의 증가일 것이며 따라서 매일 제대상에서 바쳐지는 거룩한 제사와 우리 자신을 결합해야 함이 우리 자신을 위해 절대로 필요하다는 신념, 바로 그것일 것입니다.
유 프레데릭 神父(청주교구 서운동본당 주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