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國籍(국적) 없는 小女(소녀) (44) 편지 ②
발행일1964-04-05 [제417호, 4면]
한마디의 단어의 뜻도 놓치지 않으려고 주의를 다하여 읽었다.
(…나는 사랑하는 내 아들이 낯선 객지에서 결혼할 상대를 고른 다는 것은 그다지 기쁜 일이라고는 생각지 않으나 너의 의사를 존중할 생각은 있다. 사진을 보니, 그 소녀의 인상은 아름답고 좋았다. 그러나 제대하거던 일단 아메리카로 돌아와야 한다. 코리아에서 근무 연한을 연기하는 일은 없도록 하기 바란다.…)
나는 천천히 또 한번 편지를 읽고 나서 딕슨을 쳐다 보았다. 딕슨은 미소를 띠우고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미국에서는 부모가 자식의 결혼에 대해서 간섭하지 않는줄로 알았는데?』
나는 그 편지에서 조금 맘에 걸린 점을 물었다.
『대체로 본인의 자유의사가 결정권이 있다!』
『그러나 너의 어머니의 이 편지는 객지에서 결혼상대를 정하는 것을 찬성안하고 있지 않느냐?』
『그건 모든 어머니들이 가질 수 있는 희망이지 간섭은 아니다.』
『만약 너의 어머니가 반대한다면?』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딕슨은 조금 생각하다가 대답한다.
『만약?』
나는 강조했다.
『나는 내 생각대로 할 것이다.』
딕슨은 굳은 의지를 미간에 나타내며 대답했다.
『우리 어머니는 우리지방 신문사의 중역이다. 상당히 까다로운 비평을 하는 사람인데 너의 인상을 예쁘고 좋다고 하였다. 나는 나의 희망과 어머니의 만족이 합치할 것을 믿고 지금 매우 기쁘다!』
딕슨의 얼굴은 다시 밝은 미소에 가득찬다.
『제대하면 일단 아메리카로 도로 가느냐?』
『그 문제를 나는 연구중에 있다. 가능하다면 이대로 코리아에서 계속 근무를 하고 싶다. 하지만 우리 졸병은 규칙상 근무연한이 차면 일단 고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나 걱정은 없다. 돌아가는 즉시로 재근무(再勤務) 신청을 낼 생각이다.』
『그러면 곧 다시 올아올 수 있느냐?』
『수속이 번걸워서 아마 몇달이란 시일이 걸릴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동안에 음악은 전혀 우리의 귀에 들어오지 않앗다. 나는 딕슨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나의 운명이 결부된 깊은 관심에 쏠리었다. 뭇 시선이 쏠리는 것도 이제는 태연했다.
이번에는 딕슨이 나의 가정 사정을 묻기 시작했다.
『너의 아버지는 너의 친 아버지냐?』
『…친아버지같이 보이지 않느냐?』
나는 웃으며 되물엇다.
『어딘지 닮은데가 있다면 있어 보이지만 잘 보면 너는 순전히 너의 아버지를 떠난 존재 같다!』
『그는 나의 틀림없는 아버지다!』
나는 내가 고아라는 것을 알리고 싶지 않아 이렇게 대답했다.
『너의 아버지는 우리의 사랑을 반대하지 않겠느냐?』
딕슨의 얼굴은 구름이 낀다.
『나도 너와 같다. 나의 자유의사를 아무도 걲지 못할 것이다!』
『너의 그 생각은 옳다. 나는 너를 지금보다 훨씬 행복되게 할 수 있다. 우리집에는 자가용이 두대가 있고 웬만한 코리아의 부자보다 월등 잘산다.』
『자가용이 두대나?』
나는 놀라며 물었다.
딕슨은 뽑내는 얼굴이기에 나는 문득 반발심이 생겼다.
『자가용차의 수 만큼 사람은 행복하지 않을거야?』
『그건 그렇다. 그러나 자가용이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행복한 것은 사실이다.』
『나는 「드라이브」보다는 두다리로 걷는 것이 더 즐겁다』
속으로는 폭신한 「쿠숀」에 묻히어 미끈한 「아스팔트」 도로를 달리는 「드라이브」의 즐거움을 상상했으나 자랑하는 것이 베기싫어 이렇게 말했다.
『그럼 우리는 차를 집어치우고 걸을수도 있다. 걷기 알맞는 경치 좋은 「코스」도 있다…』
딕슨은 자기 고향의 경승지를 자랑했다.
시계를 보니 우리는 이미 두시간 이상이나 앉아 있었다. 전에는 그와 이야기 하는 시간이 하나의 모험 같이 느껴졌었는데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편안한 자리를 얻은 것 같았다.
나는 「레몬」같은 사랑의 미각을 짓씹었다.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하루였다.
그와 헤어진 것은 땅거미 질 저녁 무렵이다.
『그럼 너의 친구네 집에 편지를 하겠다…』
딕슨은 나를 우리집 근방까지 바라다 주고 발길을 돌리면서 말했다.
우리는 우리집까지의 한시간의 도정을 타지 않고 걸어왔다.
처음에 그는 택시를 부를까 하는 것을 나는 걷자고 했었다.
『너는 정말 걷기를 좋아하는 소녀구나?…』
딕슨은 이렇게 말하며 마정한 눈으로 나를 보았다.
『…다리가 아프지 않느냐?』
그가 이렇게 묻는걸 나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와 헤어진 뒤에는 답자기 다리가 아파서 아무데고 앉고 싶은 것을 겨우 참았다.
그래도 나는 행복했다. 외롭고 야윈 내 그림자가 밝은 벌판으로 도약하는 듯 했다.
집에 들어가니 도둑을 바라보는 형사 같은 아버지의 눈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년아 어딜 쏘다니다가 이제 돌아오냐?』
『강숙이가 저의 언니네 집에 놀러 가자고 해서 갔드랬어요!』
나는 나오는대로 가볍게 대답했다.
『이년 거짓말 마라. 아까 강숙이가 찾아왔던데 강숙이하고 어딜 갔다구?』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굵은 손아귀가 머리채를 쥐어잡는다.
『그 강숙이 말구, 또 있어요』
『이년 바른대로 말해라』
나는 한시간 쯤 아버지의 공격을 받았으니 일체 딕슨의 얘기는 안했다. 그의 사나운 주먹과 비신사적인 욕설로 오늘 마련된 나의 맘속 행복을 상케 하지는 못했다.
얻어 맞는 머리통이 아플수록 나는 내 마음의 따듯했던 그 행복된 빛갈을 꼭 가두고 지켰다.
며칠 후에 딕슨의 편지가 왔나 싶어 강숙이네 집으로 가는 길에 금방에 있는 교회에서 나오는 진호를 만났다.
『내일 하오 두시에 명동성당에서 가톨릭 학생회의 주최로 토론회가 있으니 같이 가지!』
『무얼 토론하는 거야?』
『인생문제, 종교, 철학, 여러가지 문제에 관해서 연구발표가 있고 고기에 대한 토론이야!』
『가볼까?』
『그럼, 한시까지 교회로 와요. 기대릴테니, 꼭…』
진호는 다짐했다.
아버지는 나에게 외출할 자유를 전혀 주지 않았지만 나는 아버지의 금지선을 뚫고 행동할 내 자유를 가지고 있었다.
토론회에 대한 흥미보다는 내 자유를 시험해보는데에 더 관심이 있어 진호와 약속을 해버렸다. 강숙이네 집에 가는 시간에도 아버지가 담배를 사오라는 시간을 나는 나대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