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夜話(문학야화) - 20世紀 西歐作家(서구작가)들 (1) 伊(이) 삐란델로의 「戰爭(전쟁)」
虛無(허무) 앞세우면서 人間憎惡(인간증오)치 않아
발행일1964-04-05 [제417호, 4면]
루이지 삐란델로(1867 · 1936)는 연극 · 소설 · 단편 및 시작으로 이태리서 문학적인 높은 지반을 닦았다. 1936년 「노벨」문학상 수상. 그의 대표인 연극 「한 작가를 찾는 6인의 성격」이나 「네가 너를 생각는다면 너는 옳다」 등은 그 불투명성을 공격받았지만 그의 창의(創意) 성격창조의 능력 및 비꼬인 인생관 등을 여지없이 드러냈다. 단편 「전쟁」은 그 자신 안에 엉킨 인간성과 현실 그리고 개인과 조국의 역사를 절실히 묘사한 것이다.
외아들을 입대시키고 고향으로 직행하는 시골열차를 갈아 탄 남편은 파랗게 질린 아내를 부축해준 좌중에 감사한다. 아내의 옷깃을 만져주면서 『좀 어떠오?』한다. 아내는 되레 옷깃을 치켜올린다. 그렇게 얼굴이라도 파묻자는 것이다. 『세상에!』하고 단 한핏줄을 전쟁터로 보낸 사연을 늘어놓았다. 자못 동정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던치가 『당신네 아들은 이제야 겨우 입대했지요. 천주께 감사나 드리시요. 난 전쟁 첫날 보냈다가 두차례나 부상한 것을 또 데려갔다오』고 한숨짓는다.
『난 어떠허겠오? 두 아들에 조카놈 셋을 일선에 보내고 있오』 멀찍암치 앉았던 치가 목소리를 굴린다.
『우린 외아들인걸요』고 동정을 구하듯 남편이 지꺼렸다. 여기서 대화는 이렇게 나간다. 외아들이건 다섯째, 여섯째이건 열손가락이 어느것이 덜아프겠느냐, 그래도 남아서 위로가 될테니 외아들 같을순 없다고 한다.
이때 『쓸데 없는 소리!』고 외치면서 그래도 빠져버린 두 앞니를 가리우듯 조심히 뒷말을 잇는 이가 나왔다.
『쓸데 없는 소리를! 자식을 그래 그덕이나 보자고 낳았단 말이요』
전쟁 첫날에 전방에 보냈다는 치가
『옳은 말씀! 아이들은 나라를 위해 낳지요』고 토론의 끝장을 놓듯이 말한다.
『뭐요오! 나라를 위해 낳는다구요. 우린 나라를 위해 아이들을 낳았겠구료. 그들은 탄생할 수 밖에 없었오. 이건 진리입니다. 허나 우린 그들에게 속했지만 그들은 우리에게 언제나 속할순 없지요. 20이 되면 여자 · 담배 · 사교란게 있고 물론 조국도 있지요. 부모가 거기 무슨 챙견을 한단 말이요. 우리 나이엔들 조국을 생각는 마음은 다름있겠오. 그들보다 더 장할지 모르지요. 그런데…』 하고는 소리를 지르며 『누가 제 아들 대신해서 전방으로 가겠오 나서보시요!』고 대든다. 좌중은 물을 끼어 얹은 것 같다. 침묵이 흐른다. 다들 수긍한 모양이다.
이 단편의 「크라이막스」는 아들을 전쟁터에 잃은 노신사가 우는지 웃는지 분간 할 수 없는 웅변을 털어놓는데 그것에 조금도 거짓이 없다. 처음서 끝까지 한명의 이름도 내놓지 않았지만 성격묘사엔 빈틈도 없는 것이 단편으로 성공한 이 작품의 특색이다.
삐란델로는 인생을 퍽 어둡게 그리고 몹시 비관한 작가이다. 인생은 무의미하고 진리는 허황하며 현실은 의문의 연속이어서
작품의 어느 성격은 작가라 할지라도 것잡을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 허나 그는 이 무의미한 인생을 살고 있는 남녀군상에 깊은 동정을 표시하고 있다. 이점이 그의 예술을 주목케 해준다. 그의 대표작 「죽음을 지킴」 중에서 『나 때문에 아니 너 때문에 고통을 받는 줄 아느냐 삶이란 무엇이냐는 그것이 고통이다』고 한 것은 그의 내면적인 외침이었다고 할까?
19세기의 사실주의(寫實主義)와는 달리 비록 예술의 기교까지 무시하는 한이 있더라도 작가의 내면적인 불안만은 가림없이 드러내자는 것이 20세기 작가들의 공통된 경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