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司祭(사제)의 窓門(창문)] 銀(은)과 金(금)은 내게 없거니와
발행일1964-04-05 [제417호, 4면]
내가 신부가 되어 영광된 성직자의 생활을 계속하고 있는지도 이미 30년…
하룻 길을 가도 중(僧)도 보고 속(俗)도 본다는 대고충을 말하라면 그것이 어찌 한두가지에 그치랴? 그러나 제한된 지면만이 아니라 그런 따위 어줍잖은 일들을 공개하기란 쉬운 일일수도 없고 또 공개하여 신통할 것도 못될 것 같다.
굳이 귀사의 점잖은 청탁을 거절하지 못해 꼭 한가지만 적어본다.
그것은 또 내가 신부가 된 그날부터 오늘까지도 계속되는 고충의 하나라는 것을 먼저 말씀해 두는 동시에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종도 3장 6절) 하신 종도행전의 이 말씀은 금력만이 아니라 권력까지도 포함된다는 것을 알아주기 바라고 이 고충의 이야기는 신자 대 신부만의 관계에만 한한다는 것이다.
산중에 살아야 하는 사슴이 마을로 내려가서 개에게 물리지 않고 살아가겠다는데에 비해가 있고 고충이 따르기 마련인 모양이다.
나의 신부로서의 천주님께 보내올린 첫말씀이 바로 『나 감히 천주의 제단안에로 들어가리라…』(ITROIBO AD ALTARE DEI)이었다. 그로부터 오늘까지 매일같이 첫 아침에 미사성체를 올릴 때마다 적어도 세번씩이나 거듭 애절히 부르짖은 이 말씀-.
그리고 보니 나는 12년 또는 13년 동안의 신학교생활을 끝내고 신부라는 간판을 메고 형설의 공을 자랑하면서 금의환향의 기분으로 사회로 나온 것이 아니라 되도록 깊숙히 천주님의 제단 안으로 들어가서 그 속에 나의 종교가로서의 세계를 오붓하게 차련호고 날마다 나 자신을 승화시키며 예수님의 구속의 제단에로 만인간을 불러모아야 하겠다는 것이 나의 성직자로서의 생활이 있어야 했다.
그런데 여기에 또 성직생활에 극히 의욕적이면서 사제들의 위신을 최고도로 향상시키는 성직자의 금언이 있다.
『사제는 제2의 그리스도다…』(SACERDOS ALTER CHRISTUS) - 『추수할 것은 과연 많으나 일군은 적다…』(마 9장 37장)- 『너희는 보천하에 가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말 16장 15절) 등등의 성경말씀! 성직 생활의 등불일 수 있는 말씀들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앞의 말씀은 성직생활의 젖줄과 같은 필요불가결의 말씀이기는 하되 봉쇄적인 수도생활에 더 적합하고 뒤의 말씀들은 사회라는 바다 속에 인간이란 물결을 해치면서 피땀의 노력을 강요하는 포교전선에로의 진군 나팔과 같은 말씀이다.
이 나팔 쇨에 쫓기어 그야말로 밀림에서만 놀던 꽃사슴이 포교전선에로 발길을 옮기면서 사회라는 이름의 마을로 내려와서 인간을 살펴보니 그들은 모두 주리고 헐벗고 병들어 신음하는 꼴들이 예수님의 자비심을 일으킨 『마치 목자 없는 양같이 곤핍하여 엎더져 있음이러라!』(마 9장 36절)하고도 남을 지경이었다.
이제는 신부가 됐으니 이름 그대로 제2의 그리스도의 비애가 성직의 「스타일」을 잡치는 것 같애 고충이 컸던 것이다.
이러한 비애와 고충 속에 성직이 연륜을 쌓으면서 스스로의 위로를 가질 수 있었던 것은 ALTER CHRISTUS의 정체는 2천년전에 「빨레스티나」를 종횡무진으로 영저의 만능을 발휘하시던 그분처럼 영적을 행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말씀의 전능으로』 성사를 집행하는데 있다는 것이었다. 진실로 성사를 집행하는 말씀의 전능을 행사함에는 2천년 전의 그분이나 그분의 사제인 오늘의 나나 조금도 다름없이 성사가 뜻하는 새 생명의 성총을 이루는 것은 신앙이 보장하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꼭 한가지 곤핍에서 신음하는 이 인생을 살릴수만 있다면 그야말로 말과 실제가 들어 맞는 제2의 그리스도가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호랑이 새끼를 잡으려니 호랑이굴에라도 들어 가야지 않겠느냐 라는 비장한 결심으로 수단바람을 피워도 보곺았다.
신부도 이제는 성사의 기계일 수만 없지 않겠느냐 라는 생각으로-.
그러나 원체 나는 온실에서만 자라온 꽃이라 돈 바람… 감투 바람에는 도저히 배겨날 수가 없었다.
그야말로 성직자의 「스타일」만 구길정도가 아니라, 잘못 걸렸다가는 천주냐 돈이냐의 이야기가 되겠고 권력에 매달려 퇴색한 진리로 전락하고 말 것이니 탈일 수밖에.
그래서 이건 늦게나마 철이 들었다고 해야 옳을지 원?
종교가 자비이기는 하되 교회가 반드시 구호 「센터」가 아니어도 좋고 학교가 아니어도 무방하고 병원일 필요는 없다. 성 베드루께서도 『우리가 천주의말씀 강론하기를 버려두고 식상에 복사하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 이러므로…… 이 사람들에게 이 일을 맡기고 우리는 기구하고 말씀을 강론하기에 골몰하겠노라!』(종도 6장 2-4절) 말씀하신 바 있으니 이분들도 묏 짐승 잡으려다가 집돼지를 놓치거나 아니면 진짜 야기는 버리고 안태만 기르는 꼴이 될가 싶었던 모양이지요.
진작 타고나지 못한 성소 이외의 짓은 버리고 무능할 망정 『성사의 기계』로 돌아가야겠다.
그리고는 어떤 종류의 감투이건 감투란 감투는 모조리 그 감투외 전문가들인 사셍의 자식들에게 맡기고 나만은 무력한대로 빈약할망정 승품의 첫 계단인 수문품을 영할 때에 받았던 성당열쇠를 정성껏 어루만지면서 천주님의 집의 문간이나 깨끗이 쓸고 닦고 지켜나볼가 하면서도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오직 내가 가진바 이것을 네게 주노니…』하시면서
_____나는 엄격히 ___쉽기도 하나 보다 더한 고충이라도 참아낼 각오와 함께 『나 이제 천주의 제단 안에로 들어가리이다….』
INTROIBO ADALTARE DEI를 다시 한번 간절히 외쳐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