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福者(복자)로 모셔야 할 26위 순교사기] (12) 3代(대)가 殉敎(순교)한 베드루.조화서
獄中에서 父子 서로 激勵
발행일1963-09-22 [제392호, 3면]
수원에서 태어난 그는 기해년(1839)에 순교한 조 안드레아의 아들이다.
충청도 신창으로 이사하여 살다가, 1864년에 전주 소양지방의 성지동으로 옮겨 살았으니, 그는 여러해 동안 최도마 양업 신부의 복사일을 맡아본 적도 있었다.
1866년 12월5일(양력) 그의 집에서 잡히니 이 때 같이 잡힌 이들은 그의 아들 요셉 윤호와 이 베드루 명서, 정 베드루 원지 등 네 명이었다.
잡힌 날은 소양 삼거리 주막에서 하루밤을 묵었지만 문초받을 때까지 부자가 서로 격려하고 고무한 것은 유명한 것으로 여러 기록에 남아있다.
『네 마음을 변하지 말라. 관장 앞에서도 진리대로 대답하라. 불행히도 마음을 변할가 각별 조심하기 바란다』라고 하는 아버지 베드루의 말에 아들 요셉은 『아버님 제게 대해서는 조금도 걱정하지 마십시요. 아버님도 마음을 변하실가 조심하시기 바랍니다』고 하자 『저 악당들은 죽기만 원하고 있다』는 욕설까지 들었던 것이다.
『너는 네 아들과 함께 죽는다면 네가 남겨 놓을 것은 자손 없는 집안이 되고 말지 않느냐, 그래도 너는 좋다고 생각하느냐』하는 관장 말에 대해서도 『나는 이 세상에서 죽을지라도 죽은 뒤에는 다시 살 자리가 있읍니다』하여 혹형을 받았고 전주 감옥 전면에 있는 옥사에 갇히었으니, 이때 대성동에서 잡혀온 교우들은 후면에 있는 감옥에 갇히어 있었다.
6·7일 동안에 한 두번 문초를 받을 때도 그들 부자를 한 자리에 앉혀놓고 『너희를 한 날에 목을 베일 수는 없다. 하지만 한 마디만 하면 놓아주겠다』고 하자 『성교를 믿으면서 어찌 배교할 수 있겠읍니까』하고 굽히지 않는 천주의 종 베드루였었다.
12월13일 장날을 이용하여 많은 사람들 보는데서 참수가 집행되었지만 형장에 가는 도중 가장 나이 많던 정 발도로메오가 『오늘은 우리가 하늘에 과거보려 간다. 오늘은 참 축복의 날이다』고 하자 『그렇습니다. 우리의 행복은 적지 않읍니다. 행복의 풍부한 수확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라고 대답하는 베드루는 옥중에서도 자주 교우들의 식어가는 마음을 채찍질하고 _무하던 괄괄하지만 남에게는 유순하고 신앙에는 불변의 용사였던 것이다. 형장에서 참수를 앞두고 성호를 긋고 머리를 숙여 내밀자 휘광이는 주먹으로 치면서 『이 악당아 지금 이 형장에서까지 종교를 지키느냐』하자 『우리는 죽드라도 종교는 지킵니다』하고 다시 성호를 긋고 세 번째 내려치는 칼에 순교하니 때에 40세였었다.
이날 같이 참수된 천주의 종들은 조 베드루 외에 성지동에서 잡힌 이 베드루 명서와, 정 베드루 원지, 대성동에서 잡힌 정 발도로메오 문호와, 손 베드루 선지, 한 베드루 원서 등 모두 여섯 분이었다. 이분들은 참수된 사흘 뒤에 남녀 교우들의 손에 의해 그 시체를 순교지 근처인 용마루재에 묻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