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신 전체는 영혼의 표현이며 도구인 것이다. 영혼은 육신 안에 마치 어떤 사람이 방안에 있듯이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영혼은 육신의 각 지체를 파고들며 그의 전 신경을 통해 행위하고 있다.
영혼은 육체의 아주 미미한 태도나 움직임을 통해서도 잘 드러나고 있다. 특히 얼굴과 손은 영혼을 더 잘 반영하고 있다.
얼굴은 너무도 명백하니 생략하고 손에 대해서 말해보기로 한다. 즐거움이나 놀람이나 기다림의 감정은 그 즉시로 손에 옮겨진다. 집게손가락을 펴거나 움직임으로 우리는 말하는 이상으로 더 강하게 표현할 수도 있다. 이렇듯이 심려적이고 표현적인 손의 표정에 비기면 말마디는 투박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손은 참으로 영신적인 부분이다.
일하고 방어하고 공격하는데 능한 힘인 손은 또 정묘하고 감동적이며 감동에 찬 접촉을 실제와 갖는데도 필요한 것이다.
손은 한마디로 영혼적인 거래의 한 능숙한 방법이다.
타인이 내미는 손을 쥐고 흔듦으로 우리는 그의 영혼과 접촉하며 그의 신뢰심이나 즐거움이나 고통의 정을 옮겨받고 있다. 손은 특히 기구하는 동안에 일정한 표정을 간직해야 한다. 영혼이 천주님과 형언할 수 없는 정을 나누며 자신을 바치고 은혜를 받을 때 손은 무심하게 있을 수 없고 저절로 합쳐지며 손가락은 교차된다.
내 속에서부터 솟구치는 생명의 열띤 사랑이 합쳐진 내 양손을 통해 천주께로 올라가며 마치 양손이 합쳐 있듯이 천주와 나는 결합되어 있음을 속으로 깨달을 적에 내 사랑의 힘은 강해진다.
강한 욕정이나 깊은 고통이나 큰 걱정이 폭발하려 할 때도 손은 같은 태도를 반복하고 있을 것이다.
손을 한데 합쳐 으르서지도록 비벼대는 태도는 영혼이 원수를 대적해서 싸우고 있는 증조이며 영혼이 승리하고 평화를 되찾았을 때 또는 천주님 대전에서 경건심을 갖고 겸손할 때는 손이 규율과 존경의 표시로 방추(紡錘)처럼 길어진다.
성미술가(聖美術家)들이 성현(聖賢)들의 손을 길게 그리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성인들의 영혼이 천주성자를 받아들이는데만 전적으로 정신쓰고 있음은 무엇보다도 먼저 그들의 손이 잘 표현하고 있다.
손은 또 순종과 성스러운 위탁의 상징으로도 되어있다.
방어와 공격의 도구인 손을 우리는 천주님 손안에 바치면서 끝까지 순종할 것을 서약한다. 영혼은 어떤 때 감사와 즐거움으로 벅차 천주님을 열원한다.
이때에 손은 저절로 기구하는 태세를 갖추고 펴지며 목말라 하는 영혼을 축여준다.
영혼은 또 어떤 때 참 제사의 듯을 깨닫고 자신과 소유하는 모든 것을 천주님께 희생으로 바치기도 한다.
이 때에 팔과 손은 십자형으로 가슴 위에 합쳐진다. 이런 표현은 참으로 아름답고 위대한 것이다.
천주께서는 우리 영혼을 표시하라고 우리에게 손을 주셨으니 이 모든 손의 동작은 참으로 거룩한 것이다. 우리 마음 속에서부터 손을 통해 바치는 그 모두를 천주께서는 기꺼이 받아 주신다는 이점에 우리는 유의하자.
손은 또 반대로 마음의 태만이나 분산 기타를 말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부터 손에 조심하기로 하자. 손의 정당한 태도는 내적 생활의 증인일 뿐더러 내적 생활을 힘차게 돕고 있다. 한마디로 내적 생활과 손의 태도는 좋은 주화를 이루게 되어 있다.
이제 우리가 마음과 손을 합쳐 노력할 것은 우리의 좋지 못한 정서나 관습을 거슬러 도전함이다. 이런 노력이 없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말한 모든 것이 한밭 공염불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마음의 결의만 선다면 이제부터라도 진리에 입각하고 손을 잘 쓰는데 유의해서 마음의 깊은 생각을 천주님 앞에서 몸으로 성실히 대변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천주께서 원하시는 수범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임으로 이들을 감화하고 천주께로 이끌 것이다.
黃玟性(가톨릭대학장 ·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