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夜話(문학야화) - 20世紀 西歐作家(서구작가)들 (2) 女流作家(여류작가) 운세트의 歲月(세월)
畢生(필생)의 3部作(부작) 끝낼무렵 改宗(개정)
노르웨 및 世界文學(세계문학)에 貢獻(공헌)
발행일1964-04-12 [제418호, 4면]
여류소설가 시그릿드 운세트(1882-1949)는 주로 역사소설로 저명하다. 1928년 「노르웨이」 및 세계문학에 공헌한 작품 중에 하나인 그의 3부작(3部作, 크리스틴 · 라바란스다테르)에 대해 「노벨」 문학상이 수여되었다. 1924년 바로 그 3부작을 완성하던 해에 오랜 불가지론(不可知論)의 회의를 흠연히 떨어 버리고 가톨릭교회 품안으로 들어왔다.
紹介
그가 가톨릭으로 개종한 후의 작품들을 주목해 볼만하다. 그 작품들에는 굳은 신앙이 절절히 넘쳐 흐르고 있지만, 소설 중 등장인물들의 원죄의식(原罪意識) 같은 고민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그러나 천주님은 성총으로써 그런 고민을 극복할 힘을 가져다 준다는 것을 증언(證言)한다.
「나치」에 조국이 짓밟혔을 때는 미국으로 망명했지만 1945년에는 지체없이 귀국했다.
拔萃
그의 소설형식의 자서전 「세월(歲月)」 중에서 한 대목을 읽어보자. 여주인공(女主人公) 잉그빌트의 어느 한 여름서 겨울을 거쳐가는 그 짧은 세월을 단려(端麗)한 필치로 엮어놓은 것이다. 거기다가 그 여주인공은 11세 소녀이다.
이 작품 속의 등장인물이 적지 않고 그들의 성격이 다 생동(生動)하듯 묘사되었지만, 작품의 종결에서 보면 주인공 이외의 그것들은 아무 중요성이 없고 한 서정(抒情)의 그림자처럼 스쳐가 버리는데 특색이 있다.
『침실은 어른침대 두개와(그녀는 벌써 그 중 하나를 차지하고 있다.) 아이들 침대들로 꽉찼다.
그래도 창 앞에 서면 길섶을 내다본다. 공부방도 옹색하지만 그런대로 정겨운 구석이 있다. 그녀는 이미 그런 것을 볼 수 있다. 겨울 동안은 난로불은 늘 피어두기 때문에 저마다 몸을 녹일 수 있는 적당한 자리를 차지하면서도 방은 질서있게 어울려있다.
식간은 길고 좁다랗다. 그 한가운데 낡은 식탁을 놓고 네개의 나지막한 공부방 걸상들이 둘려있다. 아빠 책상은 저만큼 창가로 등대어 돌려 놓았다. 어머니는 책장들을 방한구석에 몰아두고 거기엔 이제는 책들이(아빠의) 아니라 갖가지 물건들이 쌓였다. 허지만 예쁘고 아담하게 손질해 두었다.
잉그빌트는 마루장에 그림 물감을 떨어뜨려 얼룩을 지어놓았다.
그중의 어떤 것은 그녀의 어머니가 미술학교 시절에 저지른 것도 있다. 잉그빌트는 몇개의 습작품들을 끌어내다가 식간에 줄지어 걸어두고 『엄마! 이것들 좀 봐!』 한다. 『예예! 이것들은 걸어 둘게 못되는데…』
그래도 어머닌 얹잖아 하는 눈치는 아니다.
이튿날 아침은 일찍 일어나 아침 햇빛을 받은 이곳 「블랏센」을 내다본다. 노랗게 시들어 쓸어진 풀들과 잎이 진 가시덤불과 그 위를 태양이 부드럽게 내려덮고 있다. 그들 저끝에 맑은 하늘이 트여있고 거기 봄이 어린다. 그 풍경은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해준 그 일처럼 지금은 행복을 주고 있다. 참 오랫만에 기뻐해 본다-. 아빠의 죽음 그렇게 다정했던 누구도 그처럼 사랑할 수 없을 그를 그러나 아무도 그렇게 지난세월을 되돌려 놓지 못한다. 저 집 가까이 태양아래 빛나고 있는 작은 산(山)-들로 뛰어 나갈 자유가 기다리고 있다. 그녀로서는 행복을 가져오기 어려운, 그러나 그 안에서 그녀는 행복하다.』
鑑賞
이 단문을 가지고 또 졸역(拙譯)을 가지고 는 원작을 엿볼 수 없다. 아빠를 잃은 잉그빌트는 세월이 가면 『좀 좋아진다』는 말을 듣는다. 누구는 세월은 약(藥)과 같다고 말했지만 운세트는 거기 그치지 않고 이 소설에서 자유의 이상에 관해서 그리고 인생을 살아가는데 피할 수 없는 사건에 대해 차차 성장(成長)하면서 알게되는 가정을 그리고 있다. 산(山)을 「심보리즘」으로 처리한 솜씨만도 그의 문학적 높은 향기를 은은히 풍겨주고 있다. (ㄷ·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