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25일 수원교구 이천본당 주임 이상돈(에두아르도) 신부는 중학교 동창으로부터 특별한 전화를 받았다. ‘거래처 사무실에서 가톨릭교회와 중요한 연관이 있을 것 같은 그림을 봤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휴대전화로 사진을 보내왔다. 그림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낀 이 신부는 바로 다음 날 소장자 이경우(스테파노·수원교구 분당야탑동본당)씨를 찾아갔다.
한눈에 김대건 신부 초상화로 보였다. 작품 상단 원형에 적힌 ‘AK’라는 이니셜은 ‘ANDREA’와 ‘KIM’을 표시한 것으로 보여 그 심증을 더했다. 몇 군데 무언가 날카로운 것으로 뚫린 구멍을 제외하고 작품 보존 상태는 양호했다. 마치 생전 모습처럼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비장하고도 근엄한 표정으로 서 계신 성인 모습에 이 신부는 가슴이 뛰고 벅찬 감정을 느꼈다. 가톨릭대학교 전례박물관에 소장된 장발(루도비코) 화백의 ‘김대건 신부’ 를 연상시키는 화풍과 이씨가 소지한 몇 가지 그림 관련 자료를 통해 이 신부는 ‘장발 화백의 그림’이라고 생각했다. 맞다면 한국 천주교 미술사에 한 획을 그을 낭보였다.
이 신부는 ‘초상화를 한시바삐 교회에 들여와야겠다’는 마음이 들었고, 이씨에게 “수원가톨릭대학교에 기증하자”고 제안했다. 그 뜻을 존중한 이씨는 며칠 후인 11월 3일 이천성당으로 초상화를 옮겨왔다. 이 신부는 “성당에 초상화가 모셔질 때 훼손된 빈틈으로 비치는 빛이 성인의 광채 같았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다음 순서는 작품의 내막을 살피는 것이었다. 먼저 김대건 신부 연구의 1세대라 할 수 있는 서울대교구 이기명 신부(프란치스코 하비에르·원로사목자)를 찾았다. 자초지종을 들은 이 신부는 검증자로 한국교회사연구소 송란희(가밀라) 연구이사를 추천했다. 작품을 접한 송 이사는 상세한 연구 논문을 작성하고 초상화가 장발 화백이 1920년 19세 때 그린 것임을 입증했다.
“처음 초상화를 대면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았다”는 이 신부는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왼손에 성경책을 감싸 안고 흰색 두루마기를 입은 주님의 종을 볼 수 있었고, 사제로서 척박한 이 땅의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십자가를 지고 서소문 형장을 향하는 비장한 모습은 골고타를 오르는 예수님과 같았다”고 말했다. 이 신부는 “본적도 없는 김대건 신부님 모습을 오로지 신심과 상상으로만 그린 이 초상화에서 말할 수 없는 영성의 깊이와 신비로움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장발 화백은 청년의 기백과 신앙심으로 하느님 나라를 위해 세상에 나온 군인, 마치 특전사 군인 같은 모습의 김대건 신부님을 재현해 냈습니다. 초상화가 빛을 볼 수 있도록 인도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이 과정에서 내가 도구 역할을 할 수 있었던 점을 긍지로 여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