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소설] 國籍(국적) 없는 小女(소녀) (20) 딕슨 ①
발행일1963-10-06 [제393호, 4면]
『어떻게 된 일이니?』
강숙의 표정은 진정 걱정하는 얼굴이다.
(너만은 내 친구구나…)
나는 이런 것을 느끼며 춘자들에 대한 분함을 질근 입 끝에 씹었다.
『학교에 안 오고, 음악감상실에는 왜 갔니?』
『학교 오기 싫어서.』
『왜?』
『네가 결석하니까….』
『정말?』
『응…』
나는 춘자들이 있는 데에 뛰어 가서 연숙이와 춘자의 멱살이라도 붙들고 손잡고, 붙어가는걸 보았느냐고 따지고 싶었으나 참았다.
『미군을 음악감상실에서 만났니?』
『응…』
『미군이 먼저 얘기 걸든?』
『응…』
『그래서 같이 따라 나왔니?』
『응…』
『얘는? 응응 하지만 말구 얘기를 좀 하렴!』
『난 아무래도 좋아』
『나한테 얘기 못 할거야 뭐 있니?』
나는 강숙을 쳐다보았다. 진정 우정에 서린 얼굴이다.
『사실은…』
나는 그날 학교를 결석하고 음악감상실로 간 기분부터, 미스터 여드름을 만나 미군과 함께 점심을 같이 먹은 시종을 자세히 이야기 했다. 듣고난 강숙은 교실쪽을 노려보며 춘자와 연순에 대해서 화를 냈다.
『망할 계집애들 코딱지만한 일을 그 따위로 퍼뜨리고 있어? 걱정 마아. 내가 다른 아이들한테는 잘 얘기해 둘테니까!』
강숙은 오빠같은 남성적인 어조로 나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
『너만 깨끗하면 돼!』
심란하던 내 마음은 강숙의 우정으로 훨씬 가라앉았다. 그러나 교실 안에 들어가서 공부하는 동안 내 마음은 뒤집히는 물결같이 흔들렸다. 두 시간, 세 시간, 네 시간, 차츰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내 마음은 다시 가라 앉았다.
『맘대로 욕하고 상상하래지』
이런 배짱이 생긴다. 방과 후에는 강숙이와 전과 같이 명랑한 표정으로 교문을 나섰다. 다행히 춘자들의 그림자는 내 주위에 보이지를 않았다. 그러나 강숙과 헤어져서 집으로 돌아오니 새삼스러이 학교서 악선전이 퍼진 일이 굼틀굼틀 고개를 쳐든다. 문제시 안 할려고 해도 그렇게 되지가 않는다. 재 속에 묻어논 불모양 헤칠수록 달아 오른다. 나는 밤새 내 몸을 태우다싶이 고민하다가 늦게야 잠이 들었다.
잠이 부족하여 눈등이 무겁기는 하였으나 아침의 맑은 공기를 대하니 그것도 대단치 않은 지나간 어제의 한 「페지」였다. 밝은 아침 하늘은 어제의 이야기를 쫓아버린듯이 맑은 푸른 색이었다. 책가방 속에 깍두기 냄새가 시군둥하니 코를 찌르는 도시락을 챙기고선 사뿐사뿐 집을 나섰다.
첫 시간은 담임인 K선생의 국어 시간인데, 공부가 끝나자
『양나순!』
하고 내 이름을 부른다. 뭔가 하고 선생을 바라 보았더니 교무실로 오라고 한다.
(뭘까?)
어쩐지 불안하다. 예감한대로 선생이 오란 이유는 미군과 손을 잡고 다녔다는 그것 때문이었다. 외떨어진 훈육실에 들어가니, 요즘 더 비게 살이 찐 훈육주임 C여선생이 이미 와서 앉아 있었다. 질문의 화살은 「또어」가 다치기가 무섭게 튀어 나왔다.
『지난 토요일 왜 학교를 결석했느냐?』
C 선생은 성냥 꼬치로 충치 먹은 잇발을 쑤시면서 묻는다.
『……』
『명동의 음악감상실로 갔었지?』
『네에』
『학교 결석한 까닭을 말해라?』
『아이들한테 놀림받기가 싫어서 결석했어요』
『뭐라구 놀리더냐?』
『양공주의 종자라고 그러지 않아요』
『미군하고 음악감상실에서 만났지?』
『우연히 만났어요』
『미리 약속했었지?』
C 선생은 덮어씨우듯이 눈을 부릅뜬다. 충치가 시큰거리는지, 혓바닥으로 아픈데를 굴리고 있다.
『왜 대답을 안 하나?』
『음악감상실에서 미군을 만나고 국군을 만나고 누구를 만나고가 저의 죕니까?』
나는 화가나서 C선생의 이 아픈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럼 미리 약속한건 아닌데 어떻게 알게 됐느냐?』
『아는 대학생을 만났는데 그 사람이 미군과 같이 왔었에요』
『그 대학생 소개로 알았단 말이니?』
『네에』
『금방 안 미군과 손은 왜 잡고 길을 걸었니?』
『선생님 보셨에요?』
『그럼 안 그랬단 말이냐?』
C 선생은 아픈 잇발에 더 신경이 쏠리며 묻는다.
『미쳤나요. 처음 안 미군과 손을 잡고 다니게!』
『손 잡고 가는걸 보았다는데?』
『보았다는 아이 대결시켜 주세요?』
『……』
C 선생은 뿌러진 성냥개비를 앞니로 뽀죽하게 잘라서 또 이를 쑤시면서
『그럼 어떤 자세로 갔니?』
나는 미군과 미스터 여드름과 셋이서 걸어가던 장면을 설명하며 실연해 보였다.
『좋다. 오늘은 네 말을 신용한다. 학교를 결석하고 음악감상실에 가면 안 된다. 또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미군과 같이 다니지 말아!』
나는 대답을 않고 가만이 있었다.
『학생 신분에 조심해야 해-』
담임선생이 입을 연다.
『저만 나무랄 것이 아니라, 중상하고 악선전한 아이는 훈계 안 하세요-』
나는 어쩐지 가슴에서 노여움이 치밀어 생각지도 않고 말이 툭툭 튀어나온다.
『우선 너부터 주의해야 한다.!』
C 선생은 호랑이같이 눈을 뜨고 성냥개비를 내던지며 소리를 지른다.
『알았읍니다!』
나는 C 선생의 절구통 같은 허리에 시선을 떨어뜨리고 나직히 대답했다.
이 날은 그걸로 별일은 없었으며, 춘자들도 어제 같이 날뛰진 않고, 잠잠한 자세로 나를 경원할 뿐이었다. 강숙은, 춘자 「그룹」 이외의 아이들에게, 열심히 내 변명을 하느 것이 눈에 뜽니다. 몇명의 아이들은 오히려 동정하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운명이란 것은 이상했다.
사흘 후, 아버지가 갑자기 몹시 열이 나고 앓기 시작하여 의사를 부르고 간호하느라고 학교를 결석하게 되었다.
저녁 무렵이 되자 병자의 신열은 가라 앉고, 아버지는 식사까지 하였다. 아버지는 __ 쪽지를 써주며 돈을 받아 오라는 신부름을 시킨다. 바로 명동 음악감상실이 있는 부근의 어느 사무실을 __ 찾아가게 되었다. __ 받아 가지고, 음악감상실 앞을 지나한 10「미터」쯤 걸어갔을 때,
『미스양…』
하고 부르는 소리가 난다.
돌아보니 딕슨이었다. 그는 다정히 내 옆으로 가까이 오며.
『너를 몹시 만나고 싶었다. 나는 어제도 음악감상실에 갔었고 오늘도 5시간이나 너를 기대리다가 나오는 길이다.』
이렇게 말한다. 나는 좀 께름하면서도 처음 만났을 때보다 갸름한 그 얼굴에 호감을 느꼈다.
『나는 요새 짬이 없어서 음악을 들으러 올 수가 없었다』
하며 나도 웃었다. 그는 내가 가는 방향으로 바싹 다가서며 따라왔다. 나는 누가 또 나를 보고 있을지 몰라서, 걸음을 빨리 놓았다. 그러나 「지아이」의 꺽다리 「콤파스」는 내 걸음쯤은 문제 없이 따라왔다.
『너의 갈 길이 바쁘냐?』
『그래요. 아버지의 신부름을 갔다 오는 길이죠』
『나 너의 집까지 바라다주고 싶다!』
하며 그는 따라온다. 어쩐지 그 태도가 밉지 않고 어딘지 순수해 보인다. 그의 맑은 눈동자 때문인가? 얄삭한 입술에 담긴 다소곳한 미소 때문인가?
나는 강하게 거절할 생각이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신경을 쓰며, 딕슨과 이야기를 주고받고 걸었다.
우리집 근방까지 오는 동안에 다행히 아무도 아는 얼굴을 만나지 않았다.
나는 적어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그 이튿날 학교에 가보니 역시 본 눈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