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福者(복자)로 모셔야 할 26위 순교사기] (13) 全州(전주)서 殉敎(순교)한 李(이) 베드루
酷毒한 刑罰 自請
발행일1963-10-13 [제394호, 3면]
충청도 태생으로 전라도 여러 곳에서 살았지만 포졸에게 잡힐 무렵에는 전주 소양지방의 성지동에 살고 있었다. 잡히기 며칠 전 조 베드루가 교우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우리는 며칠 후에 잡힐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피신하여야 합니다. 피신하지 않는다는 것은 곧 수난을 자원하는 것이나 다름 없읍니다』고 하자 이 베드루는 『사정이 그렇다면 여러분은 곧 피하십시요. 나는 지금 이런 병(윗병이라고도하며 가슴앓이라고도 한다) 있어 기동도 힘들지만 며칠 안 되어 천주님께 불리움을 받게될 것입니다. 그때 내 병도 나을 것입니다』라고 하였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순교로써 지상에서의 모든 고난의 탈피와 천상에서의 영광을 위해 필요한 예비를 단단히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막상 포졸에게 잡히자 병의 위급함과 자녀의 많음을 말하며 석방해주기를 바라기도 하였지만 다른 다섯명의 교우들이 묶기어 가는 중에서도 유독 이 베드루만 들것에 얹히어 갔었다.
전주 감영에서 맨 처음 문초받은 이가 이 베드루였다. 감옥 속에서도 다른 교우들과 함께 부지런히 조·만과의 신공을 드렸다 한다. 형장으로 가던 날 한 베드루 정 발도로메오와의 대화에 이어 『당신들이 말한 것처럼 오늘 당신들은 모두 함께 순교하여 하늘에서 영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하여 위로도 하였었다.
전주 서문밖 숩정리 형장에서 한칼 아래 참수 치명하니 때에 약 50세였었다. 마음이 착하고 독실한 구교우로서 지상에서 하여야 할 일을 기쁨 속에서 끝마친 이 천주의 종의 무덤은 같은날 같은 곳에서 치명한 이와 함께 사흘 뒤 용마루재에 묻히었다.
『너는 나라에서 금하는 일을 하고 있는 역적이 아닌가? 천주를 따르는 것을 그치면 좋겠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국명에 의해 죽이겠노라』하는 관장의 배교하기를 강요하는 말에 『내가 몇 번 다시 죽는 한이 있더라도 이 종교를 따르겠읍니다』 하였고 『너의 당의 두목들을 말하라』는 말에도 『죽는 한이 있더라도 혼자 죽겠읍니다. 따라서 다른 이의 이름을 말할 수는 없읍니다』하여 병중에 혹독한 형법을 달갑게 받은 이 베드루였었다.